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개의 나

훌쩍 떠나지 못한 여행. 시즈오카 어느 구석에서의 시점

by 휴사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은. 새로운 것을 더하는 것이 아닌 내 이름이 기억나지 않게 하는 것이었음을 다시 새기며

그것은 또 하나의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밑의 글은 그 장소, 그 시점에서 떠올린 생각들이다.

아무것도 아닌 생각의 끈이 결국 끝까지 남았다는 것에 이것이 그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길게도 남았다.






달큰한 식사와 그에 따라오는 장소와 분위기는 사람을 생각에서 벗어나게 한다.



next day---


후지산 근처의 놀이공원. 후지큐 하이랜드. 오래간만의 환기.





next day---

ㅡㅡㅡ

내가 보지 못했다고, 느끼지 못했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같은 장소, 다른 사람들 속 휑뎅그레 서 있는 시간. 시간이 사람을 기억할까. 사람이 시간을 기억할까.
시즈오카의 성채. 슨푸 성의 성벽.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게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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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아이돌이었던 시간 따위 어디에도 없었던 것 같았다'


소설 배를 가르면 피가 나올 뿐이야 408p 중.



-모두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 존재다.

정말 하고 싶은 행동을 모두 차치하면서라도.

참아내고 인내하는 어른들의 삶을 살면서-


여행하는 내내 읽으려 골랐던 책들 중의 이 한 권.

앞뒤 없이 골랐던 그 책에 우연한 즐거움이 꽂혔다.


만들어진 삶과 그에 지친 사람들,

그리고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에 묶여

자신이 속인 가면 속에서 바래가는 더 작은 사람들을 보았다.


책에서 인용한 위의 언어에서 글자로는 표현하지 못할 날아갈듯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의 소중한 내면이자 과거를 깡그리 지우길 선택하고 다시금 소중히 벼려온 아이돌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난 것을 그저 따위라고 칭함에서 왜 홀가분함이 느껴졌을지, 조금 공감해 버렸다.

그렇다고 나의 빛이 소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닌데도.




내가 바라 마지않는 아름다워야 하는 모습에서 한걸음 벗어나 나의 원본이라 생각하는 곳을 찾아가는 길. 그것이 내가 이번 여행에 부여한 단원이다.


'잠깐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 있던 것을 썩히지 말자

그리고 또한 그것을 위해 앞을 헤쳐나가자.'










---나의 의지. 생각. 행동의 이유


난 여행을 갈 때 허락된다면 꼭 책을 들고 다닌다.


어떤 불특정한 장소와 시점에서

내가 읽는 책의 글자들이 시점과 합쳐져서

내 어지럽던 마음의 방은 격자의 구조를 갖추고 형태를 정의하려 힘쓰며, 이윽고 새로운 시각의 잔흔을 내 시야 외곽에 진하게 남긴다.


이것이 일상을 벗어날 때

꼭 책을 챙기는 나만의 명분이다.

내가 다를 거라 짐작하는 곳에서는 이외에 어떤 것도 필요하다 느끼지 못한다.

단지 이 작은 위력 하나 때문에서라도.






나의 초점



--역행


마음에 꽉 맞은 여행지에서 떠날 시점이 찾아오면 이윽고 내 집이 싫어진다. 나를 환하게 맞이할 책임들과 거무텁텁하다 느꼈던 그 공기들에서 벗어날 때의 해방감이 그리워지고 말걸 짐작해 버리니까.



하지만 다시 익숙한 공항에 내리고 거기서 멀어질 때쯤 여행을 온 그 기분과 같은 재질의 환희가 다시 살짝쿵 찾아와 이 더부룩함을 숙취 해준다.


거무텁텁한것은 익숙함이었다. 익숙함을 새로움으로 덮고 그 새로움 또한 다시 익숙해진 후. 그 여전함이

언제 그랬듯 싱그럽게 느껴지는 것만 같아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그 꿉꿉함은 온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당신에게 있어 여행은 비우는 것인가? 아니면 더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