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관이나 단체도 마찬가지이지만 모든 권력은 그 단체의 장에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고 또 그래야만 될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집단지도체제는 어떤 일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소모전이 많고, 쉽사리 결정이 나지 않을 터 그럴 때에는 과감한 결정을 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 결과에 관계없이 단호하게 보이고 심지어 멋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원래 민주주의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 말이 많아서 성질 급한 사람들은 못 견딜 만큼 지루한 과정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미적지근한 지도자보다 차라리 독재자를 선호하는 이유일 것이다.
학교의 제반 결정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독재까지 거론하기는 좀 너무 앞선 감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학교는 겉으로는 그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모든 권력을 틀어 쥐고 있는 학교장은 독재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현실에서는 다들 교장들이 점잖은 편이라 그렇게 권력욕이 넘치고 교사들을 휘어잡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열에 하나 그런 맘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또는 다른 방식으로 독재를 행하려고 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일단 학교는 그 안에서는 크게 외부의 자극을 받지 않는다. 물론 상급기관의 통제를 받지만 그건 업무적이고 도덕적인 범위이지 학교장의 교육철학과 경영방식에 대해서는 검증하지 않으며, 관심 밖이다. 마치 교실 안에서는 교사가 모든 권력을 틀어 쥐고 있는 것과 비슷하겠다.
그래서 나온 일종의 견제 역할을 하는 것이 학교운영위원회이다. 200명 이상 1000명 이하의 학생을 가진 학교의 경우 교원위원이 4명인데, 학교장은 당연직으로 포함되고 이해할 수 있다. 학부모위원은 각 학년별 2명으로 6명이고, 지역위원이 2명으로 12명으로 구성된다. 교원위원은 교사들 중에서 덕망과 패기를 갖춘 개혁적인 인물이어야겠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교장이 정한 부장들이 무투표 당선으로 들어온다. 그러면 교육수요자인 학부모가 중요한데 학부모도 아이가 볼모로 잡혀 있다는 생각에 학교에 반대되는 말을 하지 못하는 학생회장 등의 주요 임원들의 부모들이 역시 무투표당선으로 들어오고, 지역위원도 교장이 주로 추천하거나 지역사회에서 힘깨나 쓴다는 지역 유지들이 들어오는 탓에 학교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자연히 만들어진다. 내가 15년 가까이 운영위원을 해 왔지만 실제 투표로 경선을 하여 당선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무투표당선된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학교에 우호적인 인사들이 포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학교에 우호적인 인사가 포진하고 학교에 도움 되는 정책을 집행하면 무슨 걱정이 있겠냐 하지만, 교장의 교육철학이나 생각이 절대선이 아닐진대 어느 누구 하나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그 조직이 얼마나 보수적이냐를 스스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의의 성격이 '학부모, 교직원, 지역사회가 함께 만드는 민주적 운영의 제도적 기반'이라고 하는데 실상은 비민주적 운영에 대한 법적 면죄부를 주는 셈이 아닌가 한다. 차라리 그런 제도가 없으면 대놓고 비판을 할 텐데 오히려 비판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안 그래도 학교가 제일 보수적이라고 하고 제일 변화가 늦다고 하는데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훌륭한 교장, 존경하고픈 교장도 많고, 교장 자리가 요즈음에 들어서 3D 업종만큼 힘이 드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별난 학부모의 민원도 예전같이 않고, 몹쓸 학생들도 많고 교사들도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 교장의 권력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학교운영위원회를 동등한 파트너로 여기고 조언을 구하고 지혜를 모으면 책임도 나누어지고, 신임도 받을 텐데 왜 그렇게 권력을 가진 사람은 남들이 하지 못하는 혼자만의 결정을 스스로 위대하다 생각하고, 과감하다 생각하는지 모를 일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들 하지만, 사실 사람은 권력에 너무 취약하고, 부족한 사람일수록 권력에 더 심취하는 것 같다.
한참을 생각하다 보면 결국 '교장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실 오늘날의 교장은 많은 교사들의 선택에 의해, 추천에 의해 그 자리에 된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의 점수 따기 경쟁과 교장이 될 때까지 거쳐온 행정 서류 더미와 스스로 쌓이는 권력의 무게가 설탕 맛에 길들여지듯 스스로에게 젖어버리고 평생을 그 한 목표를 향해 달려온 과정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교사 시절의 순수함은 잊어버리고, 학생들의 고충을 직접 느껴온 경험도 사라져 버리고, 행정가로서 상부기관만 쳐다보며 규정과 법규에 매달린 결과라는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가 국공립학교에서 시범실시된 것이 1996년이고 사립학교까지 의무화된 것이 2000년이라고 하는데 그토록 많은 세월이 흘러도 어떻게 점점 형식적으로 전락하고 말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학교운영위원회 규정이나 조례나 법령까지 버젓이 만들어졌는데 실제 운영은 비민주적으로 흐르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교육정책 책임자나 교육부장관까지 붙들고 물어보고 싶다.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대통령이나 시장을 붙들고 이야기할 내용은 아니다.)
1980년, 1990년의 독재는 시민 중에서도 우리 대학생들이, 젊은이들이 고쳐내었듯이 학교의 민주화는 사실 학생들이 일어서야 한다. 몇 년 전부터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가 참석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현실에서 그 문은 학생들에게 닫혀있고, 학생들도 그런 문이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일제강점기 저항을 불꽃을 피웠던 것도 10대 학생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학부모 아래서, 그런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서 지금의 현실 지향적이고 생존에 찌든 젊은이가 되어 버렸다. 생각해 보면 그런 보수적인 학교가 그런 아이들을 길러낸 것이다.
결국은 시민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불법 계엄도 결국 시민이 목숨을 걸고 막았듯이, 우리 시민이, 우리 학부모가, 우리 주민이, 당당하게 요구하고 딴지를 걸어야 한다. 교장선생님에 대한 지나친 극존중은 버려야 한다. 서구 사회에서 교장이 교문에서 학생들을 맞이하고, 지각생 지도하고 상담하는 그런 교장을 요구해야 한다. 교장도 운영위원회에서는 한 사람의 위원일 뿐이다.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소통하고 겸손한 교장을 갖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운영위원회는 정말 중요하다.
PS) 흔히 학교운영위원회가 의결기구가 아니라 심의기구(사립유치원은 자문기구)라서 법적구속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래의 조항을 보면 그 권한을 결코 적다고 보기가 어렵다.
제33조 (보고서 제출)
①학교장은 운영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최대한 존중하여야 하며, 그 심의 결과와 다르게 시행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이를 운영위원회와 관할청에 서면으로 보고하여야 한다.
②학교장은 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치는 경우 교육활동 및 학교운영에 중대한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천재․지변 기타 불가항력의 사유로 운영위원회를 소집할 여유가 없는 때에는 초․중등교육법 제32조 각 호의 사항에 대하여 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이를 시행할 수 있다.
③학교장은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시행한 때에는 관련사항과 그 사유를 지체 없이 운영위원회와 관할청에 서면으로 보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