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이가 학교 행사에 필요한 커다란 박스를 준비해야 했다.
우리는 아파트 단지의 재활용장으로 향했다.
그 무렵, 아이와 나는 막 배운 중국어들을 동네 곳곳에서 써보며 의기양양하던 시기였다.
“我们需要一个很大的箱子,要干净的!”
(우리는 큰 박스가 필요해요. 아주 깨끗한 것으로요!)
그렇게 몇 마디 더 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 결국 우리는 아주머니께 “저녁 드셨어요?”라는 인사까지 건넸다.
평소엔 남편이 쓰레기를 버리러 다니기에, 재활용장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는 남편 얼굴을 잘 아셨다.
얼마 전엔 집 앞에서도 마주친 적 있어, 우리도 서로 얼굴은 익숙한 사이였다.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커다랗고 깨끗한 박스를 흔쾌히 찾아주셨다.
아이와 나는 그 상자 하나에 기뻐 깡총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중국어로 대화를 나눴다는 성취감도 더해져 뿌듯함이 두 배였다.
그날 저녁, 나는 남편에게 아주머니와의 의사소통을 자랑처럼 늘어놓았다.
남편은 미소를 머금고 흐뭇해했다.
그런데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온 남편이 한바탕 웃으며 전한 말.
“아주머니가 그러시더라. 와이프랑 아이가 뭐라고 했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대. 공부 더 해야겠네~”
그 말을 듣고 순간 멈칫했지만, 뭐 어떤가. 우리는 정말로 큰 박스를 얻었으니까!
또 다른 날, 아이와 식당에 들어섰을 때였다.
직원이 몇 명이냐고 물어봤는데, 아무 생각 없이 나는 “好的!(좋아요!)”라고 외치고 앉았다.
순간 아이가 “两位!(두 명이요!)”라고 또박또박 대답해 주었고,
우리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깔깔 웃었다.
나는 원래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사람이었다.
내가 먹는 건 다 맛있고, 보는 건 다 멋졌고, 가진 건 다 소중했다.
누가 뭐라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괜히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도 싫었다.
그냥, ‘해피 마이웨이’ 모드.
예전의 나는 꽤 괜찮은 행복지수를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상하이에 오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낯선 환경 속에서 적응하며,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질문들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예전엔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걸까?
이제야 비로소 나를 돌아보게 된 걸까?
익숙하지 않은 도시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 사이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마음이 복잡해지는 날들도 많아졌다.
이런 변화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괜히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들이 늘어난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이런 고민과 내면의 성장은 20대에 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백세 시대 아닌가.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
그게 꼭 늦은 건 아닐지도.
많은 것이 바뀌고 있는 이 시간,
in 상하이.
이 도시는, 분명 나에게 아주 특별한 곳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