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르허크, 환대를 받다.
홉스골 게르 안에서 우리는 특별한 저녁을 맞이했다. 오프로드 여행을 함께하던 가이드 불가와 운전기사들이 직접 허르허크를 만들어 대접하겠다고 한 것이다. 여행길에 직업상 단순한 길 안내와 차량 운전이 아닌, ‘몽골 사람의 손맛’을 보여주겠다는 의미로 여겨졌다.
오프로드에서 잠시 들러 한 끼의 식사를 하였던 게르에서 가지고 온 양고기로 허르허크를 만든다는 것이다. 일 년 정도 자란 양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그리고 고기도 연하고 냄새도 적다고 한다. 게르 안은 잔칫날 분위기다. 난로 불꽃은 신난 아이처럼 타오른다. 난로 뚜껑을 열고 둥근 냄비가 올려진다. 냄비 안에는 잘 손질된 양고기와 감자, 당근, 양파, 피망 같은 채소가 차례차례 들어간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검은 돌이었다. 이 검은 돌이 양고기의 잡내를 없애 준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검은 돌의 신비함을 믿을 수 없는 조리법 같으면서도, 오랜 세월 유목민들이 터득한 삶의 지혜였으리라.
반나절 동안 난로 불길이 숨 쉬는 동안, 긴 침묵 안에서 고기는 익어 갔다. 그동안 나는 게르 안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다. 허르허크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꼭 잔칫날 부엌 근처를 서성이던 동네 강아지처럼. 고소하면서도 양고기 특유의 기름진 냄새가 은근히 풍겨 나올 때마다 발걸음은 게르 안으로 향했다.
환대의 순간
드디어, 냄비 뚜껑이 열리던 시간이 되자, 가이드 불가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허르허크 다 되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게르 안으로 들어가자, 모두의 눈빛이 반짝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스마트폰을 꺼내 든 일행들은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나 역시 한 장이면 충분할 텐데, 무언가 아쉬운 듯 셔터를 몇 번이나 눌렀다. 아마도 이 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눈에 띄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밑이 둥근 커다란 냄비를 올려놓기 위해, 의자를 거꾸로 뒤집어 받침대로 활용한 것이다. 누군가의 재치 있는 발상 덕분에 임시 받침대가 훌륭한 식탁 위 자리를 대신했다. 이 작은 지혜마저도 여행의 추억 속 기막힌 한 장면이 되었다. 언젠가 나 또한 이 방법을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당연지사다.
불가는 직접 고기를 잘라주었다. 고기를 능숙하게 칼질하며 우리 앞에 담아내는 그의 손길은 자연스럽고 멋도 있었지만, 몽골인으로서 품위가 있었다. 손끝에서 풍기는 자신감과 여유는 단순히 고기를 써는 행위보다는 ‘몽골식 환대’의 상징처럼 보였다. 마치 전통을 지켜내는 주인의 포스가 담겨 있었다.
식탁 위에는 잘 익은 양고기와 함께 감자, 당근, 피망이 색색으로 빛나며 놓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졌다. 그리고 한입 베어 문 순간,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고기 식감의 부드러움과 깊은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감자는 포슬포슬했고, 당근은 단맛이 살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표현이라곤
“최고다!”
라는 말뿐이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것은 이 맛의 극히 일부만 표현하는 행위에 불과했다. 배가 부를 때까지 먹지 않고는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옆에 있던 영우씨가 농담처럼
“이럴 땐 술 한 잔이 딱인데…”
그러자 가이드 불가는 단호하게.
“허르허크와 술은 같이 먹으면 탈이 납니다.”
술 한잔이 없어도 충분했다. 그만큼 허르허크의 풍미는 강렬하고 차고 넘쳤다.
그날 저녁, 우리는 저녁 식사와 함께 몽골식 환대를 받은 것이다. 낯선 땅에서 현지인들이 직접 만들어 준 음식을 함께 나누며, 몽골의 삶과 전통을 맛본 것이었다. 오프로드 거친 길 끝에서 맞이한 따뜻한 식탁은 돌 위에서 익은 고기, 의자 위에 놓인 냄비, 그리고 웃음으로 가득 찬 게르 안의 풍경.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내 마음속에 오래 남을 환대의 저녁이 되었다.
아마도 훗날, 이 여행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기억날 장면은 바로 ‘허르허크의 맛과 환대해 주던 그들의 미소’일 것이다.
후기; 여행에서 돌아와 우리는 뒤풀이를 삼겹살과 소주 한 잔으로 조촐하게 했다. 라면 철학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영우씨는 허르허크 이야기하면서, 돼지 수육에 검은 돌 대신 강자갈을 넣고 찜통에 익히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결과는 아직 모른다.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