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질 때
오래된 건축, 사라지는 형상, 고정된 프레임
뉴욕 뮤지엄 마일 끝자락,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는 100년 넘게 같은 위치를 지키고 있는 저택이 있다. 멀리서 보면 그저 오래된 타운하우스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건물 전체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품고 있는 Salon 94 갤러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1913년부터 1915년 사이, 건축가 오그던 코드먼(Ogden Codman)이 설계한 이 5층 보자르 양식(Beaux-Arts style)의 저택은 원래 예술 후원가 아처 헌팅턴과 조각가 안나 하이엇 헌팅턴 부부의 집이었다.
사적인 생활공간이었지만 동시에 예술가들이 드나들던 작은 문화 살롱이었다. 1940년 부부는 이 집을 내셔널 아카데미 오브 디자인에 기부하며, 이 공간이 앞으로도 예술을 품는 장소로 남기를 바랐다.
2021년 라파엘 비뇰리 아키텍츠(Rafael Viñoly Architects)의 복원 작업은 이 오래된 저택을 오늘의 Salon 94로 다시 살아나게 했다. 원래의 석재와 목재, 아치 구조는 최대한 보존하고 그 위에 현대적 갤러리 기능을 더했다. 건축 자체가 마치 하나의 조각처럼 느껴지는 공간이다.
현재 Salon 94에서는 우르스 피셔(Urs Fischer, 1973~)와 존 케이서(John Kacere, 1920–1999)의 전시가 동시에 12월 20일까지 열리고 있다. 지난 토요일 오후, 한 시간을 줄 서서 Salon 94에 들어갔다. 뉴욕의 상업 갤러리는 대부분 입장료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관객이 많아야 작품이 알려지고, 작가가 소개되고, 다시 수집가와 연결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건축, 우르스 피셔의 사라지는 형상과 뒤틀린 일상
Salon 94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오래된 건축과 우르스 피셔의 조각이 함께 만들어내는 독특한 리듬이 시작되었다. 석재와 벽돌을 그대로 품은 현관, 초기 20세기 살롱의 흔적이 남아 있는 복원된 벽면과 몰딩을 지나자마자 라탄 암체어가 하나 놓여 있었다. 멀리서는 단정한 의자로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손톱과 주름, 살결의 미세한 결까지 그대로 살아 있는 실리콘 손 조각이 등받이 위에 얹혀 있었다.
첫 작품을 지나며, 이 전시가 익숙한 것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펼쳐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르스 피셔의 전시 <Shucks & Aww>
우르스 피셔는 스위스 취리히 출신의 현대미술 작가로, 사물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과정 자체를 작품으로 삼아 온 인물이다. 조각·설치·회화 등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익숙한 사물의 기능을 뒤틀고 재료의 변화를 드러내는 작업으로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주목받아 왔다.
입구를 뒤로하고 1층으로 들어서면 기능이 뒤집히는 작품들이 이어진다. 바닥의 육각 타일 위에는 포슬린으로 만든 변기 형태의 조각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여러 가지 과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일상에서 목적이 너무나 분명했던 사물이 역할을 잃는 순간, 형태만 남은 기묘한 조형으로 보인다.
전시가 이어지는 동안 과일이 색을 잃고 수분이 빠져나가며 천천히 변해 가는 그 과정은 자연스럽게 작품의 일부가 된다. 피셔가 오래도록 탐구해 온 ‘재료가 시간을 품는 방식’이 이 조각에서 또렷하게 드러난다.
Salon 94의 1, 2층을 가득 채운 우르스 피셔의 전시 <Shucks & Aww>는 사물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고, 그 변화 속에서 의미가 어떻게 다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Salon 94 제공 자료에 따르면, 피셔의 2025년 신작 디자인 오브제(의자 시리즈, 램프 등)를 전시하는 위의 이층 공간은 페인트로 얼룩진 작업의 흔적이 남아 있는 스튜디오 같은 환경을 바닥에 설치했다. 피셔 작품의 과정성과 뒤틀린 일상성을 잘 나타낸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