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서스 Nov 25. 2024

'낭아퐁퐁권'을 쓰면 저작권 침해일까?

1. 서론


우선 시작하기 전에.


세계구 급 명작이었던 '드래곤볼'의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대략 올해 3월쯤이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알게 되었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제목에 '낭아퐁퐁권'이라고 썼는데, 드래곤볼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건 드래곤볼에 나오는 '낭아풍풍권(狼牙風風拳)'이라는 기술을 21세기 헬조선(...)에 맞춰 살짝 패러디한 겁니다. 드래곤볼 1권부터 출현했지만 끝내 조연으로 머물다가 결국 엑스트라로 내려간 '야무치(일본 현지명 야무차)'의 기술이었죠.


야무치는 초반에 나름 멋있는 캐릭터였습니다만 장기연재 과정에서 점점 더 비중을 잃어 갑니다. 뭐 당연히 작가가 모든 등장인물을 다 강조할 수는 없으니 몇몇은 공기화(!)되는 수 밖에 없죠. 슬램덩크에서 보조센터로 등장하는 안병욱이 공기화되고 / 지나가는 깡패1 수준이었던 정대만이 갑자기 슈퍼 울트라 캡짱 만능농구맨으로 승격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야무치는 그렇게 공기화되는 캐릭터 중에서도 거의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초반 색기담당 여주인공이다가 후반에도 일정한 비중을 차지하는 '부르마'가 무려 우주깡패 베지터와 맺어졌을 때, 초~중반까지 부르마의 남친이었던 야무치는 찍 소리도 못하고 찌그러집니다...


(솔직히 베지터한테 개길 수는 없죠. 카카로트는 나름 '재미없으면 살려 준다'는 개똥철학이라도 있지만 베지터는 그냥 싹 다 죽이거든요;;)


초반에 강렬한 인상을 줬지만 중반부터 공기화되다가 막판에 가면 아예 엑스트라로 전락하는 캐릭터 야무치. 그래서인지 야무치는 의외로 팬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나름 현실적인 캐릭터여서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 같더군요.



21세기 Hell조선에서는 한때 '퐁퐁론'이 꽤 유행했었습니다. 몇몇 헬조선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면 일종의 [시대정신] 급이었어요. 뷔페미 세력에서는 2~3개월만 유행하고 사라지는 담론들도 시대정신이라고 우기니 퐁퐁론 정도 되면 충분히 시대정신 맞죠.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님의 사망소식을 뒤늦게 알고서 드래곤볼 관련 정보를 찾아보다가... '낭아퐁퐁권'을 주제로 소설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외계인에게 NTR 당한 야무치의 비참함(!)을 주먹에 담아 고속돌격으로 한 방 뽷! 퐁퐁남의 최후 반격 필살기 이름으로 어울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냥 막 쓰면 안 됩니다. 다른 작가님들의 저작권을 충분히 존중해야죠.


다만, 저작권이라고 해서 세부 용어까지 모두 보호되는 건 아니고 '작품의 전체 플롯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일부 용어만 변형하여 빌리는 정도'로는 저작권 침해가 아닙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지식 선에서는 그러합니다.


오늘은 저작권 관련 얘기를 좀 길게 해 보겠습니다. 제목에 언급한 낭아퐁퐁권은 말미에 조금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론


(1) 작가가 새로 창안한 단어 : 당연히 저작권 인정됨


낭아풍풍권. 마관광살포. 가메하메파. 마섬광. 태양권.


모두 드래곤볼의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님이 새로 창안한 단어들입니다. 특히 낭아풍풍권이나 마관광살포는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는 모두 통용될 만한 한자를 사용하되 기존 중국어 문법과 무관하게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냈죠.


미스릴. 로한. 미나스 티리스. 사우론. 사루만. 나즈굴.


이 또한 톨킨 교수님이 새로 창안한 단어들입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체계화된 판타지 세상은 일부 과거의 신화들과 연결되지만, 저 용어와 고유명사는 톨킨 교수님의 발명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 창안한 단어'에 대해서는 당연히 저작권이 인정됩니다. 이 단어 자체를 상표권으로 등록한다면 상표법에 따라 보호되기도 하겠지만 그런 등록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최초의 창안자로서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 단어 자체를 쓰면 안 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당장 저부터도 저 단어들을 그대로 옮기고 있죠. '~~라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려 할 때에는 그 단어 자체를 쓰는 데에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그럼, 상업적 영역의 창작물에서 저 단어들을 사용하는 건 금지될까요?


이것도 전면 금지된다고 보긴 어렵죠. 각 단어가 사용되는 상황, 해당 창작물과 원 저작물 간 유사성(표현, 설정, 전체적인 플롯, 장면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상황이나 전체 플롯이 매우 다르고 상업적으로 저작재산권을 침해할 의도가 없다는 게 명백하다면 딱히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항을 바꾸어 조금 풀어서 설명해 보죠.



(2) 설정, 플롯 등을 완전히 다르게 한 경우 : 저작권 침해 의도가 없다면 사용 가능


우선 예를 들어 봅시다. 드래곤볼을 아시는 분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시입니다.


드래곤볼 원작)

주인공 손오공은 사이어 행성에서 온 외계인으로 지구를 정복하러 왔다가 머리에 큰 충격을 받고 기억상실되어 인간으로 자라났다. 사이어 행성이 멸망한 후 손오공의 친형 '라데츠'가 지구로 찾아오고 손오공은 자신의 라이벌이자 또 다른 외계인인 피콜로와 힘을 합쳐 라데츠를 죽인다. 이 때 피콜로가 쓰는 공격기술은 '마관광살포'.


야무치는 이때쯤 공기화되어 등장하지 않음.


ex1)

'항우'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사실 이 항우는 '소이우'라는 행성에서 온 외계인으로 지구를 정복하러 왔다가 머리에 큰 충격을 받고 기억상실되어 인간으로 자라났다. 소이우 행성이 멸망한 후 항우의 친형 '항적'이 지구로 찾아오고 항우는 자신의 라이벌이자 또 다른 외계인인 범증과 힘을 합쳐 항적을 죽인다. 이 때 범증이 쓰는 공격기술은 '초살관광포'.


ex2)

'안무치'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 안무치는 젊었을 때 공부만 하다가 뒤늦게 미녀와 결혼한 직장인. 어느 날 안무치는 아내가 바람피우는 걸 알고서 현장을 급습(!)하지만 불륜남에게 처맞는다. 이 때 안무치의 마음 속에 피어오른 분노가 '낭아퐁퐁권'으로 완성된다.



자, 두 가지 예시를 들었습니다.


1번 예시에서는 등장인물 이름이 싹 바뀌었고, 외계행성 이름과 공격기술 이름도 바꿔 놨습니다. 그런데 설정과 전개 방식은 드래곤볼 원작을 그대로 옮겨 놓은 상태입니다.


2번 예시에서는 야무치-낭아풍풍권에서 안무치-낭아퐁퐁권으로 바꿔 놨습니다. 그런데 설정은 완전히 다르죠. 외계인과 배틀을 벌이는 게 아니라 인간끼리 (불륜남과 퐁퐁남끼리) 맞짱 뜨는 설정입니다. 각성한 안무치의 낭아퐁퐁권도 원작과 무관하겠죠.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할 때 '전체 설정, 개별적인 표현의 유사성, 플롯의 진행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합니다. 위 1번 예시처럼 설정과 플롯 전개 방식을 그대로 가져왔다면 저작권 침해 인정됩니다.


반면 2번 예시처럼 '일부 이름은 유사하지만 설정과 플롯 전개 방식이 완전히 다를 때'에는 저작권 침해가 아닙니다. 이런 전개에서 원작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아 일부 캐릭터나 기술 이름을 유사하게 가져간다면 이건 '오마쥬(hommage)'가 되겠죠.


톨킨 교수님의 표현을 일부 가져올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SF장르에서 인간이 처음 발견하는 금속을 '미스릴'이라고 부르는 건 반지의 제왕 설정과 무관한 오마쥬가 될 것이고, 반면 거의 유사한 설정으로 소설 쓰면서 '미스릴 체인셔츠를 입은 호빗이 트롤의 광폭한 창에 찔렸는데 잘 살아남았다.'는 전개를 한다면 이건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겠죠.



저는 소설 쓸 때 '다른 문화영역에서 발생한 현상'은 거의 그대로 인용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 '도깨비'가 인기를 끌고 그 OST가 여기저기서 들릴 때에는 그냥 소설 내에서 OST 가사를 그대로 옮깁니다. 도깨비 OST가 유행하는 현상 자체를 소설의 배경으로 활용하는 거죠. 물론 소설 자체의 플롯과 사건 전개는 드라마의 내용과 무관하게 진행해야 하구요.


또한, 대한민국(가끔 헬조선)의 사회현상으로 이해할 만한 유행어들도 그대로 인용하는 편입니다. '내가 이럴려고 드래곤 했나 자괴감이 든다', '이 차원 이동 문을 Yuji하려면 더 많은 마나가 필요해', '확 XX를 찢어버릴까 보다'(...) 등등은 너무 과다하게 남용하죠;;


이렇게 사회현상 유행어를 남발하는 방식을 그리 좋아하시지 않는 독자님들도 계십니다만, 저는 그냥 그대로 씁니다. 어차피 글 쓰는 작가 본인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로 말하고 한글로 글 쓰는데 한국의 사회현상이 반영되는 건 당연하다는 게 제 생각이고, 그래서 제 생각대로 쓰고 있습니다.



(3) 혐오표현인가? 그럼 어쩔티비?


얼마 전에 '퐁퐁남은 혐오표현이에욧 빼애애액!' 이라는 취지의 기사를 봤습니다. ㄴㅇㅂ 웹툰 공모전에 '이세계 퐁퐁남'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올라왔는데 이 작품이 1차 심사를 통과한 걸 놓고 거품 뽀골뽀골 뿜어내는 집단의 시각을 고스란히 반영했더군요.


뭐, 혐오스럽다는 판단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고무줄 잣대를 동원할 수 있는 영역이니 그건 따지지 않겠습니다. 각 개인 몇몇이 혐오스럽다고 받아들이면 그 개인들에게는 혐오스러운 거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 몇몇이 혐오스러워하면 어쩔티비? 난 그냥 내 취향대로 글 쓰는데?


안 읽으면 그만입니다. 저를 포함한 취미 웹소설 작가들이 무슨 글을 쓰든 간에, 마음에 안 들면 안 읽으면 그만입니다.


상 안 주는 건 그럴 수 있습니다. 나름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야 하는 사업자들이 논란 될 만한 작품에 상을 못 주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건 뭐 글 쓰는 작가가 받아들여야겠죠.


그냥 저는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쓸 뿐입니다. 한 줌도 안 되는 뷔페미들이 10선비 문화테러리스트들과 결탁하여 '혐오표현이에욧 빼애애액!'이라고 설치든 말든 다 무시하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입니다.


여기서 필립 로스의 명언 들어가야겠죠. 다른 글에도 인용했듯이,


"내가 역겨운 글을 쓰는 것은 역겨워지려는 것이 아니라 그 역겨움을 재현하려는 것이며, 내 모든 역량을 다해 그 역겨움을 정확하게 묘사하려는 것이며, 그 역겨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지 명확하게 밝히려는 것이다."


라는 게 필립 로스의 반론(反論)입니다.


한 달도 못 가는 헛소리를 시대정신이라고 우기는 집단이라면 벌써 2년 가까이 지속되는 '퐁퐁론'에 대해 외면할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퐁퐁론을 재현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며 그 원인을 밝히려는 작업을 폄하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저 집단은 이딴거 생각 안 합니다. 20년 넘게 끝없이 모순을 지적해도 여전히 '좋은 것만 빼먹을 거야 빼애애액!'을 시전하는 뷔페미 정신병자들은 말로 설득할 수가 없습니다. 모순이 본질이라는데 뭐 어쩔티비.


설득 포기하고 각자 갈 길 갑시다. 저는 한 점 망설임 없이 혐오표현을 쓰고 혐오소설을 쓰겠습니다.


글이 좀 길어졌는데, 위 예시2에 짧게 요약한 '안무치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4) 낭아퐁퐁권 : 퐁퐁남의 이세계 필살기


'안무치'는 나름 연봉 상위권에 드는 직장인. 대략 로스쿨 졸업한 변호사 정도 된다.


안무치는 공부에 몰빵하느라 젊은 시절에 연애를 제대로 못 했다. 나이들어서 미녀와 결혼했고 잠시 행복한 것 같았지만... 안무치가 '퐁퐁당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무치는 '아내가 불륜남과 바람피고 있는 고층빌딩의 한 사무실'을 급습한다. 그리고... 불륜남에게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처맞는다. 한평생 공부만 한 비실이 변호사는 광포한 폭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털린다.


Hell조선의 신념(!)대로 살아온 나날들. 그저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공부만 열심히 하면 여자가 트럭 단위로 찾아올 거라는 헛소리를 믿고 모범생으로만 살아온 날들. 그 의미없는 시간들이 안무치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분노.


"이런 C팔 다 죽여 버리겠어!"


모든 인간은 육식동물이다. 모든 인간은 마음속에 늑대의 송곳니를 감추고 있다. 어느 순간 폭발하여 심장을 찢고 나오는 흉악한 송곳니를 '문명'의 이름으로 포장한 채 마음 깊이 품고 있다.


그 송곳니가 드러났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고속돌격으로 형상화되었다.


"낭아~~퐁퐁권!"


터엉!


계속 안무치를 구타하던 불륜남은 역빵 한 방에 무너진다. 늑대의 송곳니에 명치를 찔린 것처럼 한 방에 호흡을 멈춰 버렸다. 그리고 한참을 튕겨져 날아가 빌딩 밖으로 추락해 버렸다.


사람을 죽인 안무치. 이제 감옥 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CCTV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고?


낭아퐁퐁권의 비밀. 그건 '시전자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미칠 듯한 분노로 한계를 초월한 퐁퐁남에게 [안 걸리면 암살] 이라는 비장의 무기를 선물해 주는 기술이었다.


이런 좋은 기술이 있으면 널리 퍼뜨려야지. 퐁퐁남들의 심장에서 늑대의 송곳니를 끄집어 내 줘야지.


낭아퐁퐁권. 이제부터 시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부하세욧!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