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 그딴 건 없었다. 정에 굶주렸는지 녀석들은 갈 때마다 귀를 세우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었다. 일단 나를 반기고 좋아하는 것으로 보아 안심이다. 얼굴을 핥고 내 몸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무슨 영역을 표시하는가 싶지만. 어쨌거나 토끼도 아닌 것이 껑충껑충 뛰어올라 얼굴에 침을 묻혔다.
이런 부적절한 행동 뭐지? ‘윽’ 얼굴이 자동 찌그러지고 뒤로 몸이 ‘휙’ 꺾였다. 흙발에 옷은 더러워졌고 내 몸이 털투성이가 되었다. ‘킁킁’ 냄새를 맡고는 수돗가로 달려가 즉시 손을 씻었다. 녀석들이 손 씻는 내 등을 타고 오른다. '엎어 달라는 건가?'
“저리 가 좀 이러지 말고”
말이 통하는 녀석들이 아니니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제멋대로다. 어떻게 소통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쩔까?’ 일단 개집 문 열고 간식 주고 나면 더 먹고 싶은지 손만 쳐다보며 ‘킁킁’ 대는 녀석들에게 손은 내어주기로 마음먹었다. 혀로 손 핥는 느낌도 별로고 묻혀대는 침도 별로지만 뭐~ 이 정도는 곧 씻으면 되니까 참는다. 털 빠짐이 심해 좋은 옷 입고 오지 말라는 옆집 막내아들 조언을 따라 옆집 갈 때 입는 전용 점퍼도 따로 빨랫줄에 걸어 두었다.
“동이, 덕선이 훈련시켰니?”
“아~ 안 시킨 것 같아요. 덕선이는 워낙 순해서 그냥 이뻐했고, 동이는 좀 어릴 때 왔는데 훈련시키는 걸 본 적은 없어요.”
옆집 막내가 집에 온 주말 함께 마당을 정리하고 수다를 떨었다. 훈련 안 된 개라. <개는 훌륭하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등 짬짬이 유튜브로 강형욱 훈련사의 모습을 봤던 터라 훈련을 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만 보자. 어떻게 하더라’ 시바견 관련 영상을 찾아보았다. ‘음~~ 말을 잘 안 듣는군.’ 그렇지만 나는 단호하게 할 거니까 해 볼 만하지 않을까. 다른 건 몰라도 근본 없는 자신감 하나는 언제나 충만하다.
“어디 보자” 생전 처음 하는 개 훈련. 유튜브도 살펴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본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꼭 이럴 땐 필요한 영상이 찾아봐도 안 보이고, 쓸만한 정보도 안 보인다. 꼭꼭 숨어서 술래놀이를 하잔다. 뻔하고 똑같은 이야기를 마주할 뿐이다. 누굴 탓하겠는가. 실상은 내 마음만 조급한 거고, 검색 능력이 떨어지는 거다. 충분히 여유 있게 공부할 시간이 없는 거겠지.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해봐. 부딪혀 보자고. 어떻게 되겠지.”
사진: Unsplash의Taylor Kopel“앉자”
챙겨간 고구마말랭이를 주머니 안쪽에서 만지작거리며 몇 번이고 앉으라고 했다. 못 알아듣는다. 안 되면 되게 하라고 어떤 위인이 그랬다. 끝까지 한다. 그때 덕선이가 얼떨결에 앉았다. 심장 멎을 뻔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주머니에서 간식을 꺼내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엉덩이를 땅에서 떼기 전에 간식을 줘야 한다. 다행이다. 성공했다. 다시 “앉자” 덕선이가 앉자마자 이번에도 입에 간식을 넣어주었다. 심장이 안정을 되찾았고 손도 안 떨린다. 두 번째도 성공!!
덕선이는 알아들었는지 연속해서 반응하기 시작했다. 동이야 먹거나 말거나 자기 속만 채운다. 맘 약한 나는 덕선이 안 볼 때 동이에게 간식을 주었다. 훈련 첫날, 오늘 기분 째진다. 비록 동이는 실패했지만, 덕선이는 성공했다. 뿌듯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자랑하고, 아들에게 자랑하고 신나서 온 가족에게 떠벌렸다.
다음 날 덕선이만 간식을 주니 갸우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동이가 포기하듯 무심결에 앉았다. 앉으라는 구호에 맞추지 않았지만 앉아 있는 상태일 때 얼른 입에 간식을 물렸다. 두어 번 그렇게 하자 신호를 눈치챈 것 같았다. 떨고 긴장하지도 않고 나도 좀 똑똑해졌다.
훈련 둘째 날 동이도 성공했다. 옆집 막내아들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동영상을 촬영해서 보냈다. 신이 나서 떠들었다. 주말에 집에 온 딸을 붙잡고 녀석들 얘길 또 했다. “엄마 단체 카톡에 이미 얘기 다 했잖아.” 식구들이 집에 와도 그렇게 반가워하고 좋아하라며 지청구를 들었다. 관심 없는 딸들의 반응에 시들해졌다. 그래도 틈만 나면 얘기했다. “싫어. 얘기할 거야. 들어줘.”
옆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고, 긴장했던 첫날과는 다르게 녀석들 만나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자꾸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에게 개들 얘길 하고 싶었다.
이제는 아예 나를 보면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있다. 문을 열어주면 앉을 궁리부터 했다. 습관이 무섭다고 오전 중 개집 문 열어주며 간식 한번, 저녁에 들여놓으며 간식 한번 주었더니 그런 줄로 각인이 되었나 보다. 문이 열리고 제집을 나오며 엉덩이를 끌 듯이 움직이기도 했다. 재밌는 녀석들이다.
녀석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코앞에 너무 바싹 다가와 앉았다. 조금만 간식이 늦어도 흙발로 몸을 더듬었다. “아이 이건 아니잖아~ 난 수컷 좋아해.” 녀석들과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간식을 받아먹기 전 기다리는 연습을 시키자 마음먹었다.
“앉아. 기다려.”
손을 주머니 안에 감추고 간식을 주지 않았다. 뒤로 두 걸음 물러나 보았다. 웬걸 물러난 만큼 녀석들이 따라왔다. ‘아~ 이게 아닌데’ 더 바짝 붙어 조여와 앉았다. ‘핵 헉헉’ 빨리 달라고 칭얼댔다. 앞발로 윗옷에 흙 묻히기를 시전 했다. 거의 온 마당을 다 돌도록 ‘기다려’엔 불통이다. 이번엔 동이가 아니라 내가 지쳐 포기할 태세다.
좀 더 단호하게 해 보자. “앉아! 기다려!!” 간식을 꺼내어 눈에 보여주었다. 앞으로 다가오면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앉아! 기다려!!” 간식을 다시 보여주었다. 뒤로 두 발 물러났다. 두 눈을 간식에서 떼지 못한 녀석들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을 포착해 조급해진 녀석들이 내 앞으로 쪼르르 오기 전에 간식을 입에 넣어주었다. 반드시 두 걸음 뒷걸음질해 거리를 넓혔다. 녀석들이 움직이면 간식은 없다. 훈련 대성공!! ‘음 하하’
이제는 가족 단체 카톡방에 "엄마 외로워 딸 뭐 해? 놀아줘!!" 말고 수다 떨 일이 생겼다. 동이 덕선이랑 사진도 찍고 동영상 촬영도 했다. ‘앗싸!!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