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이라고 하기에도 좀 많이 추워진 11월 하순. 갑자기 '결말이 좋은 영화 목록을 정리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웹소설 소재 모음집 쪽에 올리긴 하지만 제 소설 아이디어와 무관하므로, 오늘은 목차 없이 쭉 나열식으로 적어 보겠습니다.
(* 해당 영화 전부에 대해 스포일러가 나오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 인생은 아름다워
마지막 5분을 위해 2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영화 1위. 결혼 전에 봤을 때와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며 봤을 때의 감동이 크게 달라지는 영화이기도 하죠. '인생은 아름다워'입니다.
2차대전 유태인 수용소에 갇힌 아버지와 아직 많이 어린 아들. 아버지는 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이건 모두 게임이야.'라고 얘기합니다. 중노동, 열악한 식사, 군인들의 엄중한 감시. 이 모든 걸 일종의 놀이로 인식시키려고 최선을 다하죠.
그리고... 마지막 [살처분]이 시작됩니다. 패색이 짙어진 독일군은 유태인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조리 은폐하려 하고, 그 결론이 '살처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숨기면서 밝은 표정으로 얘기하죠. "이제 마지막 고비야. 여기서 안 걸리고 버텨내면 상으로 탱크를 받게 돼. 우리가 이기는 거야."
그 직후, 아버지는 독일군에게 붙잡힙니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아들에게 '이건 게임이야. 안심하고 끝까지 숨어 있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계속 밝은 표정으로 당당하게 걸어가고... 기관총 소리가 들려 옵니다.
아버지의 위대한 희생. 이 마지막 5분으로 영화는 위대한 명작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였습니다.
(2) 서유기 선리기연
선리기연의 감동을 느끼려면 전편 '서유기 월광보합'까지 같이 보셔야 합니다. 마지막 20분을 위해 총 4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셈인데, 물론 그 투자는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월광보합-선리기연 시리즈는 당연히 '서유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판본에 더해 '손오공 요괴특성 강화 판본'을 알고 있으면 더 좋습니다. 손오공이 요괴답게(!) 삼장법사를 잡아먹으려다가 그 인덕에 감화되어 함께 여행을 하게 됐다, 뭐 그런 판본이 있다고 합니다.
일반 판본에서 손오공은 석가여래에게 패배하고 500년 간 오지산 아래 갇혀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산 아래에 갇혀 있는 대신 [500년 동안 평범한 인간으로 윤회전생하며 인간의 희노애락과 그 부질없음을 깨닫고 진정한 손오공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설정을 취합니다. 서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솔깃할 만한 설정이죠.
인간의 희노애락과 그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이걸 압축적으로 묘사하려면... 역시 '사랑'이 제일 낫습니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 좋잖아요.
주인공 지존보(손오공의 인간 환생 버전)는 과거 손오공 시절에 먹버(...)했던 여자 요괴를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지지만, 손오공 시절의 업보 때문에 그 여인을 잃고 맙니다. 그래서 여인을 되살리기 위해 '월광보합'이라는 일종의 타임머신 장치를 사용해 과거로 돌아가는데... 너무 과도하게 월광보합을 사용하다가 500년 전으로 가 버립니다.
500년 전 시대에서 지존보는 '더 예쁜 여자 요괴'를 만나게 됩니다... 외모가 지배하는 더러운 세상. 석가여래의 대자대비한 마음으로도 외모지상주의를 바꿀 수는 없었나 봅니다.
지존보는 두 개의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합니다. 원래 살리려던 요괴 여인이 500년 전 시대에 갓 태어나 블링블링한 미모를 뽐내고 / 새롭게 만난 '더 예쁜 여자 요괴'는 지존보의 심장에 눈물 한 방울을 남깁니다. 지존보는 괴로워합니다.
그러던 중 지존보는 살해당하고 '또 다른 윤회전생'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때. 관음보살이 나타나 [긴고아를 머리에 쓰면 손오공의 힘을 되찾을 수 있다!]라고 꼬드기죠.
500년 간 인간으로 윤회전생하면서 희노애락과 부질없음을 깨달은 지존보(손오공). 그는 석가여래의 가르침을 따라 '삼장법사를 모시고 머나먼 서역까지 가는 제자'가 되기로 하고 긴고아를 머리에 씁니다. 명대사 추가해 줘야죠.
"나는 사랑할 때 사랑을 몰랐고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습니다. 후회만 남았습니다.
(한숨과 함께) 인간사, 가장 괴로운 일이 후회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돌아갈 수 있다면... 사랑한다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기간을 정해야 한다면... 만 년으로 하겠습니다."
긴고아를 쓴 지존보(손오공). 그는 오색구름을 타고 날아가 '우마왕의 결혼식'에 난입합니다. 우마왕과 강제로 결혼할 예정이었던 '더 예쁜 여자 요괴'를 구해내는가 싶었는데...
(당연히) 손오공은 이 미녀 요괴를 무시하죠. 인간의 희노애락이 부질없다는 걸 깨달아서 손오공으로 돌아온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다시 인간의 감정을 느끼면 긴고아가 조여들어 손오공에게 '머리가 뽀사지는 고통'을 주거든요.
그러나... 손오공은 미녀 요괴가 준 증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증표 때문에 미녀 요괴는 손오공(지존보)의 마음을 알게 되지만... 우마왕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죠. 기습해 온 우마왕을 막느라 미녀 요괴가 손오공 대신 희생됩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시체가 멀어져 가는데 그 손을 끝까지 잡아 줄 수 없는 손오공. 긴고아가 머리를 박살낼 듯 조여 오고, 손오공은 끝내 사랑하던 사람의 손을 놓아 버립니다. 그리고 '야수왕의 분노'를 폭발시켜 우마왕을 찢어발기죠.
우마왕을 물리친 후 월광보합의 마지막 힘을 이용하여 500년 후 현실로 돌아가는데...
이 현실이 원래 현실과 다릅니다. 삼장법사, 저팔계, 사오정, 손오공의 후생(後生)으로 태어났어야 할 존재들은 평범한 인간으로 잘 살고 있고, 삼장법사 일행만 현실에서 분리된 듯 합니다. 엄청 말이 많았던 개그캐 삼장법사는 매우 과묵한 캐릭터로 바뀌었구요.
그 바뀐 현실에서 손오공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지존보와 미녀'를 만납니다. 지존보가 무사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미녀를 떠나려 하고, 미녀는 그런 지존보를 막아서면서도 어찌할 줄 모르고 화만 내고 있죠.
손오공은 도술을 부려 사람들이 눈을 뜨지 못하게 한 뒤 '인간 지존보'의 몸에 잠시 빙의해 여인에게 키스합니다. 그리고 진심을 담은 한 마디. "워 아이 니."
그 직후 손오공은 다시 삼장법사를 따라 멀리멀리 떠나갑니다. 괜히 저팔계 뒤통수 때리는 건 보너스.
아, 하나 더. 서로 사랑을 확인한 지존보와 미녀는 환하게 웃다가 저 멀리 걸어가는 손오공의 뒷모습을 봅니다. 지존보가 손오공의 뒷모습을 보며 한 마디 하죠.
"마치 개 같군."
선리기연의 마지막 20분은 단순히 훌륭하다는 수준을 넘어 '경이적이다'라는 칭호를 붙여 줄 만 합니다. 동아시아의 유명 고전인 서유기를 '인간의 윤회전생과 덧없음'으로 재해석한 것, 그 덧없음 속에서도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만큼은 아름답고 고결하다는 것, 그 아름다운 감정마저도 모두 다 내려놓고 한낱 여행자로서 삼장법사를 모시며 고행의 길을 떠나는 무적최강 요괴 손오공의 담담한 뒷모습까지. 완벽했습니다.
선리기연의 손오공이라면 '글자 없는 불경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뭐, 그 진정한 의미는 쿵푸팬더 1편의 '포'가 대신 깨닫긴 했지만요.
결말이 좋은 영화를 꼽는다고 했는데 선리기연 얘기를 너무 길게 해 버렸습니다. 여기서 끊고 나머지 영화는 (중~하)편으로 넘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