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써 놨던 글인데 오늘 올립니다. 앞으로도 이 '웹소설 쓰는 법'에 올라오는 글 중 상당수는 몇 달 전에 미리 써 놨던 글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1. 서론
전에 어딘가에서 paradox와 irony가 헷갈린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헷갈리네요.
뭐 딱히 구별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충 상황에 맞게 '모순되는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하면 그만이죠. 소설가 입장에서는 딜레마 / 패러독스 / 아이러니 등등을 굳이 구별할 필요 없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괴로워하고 또 그걸 극복해 내는 인간의 모습'을 잘 그려내는 게 중요하고, 용어의 정의를 정확히 하는 건 부차적인 일입니다.
저는 인간 내면의 갈등과 모순을 그려내는 걸 좋아합니다.
- 동물 살육을 피하기 위해 채소만 먹는다는 비건(Veagan)들이 매우 잔인한 방법으로 타인을 괴롭힌다거나,
- 개를 사랑하고 고양이를 아끼는 애견/애묘인들이 막상 그 동물들에게 어린이들이 공격당하는 상황이 되면 오또케 오또케만 외치면서 아무것도 안 한다거나,
- 전쟁 상황에서 부하들을 갈아넣던 윗대가리들이 막상 본인 스스로 죽어야 할 입장이 되면 바지에 똥오줌 싸면서 벌벌 떤다거나,
뭐 대충 그런 걸 선호합니다. 소설 한정으로요.
이런 이중적인 모습은 대부분 역겹죠. 예전에 인용한 필립 로스의 말대로, 그 역겨운 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생생히 보여 주는 게 작가들의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하구요.
대부분의 경우 갈등과 모순이 역겨운 것으로 형상화되긴 하지만... 가끔은 '좋은 모순'도 있습니다. 지금은 힘겹고 어렵고 괴롭지만 나중에는 그 고통이 기쁨과 명예와 영광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걸 모순이라고 부를지, 딜레마라고 부를지, 혹은 초극(超克)이라고 부를지는 각자 잘 결정하시면 됩니다. 소설가 입장에서는 그 변화 과정을 묘사하는 게 중요할 뿐, 용어는 별 상관 없습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제목대로 '비효율의 효율'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글은 주로 현실에서 제가 겪고 느끼는 것 중심으로 쓰게 될 것 같네요. 나름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제 인생을 돌이켜보는 글이 될 듯 합니다.
시작해 보겠습니다.
2. 본론
(1) 비효율의 효율 첫번째 : 공부
저는 'Hell조선' 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 말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저는 좋아해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잖아요.
헬조선 대한민국은 세계에 유래 없는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쟁 벌이고 있는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수준으로 출산율이 낮습니다. 이 나라의 삶이 전쟁보다 더 팍팍하다는 증거겠죠.
이 나라를 헬조선으로 만드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무한경쟁'이라는 건 다들 인정하실 겁니다. 그 무한경쟁은 만5세 때부터 시작되죠. 어린이집-유치원 때부터 선행학습 + 조기교육 + 무한경쟁 콤보 시작입니다.
제 아이들도 그 무한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가급적이면 안 시키고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초딩 때부터 영어 줄줄 외워대는 어린이들이 반마다 한두 명씩 있을 수 밖에 없고, 그러면 그 반 학부모들이 다 제정신 아닙니다. 학원 보내야죠. 영어 수학 무한뺑뺑이 가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게 과연 '효율적'일까요?
당장은 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당장 1~2년 앞서 나가고 고학년 문제를 풀면 뭔가 대단해 보일 수 있습니다. 아직 애들이 의문을 갖기도 전에 미리 머릿속에 주입시켜 주면 엄청 효율 좋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당장은 그렇겠죠.
20년 후에도 그럴까요?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은 자주 말하거나 / 듣는 얘기가 있습니다. "일을 배워서 하냐? 혼자 알아서 터득하는 거지. 니가 스스로 알아봐."
이 얘길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ㅆㅃㅃ 꼰대력 대폭발이네. 가르쳐서 잘 키울 생각을 해야지 뭘 혼자 터득해? 장난해? 뒈지고 싶어?" 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뭐 그럴 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여기서도) 그런데 말입니다.
10명 중에 1~2명은 정말로 혼자 알아서 터득하고 일 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벌이나 최종학력과 무관하게 정말로 '일머리'가 좋아서 본인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방법을 연구하며 시킨 일을 잘 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걸까요? 일머리 좋은 것도 배워서 하는 걸까요? 아니면, '혼자 고민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 걸까요?
몇 년 전에 [자기주도학습]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주도학습법을 가르치는 학원도 있었어요. 자기주도학습을 하기 위해 타인주도 학원의 주입식 교육을 받는다는 모순적인 패러독스가 이 헬조선 대한민국에 유행했었습니다.
뭐, 오래 전 학창시절의 저는 그런 자기주도학습법 교습 따윈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학교공부만 했어요. 중2 때와 고1 초반에 잠깐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학교 교재와 참고서(수학의 정석, 성문기본영어 포함)로 자율학습만 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부하던 시절이 '본고사 세대'였죠. `90년대 중반(94~96년)에 잠깐 부활했던 대학본고사 시절에 대입시험을 봤었습니다. 당연히 본고사 공부를 해야 했구요.
당시 본고사는 문과 이과를 가리지 않고 '수학'이 핵심이었습니다. S대 본고사 기준으로 수학 6문제 중 3문제를 맞추면 무조건 합격이고 / 2문제를 맞추면 국어 영어 점수로 당락이 갈린다는 카더라 통신이 있었네요. 지방에서는 정확한 기준을 알기 어려웠습니다만.
저도 나름 본고사 수학시험 준비를 했었는데요. 제가 있던 지방에서는 본고사 수준의 교육을 해 줄 수학 선생님이 없었습니다. 학교에도 학원에도 없었어요. 자율학습 시간에 애들끼리 문제 풀어 보는 게 유일한 대비책이었습니다.
당시에 일본 동경대 본고사 문제집을 가져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 문제집의 문제 하나를 놓고 몇 시간씩 고민하곤 했었죠. 실력 수학의 정석에 나오는 문제도 몇 시간씩 고민했었습니다. 가끔은 자율학습 시간 내에 끝내 못 풀고 다음 날 아침까지 고민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 학생들 기준으로는 비효율적인 학습법이죠. '미리 배워서 다 파악하고 간다.'는 현 시대의 학습법에서는 문제 하나로 이틀을 고민하는 건 비효율 그 잡채로 보일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비효율적인 공부방법이 S대 본고사에서는 통했습니다. 적어도 저 개인적으로는 저게 가장 효율적이었습니다. 당시 본고사 수학문제 6개 중에서 5개를 풀어냈었거든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혼자 며칠 동안 풀이방법을 고민하던 습관이 '대학 본고사'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비효율적의 극치로 내달렸던 게 막상 본고사 시험장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학습법으로 작용했고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뭐, 전체 인생을 통틀어 보면 대학 본고사 수학문제를 몇 개 더 맞췄다는 게 꼭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대학 간 이후에 다른 문제가 생겼었는데, 이는 제 다른 글에서 잠시 언급했었습니다.)
Hell조선 스타일의 선행학습 + 주입식 암기주도학습 + 무한경쟁 학원뺑뺑이 방식은 '무난한 보통교육에서 100점에 가까운 성적을 올리는 방식'입니다. 그 와중에 변별력은 있어야 하니 수능에서 듣도보도 못한 길이의 지문과 괴이한 이론들이 등장하는 것이구요.
이런 방식의 학습법은 '보통교육 수준을 뛰어넘는 높은 단계의 교육'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특히 [창의력]을 요구하는 분야에서는 오히려 독(毒)으로 작용하죠. 주입식 암기주도학습에 길들여지면서 각 학생들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과 응용력이 꺾여 버립니다.
여기에 더해, 이 나라는 자기주도학습법을 학원에서 가르치는 수준까지 가버렸습니다. 자체판단력과 응용력이 좋아질 리 없죠.
그 결과로 나오는 게 "안 배우면 못하겠다는 직장인" 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리마다 컴퓨터가 있고 인터넷이 다 연결되어 있으며 구글+네이버 콤보로 어지간한 지식은 다 습득할 수 있는 시대에 "안 배워서 못 합니다. 가르쳐 주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안 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나오는 원인 중에서 이 주입식 암기주도학습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자기주도학습. 모르는 게 있으면 알게 될 때까지 혼자서 고민해 보고 그 고민의 결과를 통해 비로소 한 걸음씩 나아가게 되는 학습.
이런 학습법을 지금 헬조선의 교육시스템에 도입한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죠? 무리무리무리.
대신 '인생'에는 도입해 볼 수 있습니다. 이미 교육은 끝났지만 인생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면서 자기주도적으로 취미를 발굴하고 자기주도적으로 자아실현을 해 볼 수는 있습니다.
인생 전체에서 적용하는 자기주도학습. 저에게는 '웹소설'이 그렇게 자기주도학습으로 도전하는 일이었습니다.
(2) 비효율의 효율 두번째 : 웹소설
저는 개인적으로 28살 후반부에 SF 소설을 썼었습니다. 그것도 '군대'에서요.
군대를 27살에 갔는데, 나름 행정병 보직을 받아서 컴퓨터를 쓸 수 있었습니다. 28살이 되어 상병 후반부 정도 되니 별로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해서 좋더군요. 군대에서 남는 게 시간이니, 20대 초반에 계획했던 소설을 쓰기 시작했었습니다.
다만, 당시에 이 소설을 완결하진 못했었습니다. 29살에 전역하고 다시 사회로 돌아왔더니 '게임'이 더 재밌었거든요. 하필 또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나오는 바람에... (호드를 위하여!)
게임하다가 취직하고, 취직해서 또 게임하고, 그러다 회사 그만두고 고시생으로 돌아오는 듯 했는데 또 게임하고, 그러다가 진짜 인생 망할 것 같아서 다시 취직하고. 어쩌다 운이 좋아서 정말 괜찮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애 둘 키우고. 나름 바쁘게 살았습니다. 45살 때까지는 소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국 나이로 45살이 되었을 때. 그때쯤에 저는 그리 좋지 않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묻어 놨던 소설을 잘 써서 소설가로 데뷔해 보자!'라는 생각도 했죠.
그리 좋지 않은 회사라고 했지만 막상 또 여유시간은 많은 회사. 거기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웹소설 연재 분량 기준으로 약 200편 가량 써 놨던 소설을 일부 편집하고 내용을 덧붙여서 총 310편 분량으로 완성했고, 자신만만하게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뽷!
그 결과는... 월 100원 수익.
만 단위를 생략한 게 아닙니다. 정말로 월 100원이었어요. 등장인물 소개 및 후기 등을 합쳐서 총 315편짜리 장편소설을 올렸는데 월 100원 벌었습니다. 막판에는 1일 조회수가 0인 날이 더 많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와이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컴퓨터 전기세가 아깝다!"
틀린 말은 아니죠. 월 100원으로는 컴퓨터 전기세도 안 됩니다. 그 시간에 컴퓨터 끄고 낮잠이나 자는 게 회사 일에 더 도움이 됩니다. 인정해야죠.
그 굴욕(!)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다른 웹소설 작가님들의 작품을 조금 살펴봤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남성향 소설들을 무료회차 15편까지 몇 개 봤죠. 물론 19금 요소(!)도 확인했구요.
19금 판타지 장르로 다시 도전했습니다. 이번에는 월 20만원 정도까지 올라가더군요.
다만, 여기서도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웹소설 몇 개를 살펴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전체 트렌드를 파악하기에 한참 부족했고... 그래서 'NTR 고구마 작품'이라는 댓글 반응이 나오게 되었거든요.
웹소설 연재하고 5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조금 완화된 것 같지만, 5년 전에는 NTR / 고구마 같은 컨셉은 거의 호환 마마 전쟁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었던 것 같네요. 아예 처음부터 작정하고 해당 키워드로 경고(!)를 준 게 아니라면 꽤 심한 역풍을 맞았습니다.
역풍 맞은 소설의 조회수가 급감하더니, 완결이 가까워지는 600화 시점에서는 신규 연재 편수의 조회수가 0인 날이 이어졌습니다. 이때쯤의 월 수익은 2~3만원 수준. 전기세는 벌 수 있었지만 어디 가서 소설로 돈 번다는 얘기는 민망해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래도 완결은 했습니다. 신규 조회수가 0이든 말든 끝까지 다 썼고 제가 생각했던 대로 결말까지 다 올렸습니다. 627편에 달하는 장편작을 꾸역꾸역 다 쓰고 완결 후기까지 올렸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당시 연재하던 사이트에서 '1년 성실연재 작품'으로 선정하고 '반반무'라는 이벤트에 올려 준 것입니다.
반반무 이벤트 첫날 수익이 약 5만원. 한 달에 2만원 벌다가 갑자기 하루에 5만원 벌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금방 회사 그만두고 작가로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연탄까스처럼 스멀스멀 피어올랐습니다.
뭐... 이벤트 끝나고 다시 내려가긴 했죠. 월 수입은 다시 5만원 대로 내려갔고, 1일 조회수도 확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든 말든 계속 썼습니다. 계속 썼고 계속 완결했으며 또 새로운 작품에 도전해 또다시 완결하면서 5년 간 쉴새없이 글을 썼습니다.
5년 동안 조금 뜬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업적으로 망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사회비판적인 의미로 쓴 19금 작품'이 최대수익을 올렸고 그 때 당시에는 월 50만원 이상 벌기도 했습니다만, 상업적으로 실패한 작품을 연재할 때에는 월 5~10만원 사이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요즘 연재하는 소설은 (19금을 버리고) 12세 이상 관람가 수준으로 쓰고 있는데, 이 소설도 몇 가지 문제가 겹치면서 심해로 가라앉았습니다. 연재 중인 작품은 거의 돈을 못 벌고 한참 전에 완결한 작품이 월 5~10만원 가량 벌어 주는 상황이 대략 6개월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계속 씁니다. 팔리든 안 팔리든 계속 씁니다. 일단 시작한 소설은 무조건 제 구상대로 밀어붙여서 완결 냅니다.
언젠가 [반드시 완결 내는 작가]로 알려질 때까지, 계속 쓰게 될 겁니다.
비효율의 효율. 지금 보기에는 가장 비효율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성과를 쌓아올리는 것.
지금의 저는 웹소설 영역에서 그런 '비효율의 효율'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트렌드에 신경쓰지 않고, 상업적 성공 여부에 집착하지 않고, 하루하루의 조회수에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제가 쓰고 싶은 글'에 집중하고 1주일에 7편 이상 글을 써내고 있습니다.
이게 '최대의 효율'로 바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고딩 때 혼자 수학문제 끌어안고 며칠씩 고민하던 방식이 21세기 상업적 웹소설 시장에 통할지는 저 자신도 알 수 없습니다.
안 통해도 상관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게 중요하죠.
저는 제가 손 댄 모든 소설을 완결합니다. 어디 심각하게 아프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건강하기만 하면 무조건 완결합니다. 1일 조회수가 0이라도 내일 연재할 내용을 써 냅니다.
그게 저 자신에게는 가장 소중합니다.
(4) 인생사 새옹지마 : 진짜 그렇더라
비효율의 극치로 시간 꼬라박던 게 어느 순간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바뀌는 마법. 이 또한 넓게 보면 '인생사 새옹지마'의 한 유형일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따라오고, 또 그 나쁜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나면 다시 좋은 일이 오는 것. 인생사 새옹지마입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오늘 하루 소설이 안 팔리고 악플만 늘어나더라도. 그만큼 저 자신이 단단해집니다.
구름처럼 몰려오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행운과 악운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숨쉬는 것 뿐. 그러면서 다음 파도를 기다리는 것 뿐.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대사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잘 알아. 계속 숨을 쉬어야지(Keep breathing). 내일 파도에 뭐가 떠밀려 올지 모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