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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스 강변, 사라진 그리니치 궁전을 찾아서

강가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여왕

by 꽃보다 예쁜 여자


I know I have the body of a weak and feeble woman, but I have the heart and stomach of a king, and of a king of England too.
나는 연약하고 허약한 여인의 몸을 가졌지만, 내 안에는 왕의 마음과 기개가 있다. 바로 잉글랜드의.
- Elizabeth I, Tilbury (1588)


1588년 틸버리에서 스페인 무적함대와 맞서기 전,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병사들에게 남긴 이 말은 지금도 영국인의 가슴을 울린다. 이 여왕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바로 튜더 왕조의 심장이었던 그리니치 궁전(Greenwich Palace)이었다.





왕조, 바다, 시간의 무대


런던 브리지에서 전철을 타고 남쪽으로 향하면 종착역 중 하나가 그리니치(Greenwich)다. 역을 나서자마자 바닷길처럼 탁 트인 길이 펼쳐지고, 템스 강변을 따라 걷노라면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마리타임 그리니치(Maritime Greenwich)다.





강변에는 이제 궁전은 사라지고, 바닥에는 한 장의 돌판이 놓여 있었다. 그 돌에는 1491년 헨리 8세(Henry VIII), 1516년 메리 1세(Mary I), 1533년 엘리자베스 1세가 태어난 곳임을 알리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 앞에 서니, 튜더 왕조의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궁전의 모습이 잠시 되살아나는 듯했다.



이곳에는 튜더 왕조의 그리니치 궁전이 있었다. 1491년 헨리 8세, 1516년 메리 1세, 1533년 엘리자베스 1세가 태어난 곳이다.헨리 7세가 지었다



그리니치 궁전의 시작은 1440년대 플랜태저넷 왕조의 글로스터 험프리공작이 세운 작은 별궁이었다. 이후 헨리 6세의 왕비 마거릿이 이곳을 ‘플라센티아(Placentia, 즐거움의 궁전)’라 이름 붙였다. 장미 전쟁을 끝낸 헨리 7세(Henry VII)는 붉은 장미와 흰 장미를 합쳐 ‘튜더 장미를 왕조의 상징으로 삼으며 이곳을 붉은 벽돌 궁전으로 다시 세웠다. 그러나 이 강변이 진정한 무대가 된 것은 그의 아들 헨리 8세 때였다



좌:플랜태저넷 왕조 (1154–1485) , 금계국(planta genista) 우: 튜더 왕조 (1485–1603) , 튜더 장미(Tudor Rose)


헨리 8세는 이곳에서 태어나 축제와 토너먼트를 즐기며 자랐다. 왕이 된 뒤에도 결혼과 궁정 행렬을 이 강변에서 펼쳤다. 그의 첫 아내 캐서린 오브 아라곤(Catherine of Aragon)은 이곳에서 메리를 낳았고, 두 번째 아내 앤 불린(Anne Boleyn)은 엘리자베스를 낳았다. 세 번째 아내 제인 시무어(Jane Seymour)는 에드워드를 낳았으나, 그는 짧은 15살의 생을 마치고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곧 그리니치는 튜더 왕조의 사랑과 야망, 그리고 비극이 교차하는 무대였다.





세월이 흘러 찰스 2세(Charles II)가 새 궁전을 짓겠다며 철거를 시작했으나 끝내 완공되지 못했다. 그 자리에 세워진 것은 왕립 해군 병원(Royal Naval Hospital), 오늘날의 올드 로열 네이벌 칼리지(Old Royal Naval College)였다.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 1632–1723)과 니콜라스 호크스무어(Nicholas Hawksmoor, 1661–1736)가 설계한 이 영국 바로크 건축의 걸작들은 지금도 템스 강가에서 사라진 궁전을 대신해 웅장하게 서 있었다.




헨리 8세, 권력과 종교의 재편


We are by the sufferance of God,
King of England…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잉글랜드의 왕이다.


바닥의 돌판 앞에 서니, 문득 떠오른 것은 헨리 8세(Henry VIII,1491–1547)의 선언이었다. 교황의 권위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신과 직결된 왕으로 선포하며, 그는 잉글랜드의 권력과 신앙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것이 바로 종교개혁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삶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 것은 여섯 명의 아내들이었다. 오늘날까지도 영국 아이들이 장난처럼 외우는 짧은 운율이 있다.


Divorced, beheaded, died;
divorced, beheaded, survived.
이혼, 참수, 사망; 이혼, 참수,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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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예쁜 여자가 되고 싶어 꽃을 만드는 공예가입니다. 물론, 외면이 아닌 내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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