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홍보 글 같지만 그런 건 아니구요. 제 개인적인 감상평입니다. 어쩌면 제 인생 중 일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구요;;
게임업계에는 '3대 악마'로 불리는 게임이 있고 그 게임을 제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기준이 달라지긴 합니다만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게 '디아블로 제작자 빌 로퍼'와 '문명 제작자 시드 마이어'죠.
(다른 하나는 피파 온라인 시리즈라고 합니다만 저는 스포츠 게임은 안 해서 잘 모르겠네요.)
디아블로를 만든 빌 로퍼는 악마 맞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사법고시 2차 시험을 준비하던 때에 하필 디아블로2가 나왔었죠. 고시생인 동시에 아마존 활전사 95레벨 찍었으면 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그 때 당시에는 디아블로가 킹왕짱인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50살이 되어 다시 추억의 옛 게임 여행을 하다 보니... 시드 마이어도 만만치 않은 악마네요. 천명을 알게 된다는 50살 나이에도 시간을 삭제하면서 빠져들 만큼 좋은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간을 삭제시켜 버리는 악마의 게임입니다. 일단 시작하게 되면 인생에서 최소 3일이 사라져 버립니다;;
제가 플레이한 문명 시리즈는 3편까지였습니다. 그 뒤로 3D 그래픽을 적용하면서 시스템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는데, 2010년 이후에는 다시 직장인으로 복귀해서 4편 이후의 시리즈는 해 본 적이 없네요.
뭐, 3편만 다시 해 봐도 시간삭제되긴 마찬가집니다. 설 연휴 9일 중에 5일이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독일로 지구정복하고 오스만으로 또 한 번 정복했더니 어느새 휴일이 다 가 버렸네요;;
그래도 예전 30대 초반에 몰입했던 것과는 좀 다르게 [적절히 끊어 주는 현실 이벤트]가 있긴 했습니다. 연휴가 끝나면 출근해야 되잖아요 ㅠ.ㅠ
(50살 먹은 남편이 5일 연속으로 게임만 하는데 다 용서(!)해 준 와이프님께 감사드립니다. 물론 제 와이프는 제가 쓰는 글들을 안 보니까 감사하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러합니다^^.)
이렇게 적절히 게임 끊고 현실생활로 돌아와서 잠시 생각해 보니...
문명 게임을 즐기던 동안의 저는 잠시 신(神)이었습니다. 4대문명 발원 이후의 역사를 대충 알고 있고 그 역사대로 한 인간집단을 발전시켜 나가는 신이었고, 그 신의 권능대로 전 인류를 농락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현실로 돌아온 저 자신은... 그 거대한 게임 속에서 일하는 일꾼1일 뿐이네요. 그것도 도시 밖에서 일하는 일꾼이 아니라 대도시 안에서 재무연구를 해서 돈+1에 기여하는 일꾼.
물론 현실 일꾼 역할을 잘 해야 가끔 게임 속 신 놀이를 할 수 있긴 합니다. 현실 일꾼 역할을 포기하면 게임 속 신이 될 수도 없죠. 한국나이 50에 그 정도 개념은 탑재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는 현실 개념 외에 또 다른 옵션(?)을 하나 더 장착하고 있습니다. '소설'이라는 옵션인데요.
게임 속 신에서 현실의 일꾼으로 전락한 날. 소설가로서의 옵션이 발동하려 합니다. 게임 문명을 현실로 구현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지네요.
아마 유사한 소설이 많을 것 같긴 합니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는 30년 넘게 롱런하고 있으니 비슷한 팬픽이 많았겠죠. 지금 제가 쓴다고 해도 잘 팔릴 것 같진 않네요.
그래도 일단 머릿속에 떠올랐으니 정리해 놓긴 해야겠죠. 간단하게 시나리오만 요약해 보겠습니다.
<시나리오> 신(神)이 된 문명 플레이어
주인공 A는 오랫동안 '악마 시드 마이어'에게 농락당한 캐릭터.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해 직접 인간세계로 강림한 시드 마이어가 A를 게임폐인으로 만들었다. 시드 마이어 나빠요.
하지만 모든 일이 극한으로 치달으면 통하는 길이 열리는 법. A의 간절한 소망이 온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았다. '천지창조'의 힘이 A의 방에서 뻗어나와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 버렸다.
어느 날 눈을 뜬 A는 동물가죽을 두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놀랄 틈도 없이 대화가 시작된다.
"당신. 누구?"
"인간? 동물?"
사람들의 언어는 매우 단순하고 대략 1천개 미만의 단어만 사용하는 수준이었지만, 의외로 말이 잘 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차원 자체가 A의 정신력으로 재창조된 세계관이었으니까.
현대문명의 옷을 입은 A는 원시부족 사람들에게 매우 신비로워 보였나 보다. 원시부족은 A를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떠받든다. 처음에 잠시 당황했던 A도 이내 분위기에 적응하게 된다. 원시부족이 상납하는 신선한 음식물도 받아먹는다. 생선도 먹고 조개도 먹고. 어익후 회 문화 조으네.
어어, 그런데... 이 원시부족, 음식물을 '손'만 이용해서 들고 다니잖아? 이러면 많이 못 들 텐데?
A는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챈다. 이 원시부족은 아직 항아리(Pottery)기술이 없다는 것.
역사시간에 배웠듯이, 동아시아 신석기 시대에는 빗살무늬 토기 기술이 있었고 청동기로 넘어가면서 민무늬 토기를 만들어 음식물을 보관하고 운반했었다. 즉, 문명시대 초반에는 흙으로 항아리를 만드는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선구자 노릇을 할 수 있었다.
A는 주위의 찰흙으로 항아리를 만든다. 바닷가에서 조개를 채집하는 미녀(!)를 위해 항아리 아랫부분을 뾰족하게 만들고 손이 미끄러지지 않게 빗살무늬를 새기는 건 기본. 나 한국사 배운 사람이야!
A가 빗살무늬 토기를 들고 시범을 보이자... 원시부족들이 크게 환호한다. 오오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이 있었다니. 손으로 드는 것보다 오조오억배 더 편하잖아.
"차차웅! 차차웅!"
흠. '차차웅'이라는 말 어디서 들어봤는데? 대략 왕 부르는 호칭 아니었나? 부족이 코딱지만큼 작으니 왕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대략 두목 정도 될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최고지도자 호칭이었지?
뭐, 이 시대에 두목 노릇 하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다. 원시 채집~농경 사회에서 두목 자리 잘못 맡으면 수확물이 적을 때 모가지 따이는 수가 있다. 조심해야 한다.
다만... A에게는 '미래 지식'이 있다. 항아리, 석조기술, 바퀴, 매장의식 등등. 그리고 결정적으로 문자(文字)도 만들 수 있다.
당장 청동기술이나 철기기술은 못 쓰지만 그건 뭐 천천히 알아가면 되겠지. 근처에 초기 청동 기술을 개발한 부족이 있다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구리광산과 주석광산이 있을 테니 적절히 무역을 하면 될 것이고. 까짓거 안 되면 약탈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럼 시작해 볼까. 항아리(Pottery) 기술 하나 배운 원시부족 데리고 현실 문명게임 스타트!
물론 위기는 있을 것이다. 특히 '무사도'를 자체 터득한 군사특기 종족은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부족 자체가 멸망할 수도 있다.
그래도 청동 기술을 잘 배우고 팔랑크스(Phalanx) 진형을 연습하면 어찌어찌 막아낼 수 있으리라. 문명게임 덕후답게 초반 위기를 극복해 내야겠지.
가 보자. 탱크 뽑아서 적 창병 털어버리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