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온 젊은이들 만나다.
징기스칸 동상 인근에서 뜻밖의 풍경을 만났다. 먼지바람 속을 달려온 낡은 자동차 3대.
차에는 여기저기 테이프로 붙인 흔적이 가득했고, 지붕에는 커다란 기름통과 가방, 타이어가 묶여 있었다. 본네트 위에는 세계지도가 랩핑을 한 것처럼 붙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진한 매직으로 점과 선이 이어져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출발해 동유럽을 지나서, 지금 이 몽골 땅까지 온 여정의 흔적이었다. 지도에 그어진 선의 끝은 ‘고비사막’이라는 표시에서 멈춰 있었다.
잠시 후, 그 차의 주인공, 여섯 명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검게 타 있었지만, 그 웃음소리는 청량하게 퍼져 나갔다. 여행길의 고생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 고생조차 그들의 몸짓과 표정에서는 하나의 즐거움으로 변해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출발했나?"라고 묻자, 그들은 차번호판의 ‘ND’를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굉장하네요!’라는 말 대신, 그 간단한 손짓 기호가 내 마음을 모두 다 전해주는 듯했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라는 내 물음에, 그들은 활짝 웃으며 두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들의 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져 갈 때, 불현듯 내 젊은 날을 떠올랐다. 배낭 하나 메고 인천에서 경주를 시작으로 전국을 여행하던 시절. 제대로 된 계획도 없었고, 가진 돈도 넉넉하지 않았다. 거의 무전여행에 가까웠다. 버스를 타고, 때로는 걸어 다니며, 낯선 도시의 골목을 헤매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때는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고, 아무리 거칠고 험한 길이라도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그 거침 속에서 젊음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옆에 있던 덕종씨가
"젊음이 좋긴 좋네요"라며 웃는다.
그 말이 오래 귀에 남았다. 그래, 젊음은 좋다. 가진 것이 적어도, 몸이 고단해도, 그 모든 것을 이겨내는 힘이 있다.
옆에 있던 영우씨가 뜬금없이,
"저 차는 버리고 가겠지요?“
기후씨는 멀어져 가는 그들의 차를 보면서,
"버리기엔 너무 아깝죠. 어떻게 해서라도 가져가겠죠. 저건 그들의 역사니까요.“
그들의 차는 목적지를 완주하면 멈출 것이다. 그 많은 테이프와 타이어, 기름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멈출 것이다. 하지만, 고물이 다 된 저들의 차는 역사가 될 것이다. 기후씨의 ‘역사가 된다.’라는 말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떠나질 않았다. 그들의 차는 이미 젊은 날 하나의 기록이고, 시간의 흔적이자, 추억의 무늬였다.
농담 삼아 이제 AS도 안된다는 나이에 들어섰다. 저 젊은이들처럼 대륙을 가로질러 세계를 누빌 체력과 용기가 이제 내게는 없다. 젊음은 세월 속에서 지나갔지만, 이슬처럼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젊음을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그 젊음을 바라보며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 나이의 또 다른 특권이다. 그리고 몽골의 오프로드 한가운데, 나는 이렇게 서 있다.
떠나가는 그들의 차가 먼지 속에 흐려지자, 혼자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부러움보다, 내 안의 기억과 현재가 맞닿아 생긴 작은 환희였다. 젊은 날 배낭을 메고 걷던 내가, 지금은 오프로드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새로운 길을 달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젊음은 지나갔지만, 여행하는 마음만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
그들이 목적지인 고비사막에 닿을 때, 아마 또 다른 여행자가 그들을 바라보며, 나와 비슷한 이러한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대단한 용기입니다.’
‘젊음이 좋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도 자신들의 여행을 돌아보며 미소 지을 것이다. 결국 여행은, 나이를 불문하고, 우리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손끝으로 바람의 진동이 전해진다. 차창으로 펼쳐진 초원,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래, 아직은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