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통하는 적당한 때
오랜 가뭄 끝 내린 두 번의 비에 풍성했던 벚꽃은 졌다. 시인과 함께 차를 마시던 벚꽃 나무 아래 옆집 언니와 나란히 앉았다. 옆집 아저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두 달, 내가 옆집 개를 돌본 지 한 달 만이다.
“내년이면 남편 정년퇴직이에요. 이 집은 제가 맘에 들어서 사자고 했고요. 마당에 꽃 심고 남편 좋아하는 개도 키우고 주말에 애들 오면 고기 구워 먹으며 한가하게 살고 싶었어요. 은미 씨, 나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못했어요.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올해는 일 다 정리하고 쉬려고 했었는데, 너무 힘들어요.”
힘들다는 말을 반복하던 언니는 깊은 상념에 휩싸인 눈을 하고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니의 깊은 슬픔과 아픔에 덧붙일 말이 없었다. 어설픈 위로가 독이 될까 두려워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 오는 날은 개를 풀어두지 마세요. 하루에 세 시간만 마당에 풀어놓아 주세요.’
문자를 받으면 개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 같아 속으로 좀 불만이었다. 개는 아저씨가 좋아하지 언니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아침에 문 열어주는 시간, 저녁에 개집에 가두는 시간을 조금 앞당겼어도 세 시간보다 많이 풀어두었다. 어려운 일을 당해 힘든 옆집 언니보다 말하기 편한 막내아들과 더 소통했다.
비가 왔던 날은 문자를 받고 속상해서 아예 이틀 동안 녀석들 집 근처에 가지 않았었다. 내 개는 아니지만 안쓰러웠고, 맘이 아파 외면했다. 수없이 ‘언니는 주인이니까 잠깐 봐주는 나와 입장이 같지 않아.’ 이해하려 애써도 개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만 했었다.
“옆집 언니가 잔디 망가지는 것 때문에 오래 풀어주지 말라고 하는 걸까? 개들의 습관이 나빠진다고 하던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친구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마치 내가 그 집 개를 더 생각하는 것처럼.
햇살 좋던 날, 언니와 나란히 앉아 그간의 일들과 그녀를 판단했던 어리석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언니의 상황을 헤아리기보다 개를 더 생각했다. 생각이 너무 짧았다. 다가가 등을 도닥이지 못할 만큼 미안했다.
“건강 잘 챙겨라. 힘들지. 다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무도 기꺼이 도와준다고 안 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시댁 식구고 친정 식구고 다들 정말 너무해. 저는 힘들다 도와달라 그런 말은 못 해요. 정말 못 하겠어요.”
“가족들에게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하셔야 해요. 저한테도 어려워 마시고 뭐든 부탁하셔도 돼요.”
언니가 눈물을 보이며 울 때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 번도 일을 쉬어 보지 않았고 올해는 쉬고 싶었는데 남편이 쓰러졌다. 여유와 쉼, 즐거움이 넘치는 전원생활을 꿈꾸며 집을 고르고 가꾸고, 어렵지만 개를 입양할 때 그 마음이 어땠을지 더듬어졌다. 부푼 꿈이 깨지고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져 버린 지금 언니는 마음이 번잡할 것이다.
게다가 너무 적극적인 이웃이라니. 문자가 훨씬 편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듣는 일만큼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 있을까. 언니는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면서도 고마움과 부담을 동시에 느껴 길게 부탁하고 변명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 마음을 보았어야 했다.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솔로몬의 잠언에 나오는 말이다. 이웃 관계에 적당한 선을 유지하라는 뜻인 것 같다. 그전 이웃과는 허물없이 지낸 것이 사실이고 나만의 인간관계 방법이 있지만, 잠언의 조언을 따라 서로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울타리는 안전거리, 정지선이었다.
바람이 살랑 불었다. 4월의 끝자락. 푸른 잎새 가득한 나무 아래 앉아 솔직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지금 한 뼘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 통할 수 있는 적당한 때가 찾아오기도 하는 것 같다. 하필 그때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라 먹먹하지만.
지난 주말 옆집 막내와 마당에서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말로 바꿔서 살짝 웃으며 말했다.
“다음번에 집에 오시면 같이 치맥 해요.”
옆집 언니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