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에서의 한 끼, 그리고 사람의 온기
초원은 무한한 어머니의 품 같은 바다다.
바람은 흙냄새와 풀냄새를 뒤섞어 불어오던 날, 우리는 현지인 음식을 먹기 위해 낯선 게르를 찾아 나섰다. 말은 간단했다. 점심으로 양고기를 준비한 게르를 찾아가는 것, 하지만, 그 길은 쉽사리 우리를 인도하지 않았다. 지평선 너머 아득한 대초원에서 흰 점 하나로 보이는 게르를 찾아가는 일은, 마치 바다에서 등대도 없는 아주 작은 섬을 찾아 항해하는 것과 같았다.
운전기사들은 몇 번이고 상대방과 전화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몰라, 재미 삼아 스마트폰 번역기 앱을 켜니, ‘지나쳤다.’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다. 운전기사는 차를 돌려 다시 길을 되짚었다. 어느 낯선 게르 앞에서 사람들에게 물어서 가고, 다시 돌아서고, 또 묻기를 반복했다. 길은 단조롭지만, 방향은 고장 난 나침판처럼 끊임없이 흔들렸다. 마침내, 멀리서 두 팔을 흔들며 우리를 기다리는 게르 주인의 모습이 보였다. 오랜 유랑 끝에 찾아온 고향의 불빛을 발견한 듯 운전기사 눈빛이 환해졌다. 차에서 내리는데 시커먼 방하르의 우렁찬 짖음이 대지의 공기를 울렸다. 이방인을 경계하는 그 소리조차도, 이곳이 그들의 삶터임을 대변하는 모습이었다.
게르 앞에서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드론을 보여주며, 집게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주인은 내 손가락이 빙글빙글 돌리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고개만 갸우뚱한다. 운전기사는 주인에게 뭐하고 말하자, 오케이 사인을 나에게 보내며 웃었다.
드론이 하늘로 올라가자, 이제까지 눈에 보이지 않던 풍경의 비밀이 펼쳐졌다. 대체 이곳이 어떤 곳에 자리하고 있는지 궁금증이 풀렸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초원은 고요하고 본질적이었다. 작은 흰 점 하나, 그 옆에 조금 떨어져 있는 또 다른 하얀 점들, 그리고 굽이쳐 흐르는 혈관 같은 강물 줄기. 말과 양들은 점으로 변했다. 인간의 삶은 대자연 속으로 스며든 작은 흔적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작은 흔적 안에는 온전한 삶의 무늬가 깃들어 있었다.
게르 안으로 들어서자, 허르허크와 우름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의 여행을 하면서 허르허크를 맛본 적 있었지만, 게르 주인이 만든 허르허크의 맛은 차원이 달랐다. 고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담백한 깊이를 품고 있었고, 손님을 위해 기꺼이 내어준 정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우름은 빵과 기막히게 어울렸고, 고소함 속에 은근한 온기가 배어 맴돌았다. 그곳에는 도시 에서 흔히 느끼는 인공적인 맛이 전혀 없었다. 오직 단순함에서 오는 충만한 풍미가 있었다.
나는 맛있다는 표현을 안주인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자, 가이드 불가는 보일 듯 말 듯한 슬며시 웃으며 말하는 모습이다. 부부는 서로 웃기만 하고, 안주인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면서 수줍은 듯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웃기만 한다. 잠시 후 불가의 설명으로 알게 된 것이지만, 허르허크 요리는 남자들 몫이라 한다. 양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 음식 자체가 상당히 무겁기 때문이란다.
식사하는 도중, 아이들 넷이 수줍은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낯선 이방인 앞에서 수줍음을 감추지 못한 얼굴은 초원의 산들바람처럼 맑았다. 우리는 초코파이와 콜라를 아이들에게 내밀었다. 사소한 것이었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조금씩 봄바람에 새싹이 돋아나듯 풀어졌다. 초코파이 달콤한 한입에 낯선 여행자와의 거리가 좁혀지는 눈길이었다. 그리고 작은 웃음이 게르 안에 흘렀다. 음식은 일차적인 먹을거리에서 서로의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었음인지.
잠시 후, 마을 사람이 더 찾아왔다.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게르 안은 작은 잔치가 되었다. 주인은 아이들에게 뼈에 붙은 고기를 발라서 나눠주었고, 아이들의 어머니는 정성스레 고기를 뜯어 아이들 입에 넣어주었다. 그 단조로운 일상을 바라보는데, 가슴 한구석에서 아주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고, 예순의 눈시울이 되어 왔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나에게 하시던 모습이 눈앞에서 겹치어졌다. 검버섯 피는 나이에 눈시울이 뜨거워져 남몰래 옷소매를 훔쳐야 했다.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 아이들 입안에 넣어주던 작은 고기 한 조각. 그 사소한 손길 안에 담겼던 사랑이 눈시울이 되어, 초원에서 다시 바람이 되어 살아났다.
배가 불러 오를수록 마음도 가득 찼다. 그만 먹어야지 하면서도, 주는 고기를 또 받아 들고 입으로 간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웃고, 이야기하고, 사진도 찍었다. 그 한 장의 사진은 소소한 여행의 기록이라기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되는 끈이 되었고, 흔적이 되었고, 이야기가 되었다. 초원의 바람과 게르 안의 온기, 허르허크의 맛과 아이들의 미소가 함께 담긴, 살아 있는 기억이 되었다.
만약, 길을 찾지 못했더라면, 게르 주인과 아이들, 허르허크와 우름, 그리고 오래된 어머니의 기억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초원 게르에서 한 끼의 식사는 삶과 삶이 스치며 만들어낸 울림이었다. 여행의 진정한 선물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의 따스한 손길이 아닐까. 그날의 기억은 내 마음속에, 초원의 바람처럼 길고 깊게 남아 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