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개가 아닙니다

비가 내렸습니다

by 김작가

옆집이 울타리를 치던 날, 친하게 지내자며 '쪽문을 내라' 오지랖을 떨었다. 쪽문을 냈으나 막상 맘껏 드나들기는 어려웠다.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껴서였다. 옆집 부부는 바빴고 얼굴 보는 게 쉽지 않았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친밀해질 시간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가장 큰 건 울타리 같았다.

“우리도 이사 갈까?”

차를 마시던 남편이 뜬금없이 말했다. 시인 부부가 그리워서였다. 시인의 집과 우리 집 사이에는 울타리가 없었고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소금, 간장, 참기름도 빌리러 갔고 스스럼없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따뜻했던 이웃이 이사 가고 우리는 앓고 있었다.

집 주변을 돌며 개똥을 모아 처리하고 우웩~~ 맘껏 뛰어놀다 목마르면 마시라고 마당 한쪽에 새 물을 놓아둔다. 먹이통을 확인하고 30분쯤 놀다가 조용히 나와 문을 잠근다. 작은 기척에도 녀석들은 쏜살같이 달려왔다. 가지 말라는 듯 뛰어왔다. 남의 집 마당. 개들 때문에 드나들긴 하지만 오래 앉아있기는 어색했다.

“안돼. 나도 할 일이 있어. 저녁에 보자.”


사진: Unsplash의 Andrej Lišakov


“다음 주는 집에 있을 것 같아요. 애들은 제가 돌볼게요.”

“애들이 엄마 왔다고 좋아하겠어요.”


한 주간 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틀이 지났다. 자꾸만 개들이 신경 쓰였다. 옆집 언니가 집에 왔는데 녀석들은 더 오래 갇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풀어놓았었는데 언니는 점심때와 저녁때 잠깐 풀어주고 그 외 가두어 놓는 것 같았다.

나흘째 이틀을 꼬박 옆집에 불이 꺼져있었다. ‘어찌 된 일일까?’ 살며시 쪽문을 열고 들어갔다. 순한 녀석들. 한번 짖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었다. “그래. 그래. 옆집 엄마다. 나도 반가워. 잘 있었어요. 진짜 엄마 오시니까 좋지?”

개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임시 배변 장소에 변을 본 게 보였다. 스피츠 특성상 배변 활동은 밖에서 한다고 하던데 안쓰러웠다. ‘안 계시면 나한테 말해도 되는데 어려워서 말 못 하셨나.’ 녀석들을 풀어주고 외출했다. 옆집 언니에게 문자가 왔다.

“자느라고 들어오신 줄도 몰랐네요. 애들은 하루에 세 시간만 풀어주세요. 돌봐 주셔서 고마워요.”

“네.”

짧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옆집 언니가 전에 했었던 말만 어지럽게 귓가에 맴돌았다.


“애들이 밝아서 잔디가 다 죽어요. 꽃 심고 싶은데 녀석들이 다 물어뜯어서 속상해요. 남편이 좋아해서 키우는데 저는 입양 보내고 싶어요. 잘 키울 자신도 없고.”


부담돼서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개들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도 따라왔다. 돌봐 주는 것뿐이고 자신도 없으면서 오지랖이 발동했다. ' 내가 입양할까.'


이튿날 비가 왔다. 들뜬 목소리의 아나운서가 반가운 비라며 뉴스를 전했다. 미세먼지도 씻어주고, 강릉 산불 진압과 가뭄 해갈에도 도움을 주는 비라고 그랬다. 맞다. 참 오랜만에 내린 비였다. 문자 메시지가 왔다. 옆집 언니다.


"비 오는 날은 애들 풀어놓지 마세요."

"네"


사진: Unsplash의 Karsten Winegeart

짧게 대답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은 건 문자로 길게 질문하고 답변받는 것이 싫어서였다. 지금 시대가 전화보다는 문자를 하는 시절이고, 친밀하지 않은 상대에게 문자가 편안하게 다가가는 도구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쯤이면 전화를 걸어주길 원했다.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고 자원해서 돌봐 주고 있긴 하지만 전화보다는 문자를 보내는 것에,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필요한 말만 하는 것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옆집과 잘 지내보려는 마음이 컸는데 할 말만 하는 사무적인 태도에 거리감이 느껴져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새 녀석들이 이뻐져서 개들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종일 풀어두던 애들을 세 시간만 풀어주기도 그랬고, 그렇게 되면 나도 더 신경을 써야 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정 주지 말자. 내 개가 아니다. 이웃이 나와 같기를 요구할 수는 없다. 애쓰지 말자. 이만하면 충분하다. 내가 개들에게 너무 관대해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해하려 노력해 본다. 예수님은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라." 하셨다.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주인이 원하는 바를 따라 주는 것이 맞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도 "타인을 마치 자신처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노력이 쌓여 몸에 새겨져야 한다." 하셨다. 그래도 속상한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이틀 동안 옆집 쪽문을 열지 않았다. 녀석들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래야 속상한 마음이 가라앉는다. 동이와 덕선이 생각에 마음이 울적해졌다.


‘비가 언제 그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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