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영국다운 길, 바로 여기

서펜타인 호수를 지나 자연사박물관으로

by 꽃보다 예쁜 여자


하이드파크에서 시작된 이른 아침


이른 아침 작은 숙소를 나서 하이드파크의 서펜타인(Serpentine) 호숫가에 닿으면, 발끝 가까이에서 백조와 오리가 기지개를 켜듯 날개를 펼치며 하루를 연다. 도시 한가운데에서 만난 이 잔잔한 풍경은 시간이 지나도 오래 마음에 머문다. 지금도 내게는 런던의 중심에서 가장 영국다운 장면이자 조용한 품위가 머무는 순간으로 남아 있다.




영국 조경의 정신이 깃든 서펜타인


사람 가까이까지 천천히 걸어 나와 머무는 물새들의 움직임은 이곳이 오래된 자연호수처럼 느껴지게 하지만, 서펜타인 호수는 사실 1730년대 조지 2세의 왕비 캐롤라인(Queen Caroline)의 요청으로 왕실 조경가 찰스 브리지먼(Charles Bridgeman)이 만든 인공호수다. 자연스러운 곡선과 물가의 완만한 경사 덕분에, 처음부터 이곳의 풍경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프랑스식 정원의 직선과 대칭에서 벗어나 비대칭 곡선을 따른 이 호수는 영국 자연풍경식 정원의 문을 열었다. 인공을 숨기지도 과장하지도 않는 영국다운 절제의 미는 바라볼 때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길이 약 900미터, 폭 약 40미터, 깊이 2미터 남짓한 서펜타인 호수


호수 중간을 가르는 서펜타인 브리지는 1826년 존 레니의 작품으로, 하이드파크와 켄싱턴 가든을 잇는다. 낮게 놓인 아치의 절제된 균형감에서 영국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고즈넉한 품위를 품은 켄싱턴 궁전


서펜타인의 서쪽 끝, 고즈넉한 숲길 너머에 자리한 켄싱턴 궁전은 화려함보다 품위를 중시하던 영국 왕실의 기풍을 담고 있었다. 17세기말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의 거처였고, 빅토리아 여왕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했다. 서펜타인 호수가 캔싱턴 궁전과 하이드파크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 준다.





하이드파크는 142헥타르 규모의 큰 공원이다. 1536년 헨리 8세의 사냥터로 시작해, 1637년 찰스 1세가 시민에게 개방하며 지금의 열린 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하이드파크, 켄싱턴 가든, 서펜타인 호수는 서로 다른 장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8세기 이후 시도한 하나의 조경 실험에서 비롯된 연속된 풍경이다.


프랑스식 조경의 대칭성과 자연풍경식 정원의 부드러움이 어우러진 켄싱턴 가든은 켄싱턴 궁전과 함께 서쪽 일대를 아름다움으로 이어 준다.


공원을 넘어 학문의 거리로


호수를 따라 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걷다 보면, 잔잔한 수면이 이어지던 풍경이 어느 순간 사우스켄싱턴의 분위기로 바뀌어 간다.



이 일대의 거리에는 연구기관과 대학 건물, 여러 박물관이 나란히 서 있어 런던에서도 드문 문화 지대를 이룬다





넓은 공원과 잔잔한 호수, 연구기관이 모인 거리, 그리고 자연사의 긴 기록을 품은 건물이 도시 한가운데 이어져 있다. 자연과 역사, 지식이 하나의 흐름 안에 이어지고, 꾸밈없이도 은근한 품위와 깊이가 살아 있는 이 길, 가장 영국다운 길, 바로 여기이다.


로열앨버트홀



가장 먼저 언덕 위로 로열앨버트홀이 나타나고, 이어서 자연사박물관,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사이언스뮤지엄, 임페리얼 칼리지가 차례로 펼쳐진다. 공원에서 시작된 산책이 자연스럽게 과학과 예술, 문화의 공간으로 이어지는 곳. 영국의 학문과 예술의 깊이가 일상의 풍경처럼 스며 있는 구간이다.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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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예쁜 여자가 되고 싶어 꽃을 만드는 공예가입니다. 물론, 외면이 아닌 내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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