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과 KT의 경기가 있던 날, 두산 팬인 큰딸과 함께 한 우리 가족은 잠실 야구경기장 내야석에 앉아 경기를 관람했다. "와~~~~" 절묘하게 상대 수비수 글로브를 빠져나가는 공의 움직임을 따라 함성과 함께 일제히 일어나는 사람들. 두둥두두둥 북소리. "두산의 안방마님 양의지(양의지). 안타를 날려줘요. 수빈아~~~" 정신없이 두 귀를 때리던 노랫말들. 응원이 빵빵했다. 거기 끼여서 좀 더 찐하게 외치고 싶을 만큼 멀리 있어도 응원 열기에 몸과 마음이 들썩거렸다.
한참 경기에 몰입 중인데 문자가 왔다. 옆집 언니였다. 언니는 뒷집 덕구 아빠에게 입양 문제를 논의했고, 바로 사람이 온 모양이다. 그걸 나에게 알리는 문자였다.
"와~~~~~~~~~~" 누군가 안타를 날렸다. 환호성에 둘러싸인 중에도 나만 혼자 덩그러니 있는 것 같았다.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걸 알아차렸던 그때 그 순간처럼 마음이 내려앉았다. 집에 가고 싶었다.
“입양 보내, 당신 힘들어.”
말을 잘 듣지 않는 한쪽 몸을 추스르며 새는 발음을 다잡아 옆집 아저씨가 내뱉은 말이다.
"미안해 나 때문에. 고생시켜서 미안해."
개들을 입양 보내라고 한건 옆집 아저씨였다.
탈출 사건 이후 입양 문제는 수면 위로 불거져 올라와 급물살을 탔다. 옆집 언니는 내게도 입양을 권했었다.
‘돌보는 것과 키우는 것은 차이가 있을 텐데.’ 남편은 입양을 거절했다. 나는 망설였다. 자신이 없었다.남편을 설득할 마땅한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애들 지금 데리러 온데요.”
부스스 일어나 비몽사몽간에 휴대폰을 확인한 건 아침 8시. 씻지도 않은 채로 대충 옷을 걸치고 후다닥 뛰쳐나갔다. 녀석들을 못 보게 될까 봐 마음이 졸였다. 옆집 대문 앞에 유난히 커 보이는 군청색 트럭이 서있었다. 동이와 덕선이가 눈을 아래로 내리고 굵은 쇠줄에 연결된 깨끗한 목줄을 하고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빨개진 눈을 손목으로 가리고 연신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옆집 막내가 눈에 들어왔다. 언니 눈가에도 눈물이 맺혀있었다.
두 사람을 본 순간 내 슬픔은 올라오다 말고 말라비틀어졌다. 대신 입양해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무거운 결정을 내리고 아프게 눈물 흘리는 주인 앞에서 사치스럽게 울 수 없었다.
“그동안 정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빨리 가네요.”
이별은 언제나 어렵다. 그것이 어떠한 것과의 이별이든 말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덮은 흐릿한 구름만 바라보았다. 성급함 때문에 깨어진 관계, 오해로 인해 벌어진 친구 사이, 부주의함 때문에 뒤바뀐 보물상자. 듣지 않았기 때문에 내린 잘못된 판단, 오래 망설였기 때문에 떠나간 것들을 생각했다.
동이, 덕선이 노는 모습
문이 열리면 녀석들은 쏜살같이 뛰어나와 서로 엉켜 뛰어오르고 마당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넓게 그림 그리듯 한 바퀴 돈다. 이빨을 드러내어 목덜미를 물고, 으르렁 거리며 뒷다리를 문다. 먼지를 날리며 빙글, 또 빙글 춤을 춘다. 바짝 덕선이 뒤를 쫓던 동이가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현관 기둥 옆 긴 나무 의자 아래 낮게 몸을 웅크리고 헐떡이는 숨을 고른다. 덕선이가 나타나면 풀쩍 뛰어나가 뒤엉켜 회오리를 만든다.
겁이 날 만큼 격하게 노는 모습이 그리워졌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 아침. '동이, 덕선이 갔지.' 다음날도 벌떡 일어났다. '동이, 덕선이 풀어줘야지 아! 맞다. 동이 덕선이 없지.' 침상에 걸터앉아 창문 너머 옆집 쪽으로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꼬리를 흔들며 울타리에 발 올려놓은 녀석들 모습이 보일까 목을 길게 빼본다. 주욱 눈물이 흘렀다. 텅 빈 집은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언제쯤 따뜻한 온기를 내뿜을지 기약이 없다.
P.S. 그동안 <어떤 돌봄> 매거진을 구독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동이, 덕선이 이야기는 이제 마칩니다. 혼자 보는 일기처럼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좋아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