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돌봄 첫날입니다

고구마말랭이는 옆집 개들만 먹이는 거로

by 김작가

“아침에 풀어놓고 저녁에 다시 집에 넣을게요.”

“네네 그러세요. 너무 고맙습니다.”

“누가 동이고, 누가 덕선이에요?”

“귀가 앞쪽으로 접힌 애가 동이고, 위로 서 있는 애는 덕선이요.”


<사락사락>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이고 옆집 개 돌봄 첫날이다. 아침 일찍 외출 준비를 하는데 긴장한 마음에 거실을 서성거렸다. 사냥개 본능과 충성심 끝판왕 큰 개 두 마리를 주인 없이 2:1로 만나는 날이다. 내가 불리하다. 뇌물을 바쳐야 한다. ‘줄만 한 게 없을까.’

옆집 부부가 이사 오고 얼마간은 녀석들이 마냥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달 새 훌쩍 커버린 개들을 보니 무서웠다. 나를 보호자로 보기보다는 침입자로 볼 가능성이 있다. 철장 안에 있다 해도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기엔 겁이 났다. ‘으르렁 대면 어쩌지?’ 돌봐 준다고 했지만, 걱정이 앞섰다. 녀석들이 내 두려움을 눈치채면 끝이다. 서열에서 밀리는 거니까. 반드시 오늘 뇌물을 바쳐야 한다.

냉동실에 있는 고구마말랭이가 떠올랐다. 둘째 언니가 찌고 자르고 말려서 갖다 준 고구마말랭이. 직장 다니며 힘들었을 텐데 조카들 먹이라며 준 귀한 고구마말랭이.


‘ 언제도 이거 주니까 잘 먹었지. 바로 너다’ 고구마말랭이를 꺼내서 녹였다. 동이 5개, 덕선 5개 딱 10개만 주머니에 챙겼다. 이거 동나면 없는데 언제 끝날지 모를 돌봄 기간 요긴하게 쓰일 뇌물이다. 옷을 걸치고 신발을 신는데 살짝 긴장됐다.


개집은 우리 집 반대편에 있고 문도 걸려있지만, 쪽문을 살그머니 열고 몸을 모로 세워 들어갔다. 우려와는 달리 평소처럼 두 녀석 다 짖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두근반세근반 콩닥콩닥 심장이 뛰었다.


“안녕. 동이야. 덕선아” 철장 너머로 먼저 고구마말랭이를 주었다. 손이 물릴까 조심하며 '후우' 한숨을 내쉬고 세 개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자유가 눈앞이라는 걸 눈치 챘는지 격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래. 그래 알았어. 빨리 열게. 힘들었지. 이제 자유다. 야! 근데 누가 동이고 누가 덕선이냐? 가만 보자 그래 너구나. 네 귀가 접혔네.”

펄쩍펄쩍 좋다고 내 몸으로 뛰어 올라왔다. 몸 구석구석을 큰 개 두 마리가 탐험하듯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좀 무서웠지만 그대로 서 있었다. 녀석들이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을 내뱉으면서.


녀석들은 내 얼굴과 손을 핥았다. '불온한 이 행동은 뭐지?’ 익숙하지 않은 흙발과 끈적한 침, 심하진 않지만, 특유의 개 냄새에 몸을 뒤로 젖혔다.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간신히 중심을 잡았고 애써 태연한 척했다. 녀석들 기에 밀리면 안 된다.

녀석들은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내게 뛰어오르기를 몇 번이고 했다. 좋아서 그런가 생각했다. 각자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땅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다 볼일을 봤다. 마당 구석구석을 다니며 풀도 뜯어먹었고 낯선 소리가 나면 재빠르게 고개를 들어 응시했다.

피식 웃음이 삐져나왔다. 머리털 나고 개를 돌보는 건 처음이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고구마말랭이로 녀석들 마음을 열었다.


제주인이 아니라고 덤비고 물면 어쩌나 밤새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그래도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인 것처럼 어색했다.


“안녕. 저녁에 보자. 엄마 가야 해.”

어~~ 엄마? 엄마라니 내가 말해놓고도 우습다. ‘아이고.’ 그새 마음을 주긴 줬나 보다. 내가 외출할 때 마당에 풀려 있던 녀석들이 벚꽃 나무 아래로 달려와 꼬리를 흔들 때부터. 한 번도 짖지 않고 마중하듯 바라볼 때부터. 지금보다 작았던 덕선이, 그보다 더 작았던 동이가 왔을 때부터 마음을 열고 있었나 보다.

모임에 가려고 가방을 드는데 옆집 개들 보러 가며 식탁에 그대로 놓아둔 고구마말랭이 봉지가 눈에 띄었다. 잔뜩 긴장해서 다시 냉동실에 넣는 걸 잊은 거다.


노란 고구마말랭이는 여태까지 언니에게 받아먹었던 것 중 최상급이었다. 어쩌면 이리도 맛깔스러운 빛을 띠었는지 냉기가 사라진 고구마말랭이는 쫀쫀하니 윤기가 나고 먹기 좋게 말랑거렸다.

‘모임에 고구마말랭이를 좀 가져가야겠다.’ 순간 멈칫!

‘아! 아니다. 요거 떨어지면 없는데 아꼈다가 동이랑 덕선이 줘야지.’


냉동실에 다시 넣었다. 내 입에도 작은 부스러기만 넣었다. 빈손으로 모임에 가며 늘 우리를 먹여 살리는 프로살림꾼에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웃음이 나왔다.


애견인 노 OO 님의 말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관심 없는 분야의 이야기를 건성 듣는 버릇이 있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렇구나." 했지만,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했었다.


사진: Unsplash의 Cristian Castillo


“엄마, 꼭 엄마 필요한 거 사세요. 토리, 보리 거 그만 사시고요.”

아들이 첫 아르바이트로 해 용돈 주면서 한 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강아지 용품을 산다고 했다. 간식도 좋은 것 사고, 예쁜 거 있으면 사고. 자신보다 강아지를 챙기게 된다고 했다. 강아지가 꼭 자식 같다고 했다. 너무 예쁘다고 했다.


냉동실에 고구마말랭이 있다고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을 작정인 내 마음이 보였다. 나도 참 웃기는 짬뽕이다. 남의 개를 돌보면서 지인이나 자식보다 개를 더 생각하고 난리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아기가 태어나도 큰애만 예쁠 것 같았다. 예상은 빗나갔고, 둘째도 예뻤다. 남편에게 주택은 싫다고 했지만, 주택에 살면서 좋았다. 잡초, 벌레, 시내와의 먼 거리, 아이들 픽업 수도 없이 불편했지만, 탁 트인 공간과 땅을 딛는 촉감, 나무와 꽃도 좋았다. 자연의 섭리도 보였다. 마음이 바뀌었다.

옆집 개들에게 마음이 생길 게 뻔하다. 돌본다는 건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 마음을 주지 않을 수 없고 정이 들것이다. 주인이 돌아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야겠지만, 옆집 개들 일이 내 일 같을 것 같다. 그럼에도 당분간은 녀석들에게 마음을 열기로 했다.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시선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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