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와 다름없이 아침에 녀석들을 마당에 풀어두었다. 약속이 있어 나가려던 참이라 주인 언니의 부탁대로 세 시간 정도만 풀어주려면 점심을 먹지 않고 들어오면 되고, 시간이 좀 오버된다고 해도 ‘그 정도야 괜찮겠지.’ 싶었다. 일단, 풀어두고 외출하려고 작정했다.
외출 준비를 하고 나오며 녀석들이 쪼르르 벚꽃 나무 아래로 달려오겠지 기대했는데 웬일인지 안 보였다. ‘어디 갔지?’ 바쁜지라 더 깊이 생각할 틈은 없었다. 서둘러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뜨악’ 녀석들이 동네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동이의 당황한 두 눈과 놀란 내 눈이 딱 마주쳤다. 다행히 동이가 나한테 달려왔다. 도망갈까 봐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 뛰는데 목줄이라도 딱 붙잡으면 안심되고 좋을 텐데. 목줄 없이 마당에 풀어놓던 애들이라 녀석 목덜미엔 아무것도 없었다. "동이야 이리 와 들어가자." 쪽문으로 동이를 인도했다. 잘 따라와서 다행이었다.
동이를 마당에 들이고는 나갈 만한 곳이 어딘지 마당, 집 뒤쪽 여기저기 샅샅이 훑었다. 울타리를 뛰어넘은 게 아니면 나갈만한 곳은 없었다. 녀석들을 못 찾을까 봐 걱정스러워 주인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좀 전에 풀어준 동이, 덕선이가 울타리를 넘었어요.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연락드려요. 동이는 옆에 있고, 덕선이는 찾고 있어요.”
동이가 밖으로 나갈 거라는 보장이 없어야 덕선이를 찾으러 나가니까 두 바퀴 정도 집 주변을 더 돌았다. 마침 윗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대접을 들고 현관을 나서는 뒷집 덕구 엄마를 발견했다. 평상시에는 가볍게 인사만 하는 사이일 뿐이지만 말이 그냥 둑 터진 사람처럼 우두둑 튀어나왔다.
“동이랑 덕선이가 담을 넘었나 봐요. 그런데 어디로 넘어갔는지 모르겠어요.”
“덕선이 대문 앞에 있어요. 대문이 바람에 열려서 몇 번 밖에 나온 적 있어요.”
“네?”
“대문이 열리니까 나오긴 했는데 들어가는 방법을 모르니까 멀리 안 가고 왔다 갔다 하는 걸 내가 몇 번 넣어줬어요.”
덕구 엄마는 믿기지 않는 말을 했다. 대문이 바람에 열렸다고? 그게 말이 돼? 심지어 처음이 아니라고?
그때 대문 앞에서 끙끙거리던 덕선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를 보더니 울타리 쪽으로 겅중겅중 뛰어 올라오는데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영화 <베일 리>에서 베일 리가 주인 만났을 때 뛰어오던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번쩍 안아서 올렸다. 울타리가 높고, 덕선이도 꽤 무게가 나가지만 너무 다급해 그런 건 Out of 안중이다.
그제야 대문 고리가 풀려 살짝 열린 것이 눈에 들어왔다. 쇠고리를 당겨 걸고, 마침 녀석들 어릴 때 쓰던 목줄이 개집 난간에 걸려 있어 급한대로 하나 풀어다가 대문 양쪽에 있는 둥근 고리 두 개를 연결해 묶었다. 주인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애들 다 찾았으니 안심하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은미 씨 오늘은 애들 집에 넣어줘요. 어려워도 하루에 한 시간만 풀어줘요. 이런 일 또 생기면 어떡해요.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물면 큰일이잖아요. 애들 힘도 세고 감당 안 돼요.”
“한 시간은 그래도 너무 짧은 것 같은데, 제가 더 지켜볼 테니 좀 더 풀어주면 안 될까요?”
“아니요. 뒷집 덕구도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산책하고 매일 묶여있어도 잘 지내요.”
주인 언니가 너무 단호하게 말해서 전화를 괜히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목소리에서 뭔가를 결심한 듯한 사람의 느낌이 풍겼다. 다른 때 같으면 풀어주는 시간을 좀 더 주고 싶다고 말하겠는데 말이 나오다 말고 다시 입안으로 쏙 말려 들어가 체한 사람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가자 덕선아. 동이야 집에 들어가자!”
녀석들은 개집 안으로는 안 들어가려 했다. 여러 번 시도하다 약속된 시간은 촉박하고 안절부절. 결국, 약속을 취소했다.
푸른 잎이 가득한 나무 아래 누워서
집에 도로 들어가 노트북이랑 책 한 권 돗자리를 챙겨 나와 평상에 자리 펴고 누웠다. 음악을 틀고 책을 펼쳐 들었는데 녀석들이 자꾸 올라와 손을 핥고 이리저리 헤집고 다녀 엉망이었다. 책도 못 읽게 방해하고, 그러나 곧 얌전해졌고 동이는 누운 내 옆에 등을 대고 앉았다. 나는 잘 느끼지도 못하는데 갑자기 일어나 사주경계를 하다가 겅중 마당으로 뛰어 내려갔다.
녀석들은 마당 한쪽에 등을 대고 누워 스르르 눈을 감았다. 편안해하는 녀석들을 보며 저절로 빙그레 미소 지어졌다. 얼마나 좋으면 저러고 누워 눈을 감았을까. 아무것 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시간이 개들에게도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생명이 있는 것은 일정한 시간을 함께 보내길 원하고 그 시간은 쌓여 정이 든다는 생각말이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에서 게리 채프먼은 사랑의 언어를 이 다섯가지로 꼽았다. 인정하는 말, 선물, 봉사, 육체적인 접촉, 함께 하는 시간. 다섯 가지 언어를 골고루 사용해야 만족감이 있지만, 사람마다 반드시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 제1 언어가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그중 함께 하는 시간이 제1 사랑의 언어다. 그는 반드시 함께 하는 시간으로 사랑을 말해주어야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동이, 덕선이에게 제1 사랑의 언어가 있다면 무엇일까? 시바견은 확실히 육체적 접촉은 제1 언어는 아닐 테고, 그중 무엇 하나라도 빠지면 섭섭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 평상시에 하지 않았던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함께 하는 시간’ 누군가에게는 제1 사랑의 언어인 그것으로 말이다.
그동안에는 느낄 수 없었던 묘한 감정이 뭉클하게 올라왔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눈 꼭 감고 널부러진 동이, 덕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