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도 정리정돈을 잘하는 편이 아니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물건을 잘 못 버리는 엄마의 영향으로 나 역시 그런 면이 있고, 그러다 보니 집안에 물건이 많아져 정돈하는 것만으로 잘 정리된 느낌이 나지 않는 것이 가장 클 것 같다.
그런 나에게 큰 숙제가 떨어졌다.
1 년간 덴마크에서 살게 되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1 년이라 세를 놓고 나가기가 쉽지 않아서 그냥 두고 갈까도 고민했다.
같은 일을 2년 먼저 겪은 친구는 바닥에 물건을 싹 치우고 로봇청소기를 주 1회 돌리며 세를 주지 않고 1년간 다녀왔다고 한다.
하지만, 집을 비워두고 사용하지 않으면 쉽게 망가진다고도 하고, 월세를 받으면 해외 생활 하는 데 경제적으로 좀 도움이 될 수 있기에 우리는 2년 월세로 계약을 했고, 돌아와서는 잠시 다른 집을 구해서 살기로 했다.
그래서 이삿짐센터를 이용해 이사해 본 경험밖에 없는 나에게 집을 깨끗이 비워줘야 하는 임무가 떨어진 것이다.
몇 년 살다 오는 계획이면 해외 이사를 신청해서 국내 이사랑 많이 다르지 않게 짐을 싸고 보내주는 것을 아웃소싱하면 될 텐데, 1년이라 그것 참 애매하다. 해외 이사로 드는 비용으로 1 년동안 사용할 물건을 이케아나 중고마켓에서 저렴하게 사서 쓰고, 다시 되팔고 오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먼저 옷을 정리했다.
버릴 옷, 물려줄 옷, 기부할 옷, 가져갈 옷, 두고 갈 옷으로 나눠서 각각 다른 상자나 대형 비닐봉지에 담았다. 아이는 계속 자라고 있기에 어렵지 않았는데, 이제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나와 남편의 옷이 문제였다. 체중도 급격한 변화는 없기에 대부분의 옷이 맞지 않아 버릴 일이 별로 없는데, 그렇다고 다 입는 것도 아니다. 이럴 때 평소 배운 것을 실천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최근 2년간 입은 적이 없고, 그 옷을 봐도 설레지 않으면 버리는 게 맞는데... 역시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일치시키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해야지 뭐, 어떡해. 일단 내 옷은 다섯 가지로 분류해서 정리는 했다. 지금 입고 있는 여름옷 중에 마지막 선별 과정은 떠나기 며칠 전으로 미뤄두긴 했지만. 남편에게도 같은 기준으로 하루 날 잡아 정리를 부탁할 참이다.
그다음은 우리 집 이사할 때 추가 비용 들게 한 책들. 일단 전집류는 다 정리한다고 생각하고 팔 것, 물려줄 것, 두고 갈 것, 버릴 것으로 나눴다. 물려줄 책들을 7살 딸을 둔 친구가 받겠다고 해서 주고, 집 근처 알라딘 중고서점에 초등 중/고학년이 읽을 법한 다 읽은 단행본들은 가져가서 팔았다. 그 돈으로 아이가 노래를 부르던 아이브 포카가 들어있는 앨범 하나를 사 주었다.
최고의 난제는 주방이다. 15년 결혼생활에서 깨져서 나간 것 빼고 쌓여 있는 그릇들과 주방용품들. 2주 남은 시점에서 이번 주에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곳이다. 다시 돌아와서 바로 써야 할 그릇과 압력솥, 전기밥솥, 에어프라이어, 수저, 요리 도구 몇 가지 남기고 대부분은 버려야 할 것 같다. 유리나 도자기는 뽁뽁이로 싸서 상자에 담아야 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일단 비워보고, 혼자 하기 어려우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도.
그리고, 숨고에서 찾아보니 이사 후 폐기물 정리해 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서랍장 등의 큰 가구는 둘이 옮기고 버리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이런 서비스를 신청하면 가구 개수와 무게, 종류에 따라 금액을 산정하고 대신 처리를 해주는 것 같다. 남은 일주일 간 열심히 정리해 보고 마지막엔 결국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다행인 것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하에 각 호실마다 약 2평 정도의 창고가 있다는 것이다. 캠핑족들에게 최적화된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중에서도 우리 집 창고는 구석 벽면에 붙어있어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 꽤 많은 짐을 상자에 넣어 보관을 해놓고 갈 수 있다. 이제 남은 2주간은 보관할 짐을 상자에 담아 창고로 옮기는 작업을 해야 한다. 자, 힘내서 속도를 내 보자. 나는 할 수 있다. 아자아자!! 이렇게 속으로 구호를 외쳐보지만, 가슴이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