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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국 Apr 18. 2024

변화의 메커니즘

변화, 그리고 변화가 아름다운 이유

한 번 생각해 보자. 주변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았고, 얻은 결론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이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우리가 존재하는 공간마저도 변하고 있다. 우주적 관점으로 본다면 우주는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변화’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변화’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물의 성질, 모양, 상태 따위가 바뀌어 달라짐.’     


당신은 이 설명을 납득할 수 있는가? 아마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변화’와 정확히 일치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우리가 살면서 여러 대상에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자 개념이다. 예를 들어, 다투던 연인이 상대방에게 “너 요즘 변했어.”라고 할 수도 있고, 식당에서 밥을 먹던 사람이 “이거 음식이 좀 변했네요.”라고 할 수도 있고, 실험하던 사람이 “용액 색깔이 변했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렇듯 ‘변화’는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왜 변하지 않는 것은 없을까? 영원한 건 왜 존재하지 않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고, 당신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변화’를 다시 정의해 보겠다.     


내 생각에 ‘변화’란, 어떤 대상의 상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간의 흐름’이다.     


어떤 변화든 시간의 흐름을 반드시 수반한다.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변하는 것도 없다. 이는 직관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시간은 우리가 임의로 조작할 수 없다. 주변의 시간을 빠르게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시간을 임의로 조작하는 것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라 큰 중력장 안에 있으면 시간이 느리게 간다. 이것을 ‘시간 지연’이라고 한다. 


당신은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를 보았는가? 시간 지연은 영화 ‘인터스텔라’의 ‘밀러 행성’에서 고증되었는데, 작중 블랙홀과 가까이 있는 밀러 행성에서의 1시간은 지구에서의 7년이었다.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중력이 강한 곳으로 갔다가 오면 미래로 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러면 그게 시간을 조작한 것 아닌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실제로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의 연구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 시간 지연을 이용해 미래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시간을 조작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앞서 언급했듯, 밀러 행성에서의 1시간은 지구에서의 7년이다. 그렇다면 밀러 행성에 있는 사람의 시간과 지구에 있는 사람 개인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만약 각각의 행성에 시계를 가지고 가도 시계가 돌아가는 속도는 서로 같다. 각각의 시계가 갑자기 거꾸로 돌아가거나 빠르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단지 서로 만났을 때 시계의 초침, 분침, 시침의 위치가 다를 뿐이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본인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타인이 느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이 이야기까지 온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간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임의로 조작할 수 없다.       

여태까지 세 가지의 이야기를 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화에는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다.’

‘시간은 임의로 조작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변하지 않는 것은 없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지금부터 해 보겠다. 이 질문은 ‘왜 모든 것은 변할까?’라는 질문으로 환원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우주가 만들어질 때 생겨난 어떤 방향성에 기인한다. 여기서 말하는 방향성은 ‘열역학 제2법칙’에서 나오는 ‘엔트로피’와 관련이 있다.


‘엔트로피’는 이런 것과 같다. 만약 당신의 어머니께서 당신의 방을 깨끗이 청소했다고 해 보자. 시간이 지나면 당신의 방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당연히 처음보다 너저분해진다. 의자에 옷이 쌓이고, 이불은 구겨지고, 쓰레기통은 머금고 있는 것을 토하기 직전으로 변한다.


여기서 깨끗한 방이 엔트로피가 작은 방이고, 지저분해진 방이 엔트로피가 큰 방이다. 엔트로피가 생소한 단어라면 ‘무질서도’라는 단어로 환원해도 괜찮다. 무질서도가 클수록 너저분한 방을, 무질서도가 작을수록 정리된 방을 생각하면 된다. 경우의 수와 확률을 사용한 엄밀한 설명은 아니지만, 이해가 되었길 빈다.    


앞에서 ‘우주가 만들어질 때 생겨난 어떤 방향성’이란 말을 했다. 여기서 말하는 방향성이란, 우주가 커질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엔트로피가 커지는 쪽으로 움직이고 바뀐다. 또한, 앞서 이야기했듯 시간은 우리가 임의로 멈추거나 느리게, 혹은 거꾸로 가게 하는 등 조작할 수 없다. 그렇기에 엔트로피의 증가는 임의로 조작할 수 없고, 항상 증가한다.     


사실 엔트로피는 시간과 관계가 아주 많다. 또한, 여기까지 한 엔트로피에 대한 정의는 정확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엔트로피에 대해 더 엄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어쨌든, 무엇이든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우주가 생겨날 때 어떤 이유로 인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서이다. 또한,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방향으로는 절대로 움직일 수 없다.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방 정리를 하는 것은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것 아닌가요?”     


맞는 말이다. 만약 당신이 더러운 방이 싫어서 방을 정리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방의 엔트로피는 감소한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간과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방을 정리하는 데 당신이 사용한 ‘에너지’이다.     

당신이 방을 정리하는 데 에너지를 사용했다는 것은 섭취한 열량을 사용해 방을 치우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섭취한 열량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열량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과 호흡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이는 세상에 무질서하게 존재하는 에너지를 체내에 축적한다는 점에서 ‘엔트로피의 감소’이다.      


그리고 엔트로피의 감소로써 저장된 에너지를 사용해 당신이 방을 정리했다면, 방의 엔트로피는 감소했지만 당신이 사용한 에너지는 체내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에 에너지적인 측면에서는 엔트로피가 증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방에서의 감소된 엔트로피와 에너지의 소모로 인해 증가한 엔트로피 중 어떤 것이 더 클까?  


예상했을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방을 정리해서 생긴 엔트로피의 감소폭은 당신이 쓴 에너지에 대한 엔트로피의 증가폭에 비해 절대로 클 수 없다. 즉, 결국 우주의 엔트로피는 무슨 짓을 하든 증가하는 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고, 삶을 살다가 결국 죽는 이유도 엔트로피가 결국 증가하기 때문이다. 우리 신체의 엔트로피가 최대로 증가한 상태는 조금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의 몸이 원자 단위로 쪼개져 우주에 흩뿌려져 있을 때이다.     


따라서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도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이렇게 엔트로피의 증가로 인해 점점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에너지를 섭취한다. 에너지를 섭취해 엔트로피의 증가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를 싫어하는 것이 아닐까? 현실에 안주하고 편안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하다 보면 어떻게 될까? 온 우주에 아무런 상호작용이 없는 죽은 우주가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만이 존재한다고 해보자. 당신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어떠한 변화도 없다고 해보자. 당신은 그런 곳에서 살아가는 의미가 있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변화하는 곳에서 산다. 나도 변화하고, 당신도 변화하고, 우리 모두가 변화하고, 심지어 우리가 사는 지구, 태양계, 우리 은하, 우주까지도 모두 변화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런 변화들은 궁극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우주의 법칙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만약 우주가 생겨난 순간 엔트로피의 방향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같은 상태를 유지하게 설정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주는 태어난 순간부터 영원히 같은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그런 공간에 존재하는 의미는 없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것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특별함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의 변하지 않는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변하는 세상에서의 변하는 존재보다 훨씬 더 의미가 없다.     


우리는 변화하기 때문에 살아가고, 변화하기 때문에 타인과 관계를 맺고, 변화하기 때문에 사랑을 하고, 변화하기 때문에 죽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궁극적인 변화의 편린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하는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PS. 엔트로피의 방향이 감소하는 쪽은 언급하지 않았는데이는 시간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았어요우리 우주에서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엔트로피와 시간이랍니다그럼 엔트로피가 감소하면 시간은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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