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엄마가 되었습니다

친해질 수 있을까?

by 김작가

일정 시간 마당에서 뛰어놀던 옆집 개들이 한 주 내 제집에 갇혀있는 듯했다. 밤이면 외등을 켜두어 운치 있고 환하던 집은 불도 꺼져있고 인기척마저 없었다. 왕래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개들은 어떻게 해요?”

“안 그래도 걱정이네요.”

“주중에 애들 봐줄 사람 없으면 제가 잠깐씩 마당에 풀어놓을까요?.”

“너무 고마운데 미안해서 어쩌죠?”

“괜찮아요. 이럴 때 도우라고 이웃인 거죠.”

사정상 모두 집을 비우게 되었다고 한다. 금요일쯤 타지에서 학교 다니는 막내아들이 개들을 돌보러 올 거라고 했다. 자원해서 시작한 개 돌봄. 옆집 개들과 나, 시크한 우리의 일상에 변화가 찾아왔다. 말하는 대로 된다더니 <어쩌다 글쓰기 모임 짱이 되었습니다>에 쓴 대로 개들을 돌보게 되다니 대박이다. 오 마이 갓!!

목에 열 돈 팔목에 열 돈 합이 스무 돈. 깡마른 몸, 튀어나올 듯 큰 눈엔 핏발이 서 있는 길 건너 금목걸이 아저씨네는 셰퍼드가 산다. 일주일에 두어 번 본인 소유의 빈 땅에 중장비를 나르는 아저씨는 검은색 래브라도를 키운다. 녀석은 가끔 목줄 풀려 있고 우리 집 마당에 올라와 어슬렁거리다 볼일을 봐 놓고 가기도 한다. 이런~ 환장하겠다.

앞집에는 덩치에 안 맞게 겁 많은 똥개가 엄마랑 둘이 산다. 얼마 전 중성화 수술을 했다더니 날렵함은 어딜 도망가고 뒤룩뒤룩 살진 모습이 볼품이 없어졌다. 제 엄마 눈에만 예쁘고 떡 대가 있는 거다. 살이 찐 것 같다고 몇 번을 얘기해도 아니라고, 아니라고 어깨가 넓어서 그렇다고 우기지만, 내 눈엔 영락없는 돼지다. 뒷집에는 영리한 진돗개 한 마리가 까칠한 주인과 산다. 개는 이쁜데 주인이 영 정이 안 간다. 가까이하기 엔 너무 먼 당신이다.


옆집에는 한일 합작품 진도 시바견이 산다. 진돗개와 시바견을 교배한 거라는데 나는 그냥 시바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닌다. 비록 내 개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개와 고양이’가 대세니까. 끼려면 동네 개 얘기라도 해야 한다.

사진: Unsplash의 Karsten Winegeart


우리 동네 웬만한 주택에는 다 개가 있다. 개를 안 키우는 집은 우리 집뿐이다.

남편은 개를 싫어하고 큰딸은 무관심하다. 개는 쳐다보지도 않는 대차게 무서운 사람들이다. 둘째 딸은 개를 무서워하고(많이 좋아짐. 옆집 막내가 남잔데 동갑이고 친함, 막 영화도 봄) 막내도 딱히 관심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막내는 간혹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네 집에 다녀온 날은 사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무슨 그리스인 조르바도 아니고 말이야’ 그나마 그것도 그때뿐이고 지나가는 바람이다. 다행이다.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엔 입양 후 책임은 내가 떠맡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딱 잘라 거절했다.


나? 무관심하다. 자연 친화적인 인간이 아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그다지 관심이 없다. 자연이 주는 것은 무엇이든 흔하고 잘 알려진 것만 알고, 바라보는 게 제일 좋다. 예쁜 꽃이라고 꺾어 들이지도 않고 꼬리를 흔든다고 정을 주는 쉬운 여자도 아니다. 만만한 사람 아니다. 푸 하하하~




앞집 개는 괜히 짖는 버릇이 있다. 꼬리를 내리고 얼굴을 돌리며 짖는 모양으로 보아 쫄보가 확실하다. 울타리 높은 집에 살다가 우리 앞집으로 이사 오더니 수시로 우리 가족을 보면 짖는다. 내가 내 집 마당 밟는데 짖어대니 얄미워서 샤워 호스로 물 한번 뿌려 줬더니 놀라서 꼬리를 내리고 도망갔다.


뒷집 개는 뒤 뜰에 메여 있어 얼굴 보기가 어렵다. 짖지 않아서 있는 티가 안 난다. 무서워서 그 집 주변엔 가지 않으니 더 못 본다. 까칠한 주인이 일정한 시간에 산책 시키는 걸 하루 두 번 볼뿐이다.

옆집 개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저씨는 회사 일로 귀가가 늦는 경우가 많고, 아이들과 안 주인은 주말에만 오니 사람을 그리워해 그런가 싶다. 한 번도 짖지 않는다. 외출 하는 우리 가족을 향해 달려와 꼬리를 흔들며 빤히 쳐다보니 안쓰럽기도 했지만, 괜히 마음이 갔다.


개들은 희한하게 주인을 닮았다. 그런 녀석들을 볼 때면 혼자 피식 웃곤 한다.

좋은 이웃이었던 시인이 이사 가고 옆집 부부가 이사 온 지도 반년이 다 되어 간다. 이사 올 때 작고 아담했던 시바견도 많이 컸다. ‘동이’와 ‘응답하라 1988’을 좋아하셨나? 개들 이름이 ‘동이와 덕선’이다. 아직은 누가 누군지 구분 안 되지만 외출할 때면 녀석들이 목을 길게 빼고 쳐다보니 ‘동이, 덕선이 안녕’ 하고 인사하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1단계 웃으며 인사하기. 동네 이웃들과의 관계도 딱 거기까지다. 길 건너 집과 앞집, 뒷집도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정도다. 옆집도 우리 집과의 사이에 쪽문을 냈어도 그저 머물러 있었다. 모두 바빴고, 서로 더 다가가지 못했다. 옛날처럼 품앗이가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니 도움을 청할 일도 많지 않다. 우리에겐 이미 각자의 지인들이 있기도 했다.

좋은 이웃을 만나길 바라 왔었다. 마음은 원이로되 행동은 언제나 굼뜨다고, 마음만큼 이웃을 향해 다가가기 어려웠다. 쑥스럽고 부끄럽고 어색하고 불편하고 귀찮고. 냉이와 달래, 봄동 나물을 문 앞에 놓고 가던 허물없이 다가와 차 한잔을 청하던 예전 옆집 살던 시인처럼 살 수 있을까?

저녁이면 제법 쌀쌀해지는 봄밤. 연분홍 꽃잎이 떨어지고 푸른 잎만 가득한 벚꽃 나무 아래 앉아, 일몰이 몰고 온 생각에 잠겼다.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옆집 가족에게. 숙명처럼 다가온 동이와 덕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