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유 있는 죽음
김미혜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 고요함 속에서 밀린 과제를 하기 위해 졸음을 떨치려 창문을 열었다. 새까만 하늘에 유독 많은 별이 반짝거리고 바람도 불지 않는 청명한 밤하늘이다.
이곳 기숙사에 들어온 지 3개월쯤 지나가는데도 여전히 낯설고 이들 문화에 가끔 버겁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마트에서 물건이나 사고 안면이 생긴 이들과 안부들을 묻는 수준의 언어 실력이다 보니 친구를 만드는 것도 그 속에 들어가는 것도 어렵고 눈치도 보인다.
요즘 계속되어 온 시끌벅적하던 것과는 달리 오늘의 밖은 풀벌레 소리 외에는 유난히 한가롭고 조용하며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해 자연스럽게 그 속에 내 몸을 실었다.
기숙사 뒤편 자전거 주차장에서 들려오는 거치대의 달그락, 철컥 거리는 소리와 가끔 들려오는 발걸음소리 외에는 칠흑 같은 어두운 적막함이 기숙사와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전공의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한의학의 발상지인 중국 본토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몇 개월을 부모님께 조르고 졸라서 겨우 허락을 얻었다.
90년대 끝자락 그 시절에는 유학을 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더욱이 딸인 나에게 대학 공부 외에 다른 공부를 더 허락한다는 것은 매우 드물고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당시 남동생이 군대 제대 후 복학을 막 한 시점이라서 경제적 어려움을 가지고 계셨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난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몇 주간의 준비로 중국으로 떠났다. 한동안은 공부에 전념하여 한국 땅을 밟지 않으리라는 다짐 속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창문을 열어 새까맣게 어두운 하늘의 별을 세며 한국에서 떠나 온 이유와 다짐들을 떠올렸다.
다시 공부에 전념할 마음이 솟구쳐 낡은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쳐 들었다.
그 순간 ‘퍽’ 하고 육중한 물건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쌀 가마니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
소리는 단 한 번.
30여 분쯤 지났을까 창밖으로부터 한 중국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로 어디론가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10여분쯤 119구급차의 소리가 들렸다. 이젠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도 함께였다.
창밖을 내다보니 내가 살고 있는 기숙사 라인에서 2칸 떨어진 라인 아래쪽에 무언가가 부분이 덮여 있었고 주위에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었으며 119 구급대원들이 들것에 태우려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난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허리까지 숙여가며 자세히 봤다.
그 무언가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같은 기숙사 6층에 살던 일본 유학생 Y였다.
이 사건이 있었던 다음날 기숙사의 풍경은 여느 때와 달랐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제의 광경을 본 사람을 에워싸고 이 질문 저 질문을 해대고 한숨과 목이매인 목소리와 낮은 탄성들이 뒤섞여 들려왔다.
그 무리 속에는 나도 있었다. Y의 마지막 모습은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등에 맨 축구공 때문에 등이 뒤로 꺾인 상태의 모습이었다고 했다.
보통 키에 마른 체형으로 가끔 내게 눈인사를 건네던 그 일본 남학생 Y.
한국 유학생들과도 제법 잘 지내며 옅은 미소지만 자주 보여줬었는데 어찌 된 일이었을까
Y는 일본에서 집단 따돌림(왕따)을 당했던 학생이었다고 했다.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학교생활에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고 하였으며 그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중국으로 왔었다.
그날은 Y의 생일날이었다. 자신의 생일 파티를 위해 중국, 한국 친구들과 그리고 유학 시절 사귀게 된 여자 친구와 생일파티를 했다. 평소 축구를 매우 좋아했었는데 어떤 친구로부터 축구공을 선물 받아 더욱 기뻐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자살을 했을까. 왜 하필 생일날이었을까 라는 궁금증을 더하던 때에 Y와 친했던 친구가 Y의 유서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의 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했다.
「오늘은 내 생일.
많은 친구가 축하해 줬다.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중국으로 온 이후로 이렇게 많은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다. 내 여자 친구도 너무 사랑스럽다. 내가 원하는 축구공 선물을 받았다.
이렇게 행복한 날은 처음이다. 평생 살아가면서 이렇게 행복한 날을 또 경험할 수 있을까?
오늘처럼 행복한 날은 또 없을 것 같다. 가장 행복한 날을 기억하며 안고 떠나고 싶다.
모두들 고마워. 」
‘많고 많은 날 중에 하필이면 생일날이었을까’라는 궁금증은 풀렸으나
Y는 죽기 전 어떤 감정과 생각들을 하였을지
죽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을 했을까 라는 의구심은 한층 더해졌다.
Y의 죽음 이후로 나는 죽음의 이유가 매우 다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사건은 한동안 유학생들의 가십거리가 되어 떠돌다 기억의 저편으로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그날처럼 조용한 밤하늘을 대할 때면 가끔씩 떠오르곤 한다.
오늘 유난히 이름 모를 벌레 소리와 공허한 밤하늘이 슬프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