<여행, 풍경, 그리고 사랑> 시리즈 8 (7)
남편은 해마다 두어 차례 LA나 라스베이거스로 출장을 떠난다. 이번에는 남편의 출장 일정에 맞춰 나도 함께 LA로 향했고, 업무가 끝난 뒤 일주일의 휴가를 더해 그동안 미뤄두었던 우리만의 캘리포니아 여행을 이어가기로 했다. 북쪽의 긴 겨울을 견디는 캐나다 생활 속에서, 따뜻한 햇살이 있는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렌트카를 받아 호텔로 향했다. 공항 밖으로 나서는 순간, 토론토와는 전혀 다른 공기가 피부에 와 닿았다. 건조하지만 따뜻한 바람, 도시 전체를 감싸는 밝은 빛, 어딘가 느긋한 분위기. 짐을 풀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한인마트였다. 토론토보다 훨씬 크고 다양한 품목들이 가득한 마트에서 과일과 생수, 빵과 간단한 간식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낯선 도시에서 익숙한 물건을 만나는 일은 늘 마음을 안정시킨다. 저녁은 얼바인의 한인식당에서 먹은 따끈한 순두부였다.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소박한 음식에서부터 온다. 익숙한 맛이 낯선 도시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우리가 머문 호텔은 조용하고 친절했다. 남편은 3박 4일 동안 낮에는 업무에 집중하고, 저녁이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호텔방에서 글을 쓰고, 가져온 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헬스장에서 가볍게 몸을 움직이기도 했다. 일상에서는 늘 무언가를 해내야 했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야자수와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이런 여유도 삶에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일정이 끝나자,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따사로운 캘리포니아 햇살 아래, 우리는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겼다. 첫 목적지는 산타모니카였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과 바다, 서핑보드를 들고 파도로 향하는 사람들, 부두 위를 거닐며 웃음 짓는 여행자들. 두 손을 꼭 잡고 난간을 따라 걸으며 바다의 숨결을 느꼈다. 산타모니카는 영화 속 풍경처럼 활기찼고, 그 자유로운 분위기는 우리의 마음을 단숨에 풀어놓았다. 걷는 내내 말이 많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웠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말리부였다. 해안도로를 달리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고급 주택들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말리부 해변은 산타모니카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결 고요했고, 파도 소리도 부드러웠다. 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 그 침묵마저 편안하게 느껴졌다. 여행 속에서 가장 깊은 휴식은 이런 시간인지도 모른다.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도착한 헌팅턴 비치는 또 다른 활기를 품고 있었다.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 위로 햇살이 쏟아졌고, 파도 위에서는 서퍼들이 균형을 잡으며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서핑의 성지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우리는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바다 냄새와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여행이란 결국 이런 순간들을 모아 기억으로 남기는 일일 것이다.
여정의 마지막은 샌디에고였다. LA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 군인기지를 지나며 훈련 중이던 군인들이 트럭 위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주변의 관광객들이 박수를 보내는 모습에 우리도 자연스레 손을 흔들었다. 샌디에고는 연중 내내 화창한 날씨로 유명한 도시답게, 그날 역시 눈부신 햇살로 가득했다. 우리는 멕시코 국경 근처까지 드라이브를 했다. 국경이 가까워질수록 예전에 나이아가라에서 여권도 없이 국경을 넘었다가 곤란을 겪었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긴장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때의 당황스러움과 지금의 여유 사이에는, 우리가 함께 지나온 시간이 놓여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해변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모든 풍경 위에는 같은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다. 얼바인에서 시작해 샌디에고까지, 우리는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바다와 바람, 그리고 서로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여행이 끝나갈수록 마음 한편이 아려오는 이유는, 이런 순간들이 다시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쉬움을 안고 다시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LA의 야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행은 끝났지만, 함께 걸었던 해변의 기억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 것이라고. 햇살과 바람, 그리고 말없이 나란히 걷던 그 시간들이 삶의 어느 날 문득 다시 우리를 따뜻하게 불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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