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 좋은 아이를 위해
1. 서론
자소서. 자기소개서. 취업을 위한 '이력서'의 필수요소.
원래 이런 얘기는 '현실 글'에 어울리긴 합니다. 제가 예전에 썼던 [이직의 기술]이나 가끔 쓰고 있는 [기타 이야기들]에 들어가도 괜츈한 주제입니다.
하지만... 오늘 자기소개서 관련 이야기는 '웹소설 소재 모음집'에 올리겠습니다. 웹소설 쓰기와 관련된 내용이거든요.
제 딸이 웹소설 작가로 데뷔했습니다. 다들 그러하듯이 시작은 미약하죠. 소돔과 고모라 급 아수라장(...)이 된 월정액 무한열람 웹소설 시장에서 만14세 중학생이 전체관람가 작품으로 주목받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끝이 창대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일단 아버지인 저도 아직 창대함을 보여 주지 못했죠. 딸에게 '너도 열심히 하면 반드시 잘 될 거야!'라고 얘기해 줄 만한 모범사례가 없긴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뭔가 하나라도 시작해 보는 게 낫습니다. 일단 시작한 사람은 창대하게 발전할 가능성이 0.000001%라도 생기는 반면 / 아무것도 안 하면 확정적으로 0%거든요. 0에 수렴할 만큼 작은 가능성과 아예 0인 건 분명 다릅니다.
그리고, 소설쓰기는 확실히 '창의력'에 좋습니다. 저 자신은 아직 웹소설로 성공했다고 볼 수 없는 하꼬작가지만 이게 창의력을 키워 주고 늙은 뇌를 활성화시킨다는 것만큼은 확실해요. 6년 전의 저와 지금의 저를 비교할 때, 지금의 저 자신이 더 활발하게 뇌를 쓰고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서설이 길어지려고 하니 이만 자르겠습니다. 일단 제목에 쓴 대로 '자기소개서 참고안'부터 던져 보고, 그 다음에 '취업에 필요한 창의력'에 대해 읊어 보겠습니다.
2. 본론
(1) 딸아이를 위한 자기소개서 참고안 (취업 이력서에 첨부할 때 참고)
저는 웹소설 작가입니다. 만 14세 때부터 웹소설을 썼고, 현재도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물론 웹소설 자체를 직업으로 하지는 않았고 취미활동 수준에서만 집필했으며 상업적인 성과도 그리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 ]편의 소설을 완결했고 그 중 [ ]편은 ISBN넘버를 부여받아 전자책 출판까지 이어졌으므로, 제가 웹소설 작가인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누군가는 '웹소설 작가 활동을 하는 동안 학업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지실 수는 있습니다. 또한 제 이력서에 첨부된 대학교의 이름 및 학점 등을 보고서 '중고등학교 때에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네.'라고 판단하실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암기력 중심의 학교 교육'을 그리 좋아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학원의 선행학습을 통해 문제 유형을 외우고 기계적으로 답안을 작성하는 연습 또한 남들보다 덜 한 것도 사실입니다.
암기력 중심의 학교 교육의 결과물로 나오는 대학교 간판, 학점, 수능점수 등에서 남들에 비해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저 자신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암기력 중심으로 시험점수만 올리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단순암기로 문제풀이만 잘 하면 직장을 얻던 시대도 끝났습니다.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창의력'입니다. AI에 문장 한 줄만 입력하면 몇 년치 암기 분량을 요약하여 제공받을 수 있는 시대에서, 우리들은 창의력을 극대화하고 기존에 없던 것을 상상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시대의 사명이고 시대정신입니다.
저는 끝없이 상상해 왔습니다. 제 소설 속 캐릭터들이 고난을 겪을 때 어떤 식으로 그 고난을 극복할지, 한 사건을 극복하고 나면 그 다음에 어떤 사건을 만날지, 각 사건 간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설정할지 등등에 대해 매일 고민하고 저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왔습니다.
즉, 저는 중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창의력을 발휘해 왔고 그 창의력을 성장시켜 왔습니다. 학교와 학원의 획일화된 교육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창의력을 저 혼자 발전시켰고 '창의력의 뇌 근육'을 키웠습니다.
귀사께서 찾는 인재가 'AI시대에 적합한 창의적 인재'라면... 감히 단언컨대, 제가 바로 그 창의적 인재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만14세 때에 처음으로 공개한 제 웹소설 및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집필해 온 소설들이 그 사실을 입증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시중에 차고넘치는 (AI로 검색해서 뽑아낼 수 있는) 자기소개서 양식과 좀 다르게 보일까요?
뭐, 경력직 이력서에 이런 식의 자기소개서를 첨부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직의 기술'에 썼듯이, 경력직은 업무경험으로 말해야 하고 우주초천재퐈이야열정맨 식의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면 안 됩니다. 경력직 이력서라면 담담하게 업무이력만 적으면 됩니다.
다만, 아무련 경력 없이 신입(新入)으로 들이대야 하는 단계라면. 우주초천재퐈이야열정맨 코스프레로 자기소개서에서 차별화를 시도하려면.
'웹소설 작가 경력'은 분명 창의력을 강조하는 요소가 될 겁니다. S대 K대 Y대 간판이 별로 의미없게 되고 암기노예 답안작성기계들이 '그 일은 안 배워서 못합니다.'라는 Dog Sound를 토해낼 때, 머릿속으로 사건을 제시하고 해결하는 작업을 반복한 사람은 '안 배운 일을 해결하는 경력 같은 신입'이 될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2) 암기력 vs 창의력
암기력 vs 창의력. 이 창렬한 vs 놀이에 가장 좋은 사례는... 역시 호왈백만 구라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찾는 게 가장 쉽고 간편하겠죠. [장송 vs 제갈량] 입니다.
- 장송은 '맹덕신서를 한 번 보고 다 외워서 똑같이 읊을 수 있는 암기천재'입니다. Hell조선의 암기노예들이 가장 부러워할 만한 능력을 뙇 보유하고 있죠. 예전 고시생(을 가장한 게임중독자) 시절의 저는 장송을 부러워했었구요.
하지만 장송은 암기력만 좋았지 응용력과 충성심은 밑바닥이었습니다. 촉 땅을 팔아먹으려다가 딱 걸려서 목 썰렸죠. 그런 짓 하다가 걸릴 거라는 생각도 못 했고.
- 반면 제갈량은...
제갈량은 사서삼경 딸딸 외우는 유교(탈레반) 교육방식은 진작에 때려치웠습니다. 유비가 서서에게 '그 제갈량이라는 사람의 공부는 어떻소?'라고 물었을 때, 서서는 '제갈량의 지혜는 책 몇 권 외우는 걸로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라고 대답하는데 이 말을 삐딱하게 들으면 '제갈량은 백수 스타일이라 공부 따원 하지 않는다네.'로 들리겠죠.
그러나 제걀량은 진짜로 '암기노예들은 찌그러지삼!'을 증명해 줬습니다. 호왈백만 구라소설의 지력100 데미갓(Demi-god) 버프를 빼고 현실 제갈량의 활약만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대단하죠.
제갈량은 이릉대전으로 말아먹은 촉나라의 국력을 회복시켰고, 두 번에 걸친 북벌을 감행하면서도 촉나라의 재정 상황을 더 탄탄하게 키워 놨습니다. 전쟁을 지휘하는 책략가로서의 역량은 구라소설만큼 뛰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적어도 행정능력만큼은 top of the top이었죠. 촉나라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진수'도 제갈량의 행정역량만큼은 인정해 줬다고 합니다.
촉(蜀)의 주된 생산품은 '비단'이었는데요. 제갈량은 비단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천연가스'를 사용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고 도입했었다고 합니다. 구라소설에서 목우/유마 등을 제작하는 공돌이 엔지니어 속성을 보여 주는데, 실제로도 이공계 소질이 있었나 봐요.
국가재정을 운용하는 기획재정부 능력에 엔지니어 속성까지. 제갈량은 유능했습니다. 암기노예 따윈 진작에 때려치웠는데 공자왈 맹자왈에 나오지 않는 회계-재무능력과 엔지니어 능력을 발휘해 촉나라의 재정을 탄탄하게 다져 줬습니다. '솔선수범하는 자세와 고매한 인격'은 보너스.
장송과 제갈량. 님들은 각자의 자녀들을 어떤 쪽으로 키우시겠습니까?
(3) 취업에 필요한 창의력
호왈백만 구라소설 삼국지연의의 '장송'과 '제갈량'을 따 와서 자식을 어떤 쪽으로 키우겠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갈량을 선택할 겁니다. 일단 얼굴부터 심하게 차이나기도 하고;;
그런데 현실에서는...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어린아이들을 '암기노예'로 양성하는 게 이 나라의 특기(!)입니다. 자기주도학습법을 학원에서 배우고 응용문제도 미리 학원에서 선행학습하여 풀이법을 외워버리고 '안 배워서 못 풉니다.'라는 말을 아주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이 Hell조선입니다.
군대식으로 말해 보겠습니다. [안 배우면 사회생활 끝나냐?]
회사원이든 / 자영업자든 / 웹소설 작가든 간에, 일단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모르는 게 많습니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 배운 것보다 안 배운 게 훨씬 더 많습니다.
안 배웠다고 해서 못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하면 됩니다. Just Do It.
'취업에 필요한 창의력'이라고 썼는데, 뭐 거창한 게 아닙니다. 매일매일 주어진 상황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해법을 찾고 기존의 지식과 결합해 보는 것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상당수 회사들에서는 이런 '창의력 테스트'를 꽤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본 글을 쓰는 저 자신이 20년 전에 '문제 해결 테스트 면접'을 보기도 했었죠.
그 때 저에게 주어진 (가상의) 문제는 [역 앞에서 설렁탕 가게를 운영하는데 이익이 축소되고 있다. 이 가게의 이익을 올리는 방법을 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 답변은...
역 앞 가게는 단골을 확보하기 어렵고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손님이 많으니 장기고객 확보 전략 따윈 버린다. '설렁탕 한 끼 후다닥 먹고 가는 손님'에 집중한다.
1. 최대한 원가를 줄인다. 설렁탕에 들어가는 고기는 이미 삶아서 나오니 비싼 1등급 한우 같은 거 쓸 필요 없다. 대충 미국산 부어넣으면 된다. (당시에는 원산지 표시 제도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2. 빠르게 만들고 후다닥 먹을 수 있도록 한다.
3. 너무 맛이 없으면 안 되니 조미료를 팍팍 넣는다.
4. (일단 법무 지원자니까 법무 의견도 추가하면) 직원의 횡령.배임 정황을 조사한다.
였습니다. 지금 쓰고 보니까 신뢰 따윈 눈꼽만큼도 없는 악질상인이네요;;
당시 저와 같은 문제를 받은 입사지원자 중 저런 식으로 악질상인 답변을 한 사람은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대부분 고객만족 / 신뢰 / 맛과 영양 개선 등등 좋은 말을 했던 것 같아요. 그게 '표준모범답안'을 원하는 Hell조선 스톼일이기도 하죠.
결과는?
제가 면접1등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당시에 바로 결과통보를 받은 건 아니고 나중에 인사팀 입사동기를 통해 전해 들은 것이기는 하지만, 면접관들에게 나름 신선한 충격(?)을 줬던 것 같네요.
(* SNS가 활성화된 지금 시대에는 저렇게 답변하면 1등 하기 어려울 겁니다. 백ㅇㅇ 아저씨 꼴 나요. 창의력은 시대에 맞게 바뀌는 게 기본이죠;;)
요즘도 저런 식의 상황극 면접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신입 면접은 20년 전에 한 번 해보고 그 뒤로 경험한 적이 없네요. 경력직 면접에서는 저런 쇼질을 안 하긴 하죠.
다만, 신입 면접에서 '창의력'을 테스트하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겁니다. 앞으로는 더 늘어나겠죠. AI로 단순지식을 1~2초 만에 요약할 수 있는 시대에서 어떻게든 각 개인의 창의력을 테스트하려고 머리를 쥐어짤 겁니다.
이런 돌발질문에 대비하려면 '평상시에 표준모범답안과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좋습니다. 물론 Hell조선 스톼일 상 '다르게 생각하는 답안까지 다 암기하라구욧 빼애애액!'을 시전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뭐 그들은 알아서 하게 냅두고. 정상인이라면 다르게 생각하는 연습을 하겠죠.
제 딸은 이 '다르게 생각하는 연습'을 만 14세부터 시작했습니다. 웹소설 작가로서 매일매일 다르게 생각하고 있죠.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 미래 일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저 현재에 최선을 다할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