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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렌 Dec 06. 2021

얼레벌레 운전기

이제 운전 경력 1년이다!


0. 왜 차를 샀나.

1. 얼레벌레 운전기

2. 나는 차가 좋다!




0. 왜 차를 샀나.



운전을 시작했다. 21년 1월의 일이었다.


통근/통학의 측면에서 난 아주 안일한 삶을 살아왔다. 스스로 통학을 시작한 가장 어린 기억인 초등학교 때 (그러고 보니 나는 1학년 언제부터 혼자 등하교를 하기 시작한 걸까.)에도 걸어서 10-15분 거리에 학교가 있었고, 거기서 돌아 올라가기만 하면 있는 중학교까지 다닌 터라, 중학교까지도 이런 통학을 했다.


먼 동네로 이사 간 고등학교는 사정이 달랐다. 걸어서 30-40분 정도. 그런데 이런 거리를 십분, 이십 분이 아까운 고등학생이 통학하게 둘리가 없다. 부모님들이 수배한 봉고 (버스)를 통해 같은 아파트 학생들끼리 한 번에 통학을 시작했다. 결국은 차로 10분 이내 거리가 되었다.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고향에서 통학할 순 없는 거리라. 자취를 시작했다. 걸어서 5-10분 거리의 집이었다.


어쨌든, 출퇴근/등하교 시간의 지옥철 혹은 지옥 버스를 겪지 못한 나약한 몸으로 나는 7년 전 출근을 시작했다. 고향과는 역시 아주 먼 곳에서 터전을 잡은 바람에, 시작부터 독립을 해버렸다. 작은 원룸이었지만 이제는 하숙이나 고시텔과 달리 부엌과 화장실이 내 집에 있는 온전한 독립이었다. 이 원룸과 회사의 거리는 차로 15분, 버스로 환승 없이 30분이었다. 우리 집이 끝자락인 덕에, 출근 시간에도 아주 늦지야 않으면 보통 앉아서 30분을 갔다. 어렵지 않았다.


그러다 나는 2019년 다시 터전을 옮기게 됐다. 20살 이후로 2년 주기로는 옮겨 다닌 내게, 아마도 아주 오래 간은 살만한 집을 얻게 됐다.


집을 사고, 꾸미고 정착하게 된 이야기는 하기 브런치.

https://brunch.co.kr/@0a7daf5090964b0/5


문제는 이 집에서 우리 회사까지 직통 버스가 없단 점이었다.  차로는 15분 거리라는데, 버스는 갈아타고서 30-40분이 걸렸다. 사실 수도권에서 두 번씩 환승하고 2시간씩 통근하는 사람 입장에선 정말 좋아 보일 거다. 알지만... 길게 설명했듯이 나는 통학 및 통근을 정말 나약하게만 해온 역사가 있다. 그래서 도저히 저 시간을 버틸 수가 없었다. (특히 평균 환승 시간이 10-15분이란 점이!) 그래서 이사온지 1년. 대충 집이 정리됐다 싶을 즈음, 나는 차를 샀다.




1. 얼레벌레 운전기



나는 2012년에 면허를 땄다. 보통은 수능 직후들 따곤 하니 그 통념에 비하면 제법 늦은 시기였다. 아마 할 일이 없어 딴 듯한데, 내 기억으론 이때가 가장 운전면허가 쉬웠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기능 시험 직진 50m면 합격이던 시절이었다. 필기를 보고, 50m 직진 후 도로 주행에 나선 나는 그때도 의문이었다. 아니 이러고 나가도 된다고?

나갔다.

그땐 20대 초반이어서, 아마 겁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60이 상한 인데 나는 거의 55-58을 밟으며 시험을 통과했다. 근데 이때도 3시간인가. 고작 그 시간 운전이 다여서, 이대로 내가 도로에 자유로이 나갈 수 있단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물론 차도 없었고. 그렇게 2020년까지 장장 8년가량 장롱 면허가 되었다.


어쨌든, 저런 (0.) 사유로 나는 차를 사게 되었다. 사실 집을 살 때도 그랬지만 차도 조금 충동적인 면이 있었다. 계획은 만 30세가 되는 해에 사는 거였다. 그때 보험료가 크게 꺾인다 해서. 그런데 그 계획을 꺾고 사게 됐으니... 아마 같은 부서의 동기가 차를 산다는 이야기에 혹했던 것 같다.


우선 중고차를 봤다. 새 차는 살 돈이 없었을뿐더러, 사고 내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주변에 운전자가 많아 많은 부분을 조언받을 수 있었다. 요즘엔 대기업 어플이 있어서, 돈은 다소 비싸도 사기당할 일은 없다고 했다. 유튜브도 중고차 관련 유명한 사람 걸 두 어개 추천받아 시청했다. 그렇게 정한 게 지금의 나의 차였다. 연식이 5년 정도, 1년당 만 킬로 정도 탄 중형 승용차.


나는 그래도 나보다 운전 선배인! 아는 동생을 데리고 중고차 센터에 갔다. 일단 아는 척이라도 해야 하니까... 근데 생각해보면 정말 모르는 티가 났다. 보험에 가입돼야 한단 사실도 몰랐고, (현장에서 가입했다.) 스마트키로 시동을 켤 줄도 몰랐다. 친구가 한 번 몰아주고, 외관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구매했다. 운전을 할 줄 모르니 탁송으로 신청했다. 큰돈 쓴 건 집 살 때와 마찬가지였고, 액수로 치면 집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었는데 왠지 나는 이때야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왜일까. 아마, 집은 내가 샀대도 결국 엄마나 고모나 그 자리에 다 있어주고, 알아봐 준 탓일 테다. 그에 반해 차는 내가 보고, 고르고 함께 간 사람도 또래의 동생이니 더 그렇게 느껴졌으리라.


그리고 대망의 운전 연수를 계약했다. 면허를 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대략 10살 차이가 나서 그때의 용기는 나이와 함께 소멸한 상태였다. 결국 나는 20시간을 계약했다. 도저히 10시간으로 도로에 혼자 나갈 자신이 없었다.


연수 때 많은 일이 있었다. 연수 선생님과 싸우기도 하고, 그랬다. 강사가 하는 말이, 안전하잡시고 도로에서 머뭇거리면 그건 다른 차에 민폐다, 무조건 움직여줘야 한다. 였는데 나는 그걸 인정하기 싫고 무서워서 무조건 준법하겠다 고래고래 우겼다. 국도에선 50도 안 넘기고, 우회전은 무조건 좌회전 신호에 갈 거며 등등... 지금은... 음. 아마 강사님이 만족하는 운전을 할 거다. 아마도.


연수 마지막 날. 나는 강사가 집 앞에 오기 전, 과감하게 혼자 통근길을 다녀와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마 초보운전자라면 공감할게, 클락션 소리가 너무 무섭다. 나를 혼내는 것 같고, 독촉하는 것 같다. "우회전은 무조건 좌회전 신호에 갈 거며..." 내 말이 귀에 뱅뱅 돌았다. 그런데 빵! 하는 클락션 소리에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놓고, 핸들을 돌리고... 사고가 나고 말았다. 아주 다행히! 천천히 오던 차에 천천히 박은 거라 외상은 없었다. 나는 이제 운전한 지 15시간 정도 되는 사람이었던 게 문제지. 그래도 태연한 척 내려 인사를 했다. 내 잘못이니 몸 상태부터 묻고, 따라 사진을 찍고 보험사를 불렀다. 내 범퍼가 찌그러질 정도니 상대 차도 옆면이 파이긴 했다. 그래도 전혀 아프진 않을 것 같았는데... 상대가 병원에 가야겠다 해서, 첫 사고에 대물/대인 접수를 해냈다. 다행히 대인 사고 치고 (?) 저렴히 끝났지만...

어쨌든 난 이날 내 겁을 많이 잃은 것 같다. 다친 사람 없이, 차만 소폭 팬 채 사고가 난 덕에 나는 긴장을 적당히 덜었다. 이게 운전에 더 도움이 된 단 얘기도 있어서... 그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후로 두 번의 사고를 더 냈다. 물론 차나 사람과는 아니고, 주차장과의 사투에서 두 번의 상처가 더 생겼다. 중고차 산 보람을 충실히 느끼고 있달까...


어쨌든 덜어진 긴장 덕에 나는 초행길도 이곳저곳 나가보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일단 목적 없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다 양재 IC에서 1시간 갇혀보기도 하고, 초행길을 밤비 운전으로 돌아오기도 해 봤다. 양평으로 친구와 가는 길에 휴대폰 거치대가 고장 나서 친구의 팔을 거치대 삼아 울며 운전하기도 해 봤다. 저 사고 덕에 초행길도 거침없이 다니다 보니, 아주 좁은 산길이나 골목길도 울며 다녀보고... 생각해보면 꽤 저렴한 값에 (아마 올해 내 보험료가 너무 비싸서 할증이 돼도, 내년이면 싸질 것 같다. 아마도... 제발...) 내 운전실력을 산 셈이지 않나.




2. 나는 차가 좋다!



이제 벌써 1년째다. (올 1월 중순에 계약, 말부터 혼자 운전했으니 사실은 두 어달 남았지만!)


나는 그간 어른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해냈다.


출근길 드라이브 쓰루를 해봤고,

창문을 내린 채 음악을 틀고 고속도로 질주를 해봤고,

경조사에 내 차를 타고 참석해봤으며,

상경한 부모님을 역에 데리러도 가봤다.

코스트코도, 이케아도 갔다. 내 차로!



2019년에 집을 사고, 매달 빚을 갚고 있지만 나에겐 이것보다 위의 저 일들이 더 어른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기동력이 좋아졌다. 차가 없다면 쉽게 가지 못했을 곳을, 차를 타고 다닐 수 있게 됐다. 이를테면 버스론 2시간인 친구 집이나, 택시를 타야만 갈 수 있는 식당 같은 곳들.


더불어 (이건 감성에 젖어 좀 오버한 면이지만) 기분이 좋다. 작은 쇳덩어리지만, 이걸 내가 손으로 발로 움직여 내 멋대로 제어한단 점이 좋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세상에 하나 더 늘어난 느낌이라 좋다. (물론 운전을 잘하진 않지만;;) 응, 나는 차가 좋다.





내년엔, 이제 내 차에 적응했으니 렌트를 해 볼 예정이다. 제주도에도 가보고, 속초에도 가보려고. 장거리 운전도 해볼 예정이고, 언젠간 샌프란시스코 코스트를 따라 운전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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