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렌 Jan 03. 2021

도리스 레싱 - 다섯째 아이

원래 서문과 역자 후기 등을 꼭 챙겨 읽는 편이지만, 이번엔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서평까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독서 모임의 책이었던 <노멀 피플> 덕분이었다. 

노멀 피플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가져오자면, 나는 두 사람의 복잡하고 설킨 어떤 사랑이야기. (조금 단순할지도 모르는.)이라고만 읽었다. 그래서 독서 모임에서 나왔던 '밀레니얼'과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읽어내지 못한 나에 대한 충격도 조금 있었다. 그때의 일을 계기로 단순히 책을 덮고 재밌었다. 하고 끝낼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과연 어떤 문맥을 짚어냈는가. 하는 반성을 하고 서평을 읽게 되었다. 




처음엔 오멘 같은 공포/호러/악령 소설인 줄 알았다. 다섯째 아이가 등장하며 조성되는 공포스러운 일상들...이라는 문구를 보며 나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한 둘이었을까?! 이런 분위기는 해리엇이 아이를 조산하는 시기에 최고조가 되며 미취학 아동이던 시기까지 이어진다. 허나 아이가 학교에 가고,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벤은 단순히 악령이나 공포스러운 존재가 아닌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엇나간 아이들 혹은 소외되는 아이들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이게 된다. 사실 여기서 살짝 김이 빠지긴 했다. 아마 도리스 레싱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던 탓이겠지.


도리스 레싱... 너무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모든 문장과 구성이 장치였다니. (역자 후기에 있다.) 초반에 해리엇과 데이비드를 묘사하는 부적절하게 긴 문장까지.... 글 중간까지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답답할 정도로 고정된 어떤 관념에 막 가슴 치며 읽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문장들도 어딘가 섬뜩했던 것 같다. 남들은 다 그게 아니라고 하는데 고집부리듯 우겨대는 두 사람의 모습도 무서웠을뿐더러... (정말 어디 씐 줄 알았다.) 



“이건 정말 희한해요. 이전에, 아무도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네 명의 정상적이고 똑똑해 보이는 멋진 아이들을 갖다니 넌 정말 똑똑하구나! 그 애들은 모두 네 덕분이야. 훌륭한 일을 해냈어, 해리엇!’이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도 이제까지 그런 말을 안 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벤에 대해서는 — 전 그저 죄인이죠!”


 이 부분이 소설 읽으면서 ㅇ ㅏ... 했던 부분인데 (나 역시 그렇게 읽고 있었으니까) 특이한 건 도리스 레싱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규정하지도 않은 작가였다는 점. 그리고 벤처럼 (결국은 신 인류, 혹은 장애가 있는 아이) 번외로 규정되는 인간에 대해 특정한 인권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쓴 작품도 아니라는 점... 그렇지만 도리스 레싱이 이런 신 인류 혹은 어떤 알 수 없는 생명을 통해 얘기하고자 했던 것이 특정 (장애, 성별 등) 집단에 대한 해방과 평등을 얘기한 건 아니었을지 언정 결국은 이 모든 어떤 관념에 대해서의 평등을 주장한 건 맞는 것 같다.


이 작가의 글 묘사 방식은 나로 하여금 인물을 꼭 판단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자연스레 해리엇에게 비난과 원망이 몰리게 되고 (벤을 만나러 가는 그 장면에서 특히)... 그 원망을 작가는 그대로 책 후반부에서 해리엇의 마치 방백 하는 듯한 대사를 통해 돌려주는 듯했다. 나는 그 장치에 말려들었고, 어쨌든 내가 생각한 악령 같은 게 아니고 평범한 생활을 그린 벤의 후속작까지 있단 점에서 이 이야긴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소외에 대한 걸 뭉뚱그려 이야기하고 있는 건 맞는듯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을 주지는 않되 (그러므로 우리는 평등하게 이들을 대해야 한다....라는 데 주제는 아닌듯함) 그를 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판단들 하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글을 왜 전부 ~같았다.라고 쓸까? 확신이 없네.)


여기서 어떤 방향으로 더 생각을 해야 적절한 독서 감상이 될까? 고민해 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내 공간의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