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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렌 Jan 02. 2021

내 공간의 의미

내 공간 너무 좋다... 를 주체하지 못해 쓰는 글. (진짜)
 사실 작년 정산으로 쓰려고 했는데 게으름 부리다 1월 초가 와버렸다.


0. 내 집을 갖게 된 이유
 1. before 입주
 2. after 입주
 3. 집에서의 1년
 4. 앞으로?




0. 내 집을 갖게 된 이유

사실 나에겐 배부른 목표가 하나 있었다. (나는 이걸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변명으로 달아둔다.) 부모님에게서 어떤 한 부분도 신세 지지 않은 독립을 하는 것. 물론 이게 되기 위해 내가 자라 온 환경, 그 사이의 거주 문제 같은 건 전부 신세를 진 셈이니 지금 역시 오롯이 나의 몫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표면적으로 (금전적으로) 부모님의 신세를 지지 않는 것. 그게 나의 목표였다.


나는 14년 취뽀해 15년부터 월급을 받기 시작했고 18년 말까지 부모님이 마련해준 전셋집에서 지냈다. 7평 남짓한 공간이었지만 내가 가져본 내 공간 중에선 가장 큰 공간이었다. 하숙집 방 하나 (책상, 침대, 잡동 사니를 넣을 수납장이 들어가면 끝인)를 거쳐 고시텔에 살던 시절을 생각하니 그 7평이 참 커 보였다. 빌트인 된 책상, 수납장 외에도 왕자 행거, 침대, 따로 마련한 수납장을 넣어도 사람 두셋은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부엌도 물론.


그렇게 4년은 주거를 부모님의 손을 벌려 해결했고, 그 덕에 월세로 나가는 돈을 절약해 목돈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다 19년 1월. 집을 사기로 결심하게 된다. 사실 막 커다란 다짐이 있었던 건 아니다. 사실 아무도 추천하지 않는... 사업비로 10년은 꼼짝 돈이 묶인다는 보험사 상품을 들 정도로 나는 10년 내 목돈을 사용할 계획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완전히 충동이었다. 회사 후배네 원룸 집들이에서 이제 집을 사볼까 한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거나하게 취했던 나는 그래여? 그럼 저두여 ㅎㅎ! 하고 결정하게 된 것이었다. 마침 19년 5월이 전세 계약이 끝나는 날이기도 했다.
 나는 귀동냥으로 투자의 목적이 없고, 실거주 목적으로 회사에서 멀지 않은. 그러나 혼자 살기에 그다지 나쁘지 않은 환경의 집 하나를 골라뒀었다. 20-30년 사이의 구축 아파트였는데, 덕분에 한 달의 인테리어 기간을 잡았어야 했다. 전세 마감이 5월이니 그렇게 치면 4월에 전 집이 이사를 가야 하는 집을, 2월에 계약했어야 했다.
 돌이켜봐도 얼렁 뚱땅이 아닌가 싶네... 사실 귀동냥이라기엔 팀장님이랑 회식 장소 가다 위의 저 선배가 집 사려 하는데... 에서 추천해준 그 집을 그냥 콕 짚은 것이므로... 무튼 친척과 엄마의 도움을 받아 (집 계약은 역시 젊고 어린 여자애가 혼자 할만한 건 아닌 것 같다... 무시당하니까 아무래도.) 무사히 계약했다. 계약금과 중도금은 저금한 돈으로 해결을 했고, 잔금은 당연히 대출을 풀!로 받아 지불했다. 그렇게 정말로 얼렁뚱땅 (그래도 준비되었기에) 급작스레! 25평 내 집을 마련하게 됐다.



1. before 입주

사실 이때도 이미 오늘의 집 같은 플랫폼이 흥하고 있었다. before 코로나였는데도 이미 나 외의 사람들은 제 공간, 인테리어 등에 관심이 아주 높았단 뜻이다.
 하지만 난 딱히 관심이 없었다. 내 온라인 집들이에도 썼는데 나에게 인테리어란 그냥 때 타지 않는 게 최고. 였다. 마침 엄마가 한 2년 전 싹 인테리어를 한 구축에 입주를 했고, 그때의 경험에 빌어 엄마한테 대부분을 맡겨버렸다; 내가 바란 건 단 한 개. 다 회색으로 해줘.
 사실 지금에도 후회는 없다. 화이트+우드가 대세인 지금에 확실히 그게 이쁘다곤 생각해도 (근데 이쁘긴 진짜 이뻐) 걸레받이 (하얀색) 때를 매직 블록으로 긁다 보면 일단 나는... 때 안타는 게 좋단 생각이다. 그리고 내 취향이기도 하고.
 다만 좀 후회하는 건 배선 공사나 조명 공사를 많이 할 걸. 가구 고민을 좀 더 할 걸. 하는 것들? 그래서 나한테 인테리어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겐 반드시 이걸 얘기해준다.
 콘셉트를 정하면 가구를 미리 정할 것. 가구를 배치해볼 것. 그 가구에 따른 배선 공사를 계획할 것.
 엄마 덕에 무튼 내가 모든 걸 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세세한 걸 컨펌하면서 세상에 집에 그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방대한 일인지 깨달았다.
 하기에 그 목록과 내가 추천하는 팁을 적어둔다. (오지랖)


현관
 -현관문색
 -현관 타일 > 머리카락 시시때때로 청소하기 싫으면 어지러운 무늬나 어두운 색으로 하길
 -현관 신발장 색, 스타일 > 신발장 하단을 띄워놓고 거기도 간접 조명을 넣자.
 -중문 여부 (중문 종류, 색) > 나는 평범한 구축 타워 아파트라 ㄱ자로 현관이 개방되어있고, ㄱ자로 중문을 가벽과 함께 둘렀다. 냄새, 소리, 추위 이 중 하나에라도 예민한 사람은 반드시 중문을 하자.
공통
 - 천장 벽지
 - 벽지
 - 조명 (하나.. 하나...)
 -스위치
 -배선
 -마루 종류 (장판 강마루 등등 마루라면 마루의 쉐잎까지)
 -걸레받이
 -천장 몰딩
 -문 색깔
부엌
 -상부장/하부장 색깔 혹은 상부장 여부 및 형태
 > 나는 맥시멀 리스트라, 상부장을 꽉 채웠고 대신 중간 위치의 상부장은 투명 플립 형태로 해 개방감을 줬다. 하부장은 원하는 대로 서랍형을 해주긴 하는데, 오븐이나 전자레인지를 사용한다면 미리 제품을 정해 딱 맞게 장을 짜 달라고 하면 좋다. 양념 선반은 반드시.
 -상판 색 및 종류
 -주방 타일 (요즘엔 타일 대신 페인트로 칠하는 곳도 많다. 다만 유광 타일이 청소엔 가장 좋을 듯.)
 -주방 형태 (나는 1자인 기존 형태를 연장해 ㄱ자로 만들어 조리 공간을 확보했다.)
 -후드 > 오래된 구축에 들어간다면 댐퍼 설치는 반드시!
 -가스/인덕션 여부 > 가스는 아무래도 선이 노출되니 지저분해 보인다. 다만 요리를 즐긴다면 가스가 최고일 듯. (후회의 눈물)
 -냉장고 위치
 -개수대
 -수전
 -상/하부장 손잡이 여부 있다면 손잡이 종류
화장실
 -타일 (벽, 바닥)
 -천장
 -배수 개수 (샤워하는 쪽에 반드시 배수를 하나 더 하기를....)
 -욕조/부스/파티션 여부
 > 이에 따른 각 종류
 -수납장 종류 및 위치
 -수전
 -세면대
 -변기
베란다
 -타일, 장판 여부 및 종류
 -벽지 (방수 벽지 반드시)
 -베란다 확장 여부
 -베란다 샷시 (폴딩 도어, 비대칭 샷시 등)
 -조명
 -창고 활용


대충 기억나는 대로만 적어도 이 정도다.
 내가 하지 못해 후회하는 건 안방 > 베란다로의 폴딩도어 시공 (문을... 활짝 열고 싶다....), 베란다 배선공사, 화장실 배수 시설 추가, 부엌 가스 사용이다. 반드시... 집 오천 개 보고 하고 싶은 걸 생각해둘 것...



2. after 입주

2019년은 정신없이 보냈다. 집들이를 약 15회 했고, 집에서의 루틴을 설립했다. 요리는 아직 하기 전이고. 그래서 주방식기가 많진 않았던 때.
 그러다 2020년이 왔다. 꼭 코로나 때문은 아니고. 마침 2020년부터 요리에 취미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식기가 많아지고. 식기와 음식을 두고 찍을 장소가 갖고 싶어 졌다. 그렇게 나는 본격적으로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3. 집에서의 1년


사실 집을 갖기 전엔 별 의미가 없던 거실. (원룸이니까... 사실 그래도 난 침대 밖에서 생활하던 때가 적었으니...)이 우선이었다. 소파 커버를 사보고, 테이블을 사보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 지금 이 모습이다. 나는 여기가 너무 좋다. 하얀 테이블은 음식이 잘 나오고. 안락의자에 앉으면 tv 보기가 편하고. 내 취향대로 꾸민 홈 바가 빤히 보이는 이곳. 코로나로 집에 은둔 (?) 하던 시기에 침실, 서재보다도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른 곳이다.


나는 여기를 보면 기분이 좋다.


 사실 이 얘기를 하려고 이제까지 3582자를 떠든 거나 마찬가지다. 방이 반드시 두 개는 있어야 가질 수 있는 게 "거실"이기도 하고. 원룸 시절 대부분의 생활을 침대에서 하던 나에게 침대 밖의 생활을 하게 해주는 곳도 거실이다. 친구들이 놀러 와 왁자지껄 먹고, 게임하는 곳도 거실이고. 다섯 이상이 오면 엠티처럼 이불을 깔고 노는 곳도 거실이다.
 그래도 역시, 내 공간을 가지고 가장 달라진 것이 바로 거실의 이용이기에. 그 마음 덕에 좋은 마음이 크다.
 다른 곳만큼은 맥시멀리즘인데 거실은 그래도 꼭 저만큼의 공간을 남겨둔다. 집에 오면 저 공간만큼의 적막함이 나에게 안정을 준다.


 직장 상사들이 비혼인 내게 주로 묻는 것이 있다. '집에 가면 외롭지 않아? 집이 너무 조용하고 차갑잖아.' 그럼 난 그대로 대답해준다. 그 조용하고 차가운 순간이 너무 좋다고. 영업도 아닌데 나는 회사에서 말이 유독 많은 부서에 있다. 하루에 유관 부서와 몇 마디를 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사교를 좋아하는 (말을 이만큼이나 좋아하는) 나도 너무 지치고 만다. 그럴 때 집에 오면 내 의지가 아니고는 단 하나의 소리도 나지 않고,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이 공간이 알려준다. 딱 저만큼의 빈 공간이 특히나. 허전한 공간이 있으면 반드시 메워주고 싶은 맥시멀 리스트인 나도 미니멀리스트의 마음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요즘엔 주방도 (반대의 의미로, 맥시멀리즘적 의미로) 나에게 이런 기쁨을 준다. 내 이전 글인 내 꿈은 요리왕 (https://brunch.co.kr/@0a7daf5090964b0/2)에도 있지만 나는 2020년 요리를 시작했다. 요리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나는 주방 인테리어를 전부 엄마에게 일임했던 이력이 있다. 근데 요리를 하고 나니. 이것저것. 하나하나. 거슬리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오늘의 집을 보다 보니 내 눈에 요즘 유행에 맞게 익어버린 것이다. 이건 좀 올드하고. 이건 좀 너무 (?) 편의에 맞췄고. 요즘 유행처럼 이러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 내내 내 맘을 흔들었다. 그러다 내 생일, 크리스마스를 핑계로 주방 타일과 수전을 바꿔 내 취향의 주방을 만들었다.  



이게 지금의 주방이다. 위에서 말했듯 나는 비어 있으면 채우고 싶은 맥시멀 리스트다. 그래서 주방이 아주 복작복작한 게 좋다. 덧방 한 타일은 내 스타일에 맞고, 이것저것 올려둔 소품도 그렇다. 최근에 바꾼 순전히 "외형" 위주의 수전까지. (이 수전으로 설거지를 할 속셈이라면 완전 비추다. 나는... 식세기 아니었다면 바꾸지 않았을 것....하지만... 정말 예쁘다... 진짜로.) 그래서 나는 주방을 보면 또 기분이 좋다. 집에 하루 종일 있는 날이면. 해가 드는 방향에 따라 주방을 찍을 정도다. 부엌은 항상 보조등을 켜두는 편인데, 밤에 잠시 물 마실 때 넋을 놓고 이 복닥복닥한 풍경을 감상한다. 너무 너무 좋다.

2020년부터는 원래도 요리가 좋았지만. 지금은 요리가 더 더 좋다. 단순히 하는 공간이 더 취향이란 이유만으로.



2020년은 누구에게나 공간이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 해였다. 온전한 내 공간이 작거나 적은 대신, 카페 술집 등 남의 장소를 빌려 즐겁게 혹은 필요할 때 적절히 이용하던 장소는 마음 놓고 쓸 수가 없게 됐다. 해외여행을 갈 수 없고. 국내 여행마저 자제하던 사람들은 그저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게 다였고. 재택근무를 하게 된 사람들은 오피스를 겸할 공간까지 필요하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충동적으로 사게 된 2019년부터의 내 공간은... 또 신의 한 수란 생각이 들었다. 2.5단계 전까지. 나가 놀기 찝찝한 마음은 친구를 부르게 해 주었고. 레스토랑이 아니면 맛있는 건 오로지 배달로만 먹을 수 있던 나를 요리하게도 만들었다. 재택은 공간을 따로 빼 유용하기도 했고. 오랜 기간 집에 있던 때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공간을 누비게도 했다.
 2019년의 내 집은 그저 넓은 집에 살게 된 나의 좀 긴 적응 기간 (집들이도 12월까지 했으니...)이었다면 2020년의 내 집은 그야말로 나에게 내 공간의 의미를 가지게 해 주었다.



4. 앞으로?

나는 극단적 계획 인간이다. 일주일에 청소는 언제 빨래는 언제. 이런 계획이 다 짜여있다. 금요일에 로봇청소기를 돌리면 귀가 직후 먼지통을 비운다. 금요일 아침에 예약 빨래를 돌린 빨랫감은 금 밤에 건조기에서 팽팽 돌아간다. 금 밤에 안주를 요리해 술과 배부르게 먹고. 토/일 요리한 설거지는 그때그때 해결한다. 일요일, 주말 간 나온 빨래를 돌려 건조기에 돌리며 나는 반신욕을 한다. 반신욕 후 나온 물로 욕실 청소를 하고, 청소 후 욕실을 건조하며 나는 바닥을 무선 청소기로 걸레질까지 완료한다. 이 모든 게 끝나면 개수대엔 남은 설거지가, 빨래통엔 남은 빨래가, 바닥엔 눈에 띄는 머리카락이 없는 상태가 된다. 비록 일 밤의 조금 뒤는 출근하는 월요일이지만. 나는 이 깨끗한 집을 바라보면 (많이 과장해서) 마치 금밤에 퇴근하는 기분이 든다. 오로지 나의 결정으로 시끄러워지고, 더러워지는 집. 나만 어지럽힐 수 있는 나만의 공간. 앞으로도, 2021년에도 나는 이 공간을 아주 많이 좋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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