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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렌 Jan 12. 2021

반신욕 찬가

나는 목욕이 좋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주절거림은 아마 나 스스로 그 근원을 찾는 글일 것 같다.


0.

가장 오래된 목욕의 기억은 5-6살 때인 것 같다. 나는 부산의 오래된 달동네에 살았다. 온수는 하루에 두 번 정해진 시간에 나왔고, 그 시간에 활동하지 않는 어린이들을 씻기기 위해선 물을 팔팔 끓여 찬 물에 데워 목욕하는 게 유일한 길인 동네였다. 사실 달동네라기엔 산에 위치한 건 아니었고. 오히려 아주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동네라, 조금 주제가 새지만, 2000년 1월 11일-13일쯤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을 봤던 기억의 (그러니까 기억할 만큼 눈이 쌓인) 날에 부산의 모든 교통이 (부산엔 염화칼슘이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마비된 날 우리 동네는 골짜기의 언덕을 오르지 못해 모두가 걸어 출근했어야 할 정도였다.

어쨌든 그런 엄마의 수고로움을 겪었던 게 내 첫 목욕의 기억이다. 그리고 조금 커서 나는 엄마를 따라 대중목욕탕에 갔었다.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레포츠 센터였다. 욕탕 이용비가 당시 기준 2천 원이었고, 청소년까지 나가시 (세신의 일본말일까? 사투리라기엔.) 비용이 5천 원이었다. 나중에 머리가 크고 해운대에 이사 갔을 땐 비용이 2배-4배였으니 동네 특유의 싼 가격 + 예전의 물가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땐 목욕이 싫었다. 대중탕에 오고 나서는 목욕=대중탕=세신이었고 나는 너무 아팠던 것 같다. 엄마가 날 일곱 살부터는 혼자 대중탕에 보냈는데, 돈을 받아 가니 당연히 세신은 해야 하고. 그래서 나중엔 울며 불며 못하겠다며. 50원을 세신 아주머니께 빌려 공중전화로 엄마 나 못하겠다며 울었던 기억도 있다. 분명히 이땐 목욕이 싫었는데 말이지.

그래도 가끔 좋은 기억은 있었다. 세신 대기 줄이 길 때. 내가 적어도 한 시간은 욕탕에서 놀 수 있을 때. 아주 뜨거운 물에 들어갔다 꾸욱 참고 미지근한 물에 들어가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 찬 물은 아파 싫었고, 미지근한 물은 재미가 없으니. 그렇게 왔다 갔다 탕을 누비는 시간이 좋았다. 그러다 가끔. 사람이 없어도 때는 불려야 한다며. 30분의 시간을 주실 때가 있었다. 그럼 난 고요한 욕탕에서 물에 둥둥 떠 천장을 바라봤다. 대중탕 특유의 색 바랜 파란색 타일이 주욱 배열된 그런 천장이었다. 습기에 타일 가운데 물이 고이면 가끔 중력에 물이 똑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 물, 타일 같은 정형적인 걸 바라보며 나는 아마 예닐곱 인생 처음으로 고독 같은 걸 느껴본 것 같다.


1.

난 땀이 없다. 적은 편... 이라기엔 거의 나지가 않아 없는 편에 가깝다. 땀은 과학적으로 체온을 조절하기 위한 수단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체온을 조절하는 수단 하나가 반 이상 고장 나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우나나 뜨거운 물에 오래 앉아있지를 못한다. 그렇다고 더위를 많이 타는가? 아니. 남들이 다 녹아갈 때 난 음 더운가? 하는 정도에 그칠 정도로 더위를 모른다. 그런데 그런 더위를 타는 사람 보다도 난 목욕물에 오래 몸을 담그질 못한다. 결국 온천에 가도 기쁨은 잠시. 5분 담그다 나오고. 5분 담그다 나오고. 그냥 그 분위기를 만끽하는 데 족하는 게 다였다. 욕탕 특유의 물 냄새, 울리는 사람들 소리 같은 건 좋았지만.


2.

그러던 27살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친구 하나와 교토를 갔다. 사실은 추석이 껴 있어 긴 휴가 겸 해서 간 교토였다. 일본은 밥 먹듯 갔지만, 또 교토는 처음이라. 그런 작고 고즈넉한 도시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첫 코스는 당연히 료칸. 교토에서 유명한 료칸 동네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오사카에서도 몇 시간을 이동해 도착한 곳은 정말 료칸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동네였다. 그 첫날이었나. 다행히 내가 도착하고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고된 몸을 축일 겸, 씻을 겸 공용 료칸에 향했다. 돈이 많았다면 개인 료칸을 빌렸겠지만, 7박 8일이나 일본에 머무르면서 그 돈을 쓸 자신은 없었다. 어쨌든 공용 료칸이라 분명 북적거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일. 료칸은 나와 내 친구 외에 아무도 없었다. 분명 로비엔 많았는데. 아마 다 부유한 사람들이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비 오는 료칸을 독차지하게 됐다. 또 그날까진 물에 5분, 5분씩 담그며 샤워나 하고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노천탕에 뜻밖의 욕조가 있었다. 욕조라기 보단 동그란 형태의 쟈쿠지였다. 아마 앉아 쉬라는 곳이겠지. 그런데 난 앉다 더워져서, 사람도 없겠다 몸을 반쯤 띄운 채 팔다리를 동그란 형태의 돌 욕조에 걸쳐두었다. 비가 오는 탓에 서늘한 밤공기가 내 팔다리를 스쳤고, 계속해서 쟈쿠지에 흐르는 따뜻한 물은 등, 배 등을 푹 적셔주었다.

놀랍게도 난 그 쟈쿠지에만 2시간을 머물렀다. (친구는 먼저 올라갔다.) 밤은 까맣고, 비는 처마를 따라 도도독 떨어졌다. 서늘한 공기가 코과 이마를 스치고 다시 내 팔과 다리를 감쌌다. 따뜻한 물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

난 그대로 다음, 다다음 날의 일정을 (조금 과장해서) 모두 취소하고 이 쟈쿠지에 눌러붙었다. (친구는 어차피 나와 여행하는 이상... 합의된 사항이라. 혼자 잘 다녔다.)


문득 돌이켜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쟈쿠지에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욕탕이라 폰도 들일 수 없었고, 이야길 나눌 친구도 없는 상태라. 그야말로 혼자 매우, 엄청, 아주 많이 생각했다. 너무 좋았다. 생각을 한 행위 그 자체보다 내가 어떤 한 공간에 자의적으로 고립돼, 고독을 맛본다는 게. 생각해보면 아주 어릴 적 대중탕에서 가끔만 알 수 있었던 그 고독이 그리웠던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난 이 날 이후로 목욕 (특히 상체만. 은 아니라도 몸의 반만 담그는), 반신욕이 아주 좋아졌다.


3.

일인가구로 집을 장만하고 나서 나는 어떤 계기로 반신욕조를 사게 됐는데, 이 욕조엔 그 교토의 쟈쿠지처럼 팔과 다리를 걸칠 수 있다. 그리고 베란다 문을 (당연히 난 보이지 않는 욕실에 있다.) 활짝 열어두고 바람이 불게 하면 회색 타일로 둘러 싸인 내 욕실이 바로 교토였다. 지금도 난 욕조에 있다. 5분만 담그면 더워 못살겠던 나는 가고. 몸을 어쨌든 반만 담근 나는 40분째 욕조에서 한량처럼 놀고 있다. 오늘의 나쁜 공기 탓에 환기 대신 원격 조종이 가능한 선풍기를 틀었다. 유투브론 빗소리를 틀었다. 비록 난 야근을 했고, 내일 또 출근을 해야 하지만. 그냥 지금 이 순간은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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