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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예쁜 여자 Apr 12. 2024

서울 속 작은 프랑스 몽마르뜨공원

르누아르의 부지발의 무도회를 만나다



서울 서래마을 입구 몽마르뜨공원에는 노란 개나리가 가득하다. 프랑스의 문화 예술이 담긴 작은 프랑스이다.


질투의 상징인 노란색은 어릴 때 가장 좋아하던 색이다. 친구들은 내가 샘이 너무 많아 양쪽 볼의 보조개가 패인거라고 놀리곤 했다. 르누아르의 부인 알린느의 짙은 개나리 향기도 몽마르뜨공원에서 잔뜩 스며 나온다.



몽마르뜨 공원,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 대로 37길 59


몽마르뜨 공원


몽마르뜨공원은 그냥 지나쳐갈 수도 있는 작은 공원이지만, 프랑스 예술인들이 남긴 시와 조형 예술작품들을 보며 그들의 자취를 찾아가노라면 오래도록 머물고 싶어지는 곳이다. 공원의 명칭만큼이나 프랑스의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작은 프랑스이다.



몽마르뜨 공원 입구


몽마르뜨공원은 서리풀공원 산책로가 이어지는 곳에 위치한다. 고속터미널역에서 방배역까지 서초구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숲에 서리풀공원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서울 도심에 이런 푸른 숲이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몽마르뜨 공원


나무를 1~3분 정도 안고 있으면 나무와 사람이 접촉을 통해 심리적 안정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트리허그(Tree Hug)란 용어가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서리풀공원 산책로는 북쪽으로는 한강을, 남쪽으로는 우면산을 조망할 수 있다. 산책로는 4.1km 중 2.3km가 계단·턱 등의 장애물이 없는 목재 데크로 조성된 무장애 숲길이다.



서리풀공원 산책로 무장애 숲길


누에다리와 서리풀다리가 도로로 단절된 서리풀 산책로를 연결하고 있다. 서리풀공원 산책로에서 몽마르뜨공원을 가려면 서리풀다리를 건너 가게 된다.


서리풀 산책로를 연결하는 서리풀다리


서리풀 산책로를 연결하는 서리풀다리


지하철을 이용하려면 3,7호선 고속터미널역 5번 출구로 나와 국립장애인 도서관 방향으로 걸어가면, 누에다리라는 푯말이 보인다. 숲길을 조금 들어가면 누에처럼 생긴 독특한 모양의 누에다리가 멀리서도 눈에 뜨인다. 누에다리에서 보이는 탁 트인 서울의 전경은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한다.



서리풀 산책로를 연결하는 누에다리


몽마르뜨공원에는 주차공간이 없으므로 차는 근처 국립중앙도서관 주차장에 세우거나, 공영주차장에 주차해야 한다.

2호선 서초역에서 6번 출구로 나와 걸어도 다다른다. 바로 아래로는 국립중앙도서관이 내려다보인다.





프랑스의 몽마르트 (Montmartre)의 몽 (Mont)은 ‘작은 언덕’, 마르뜨 (martre)는 ‘순교자‘를 뜻해 ’순교자의 언덕’으로 풀이된다.



몽마르뜨 공원 입구


몽마르뜨공원은 프랑스의 유명 의류 브랜드 까샤렐 (CACHAREL)의 장 부스케(Jean Bousquet) 회장이 사회 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제안했다. 까샤렐의 자연보호 기금으로 공원을 만들었고, 공원명은 파리의 명소를 따와 몽마르뜨공원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인근 서래 마을에 전체 프랑스인 중 약 40% 정도가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몽마르뜨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양쪽 보도에는 프랑스식 레스토랑이나 와인바가 많다.



몽마르뜨 공원 입구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벨 에포크 시대의 피카소, 모딜리아니, 툴루즈 로트레크, 베를리오즈 등 많은 예술가들이 몽마르트르를 근거지로 활동했다. 몽마르트르의 바가 즐비한 광장의 환락가는 예술가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는 장소였고, 샹송(chanson)과 카바레도 시작되었다.


몽마르뜨 공원


몽마르뜨공원 한가운데에는 오귀스트 르누아르(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1841~1919)가 캔버스에 그린 두 명의 남녀가 춤추는 모습의 그림인 부지발의 무도회를 조각으로 형상화한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캔버스에 그린 두 명의 남녀가 춤추는 모습의 그림인 부지발의 무도회를 조각으로 형상화한 조각상



프랑스 인상파 그룹 화가인 르누아르는 파리에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직공이었지만, 국립 미술학교에 입학해 화가의 꿈을 키웠다. 학교에서는 인상파 화가 모네를 만나 인상주의 영향을 받는다. 각별한 친구였던 르누아르와 모네는 같은 대상을 보며 그림을 함께 그리곤 했다. 인물 화가였던 르누아르는 가난했지만, 낙관적이었다. 인생의 아름다움을 즐긴 화가로 꽃과 어린이, 여성 등이 소재였으며, 춤 또한 그가 즐겨 그린 삶의 가장 즐거운 순간이다.


나에게 그림은
사랑스럽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


부지발의 무도회 (Dance at Bougival)(1882~1883)  오귀스트 르누아르   (캔버스에 유채) (98 x 182 cm) (소장처 보스턴미술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부지발의 무도회(Dance at Bougival, 1882~1883)는 아름다운 색의 대비를 추구하던 인상주의의 대표 작품으로 춤추는 남녀의 백색과 짙은 청색의 대비가 여성의 빨간 두건을 중심으로 확연하게 구분된다.

엄격한 규율과 신사적 매너가 중시되었던 상류사회의 사교춤인 볼룸댄스는 19세기에 들어와 영국에서 왈츠로 채택되며 폴카, 마주르카 같은 새로운 춤의 양식이 나타났다. 19세기의 사회적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Bougival(부지발) 은 19세기 중엽에 예술가들이 모여 지냈던 프랑스 파리 서쪽 근교의 작은 마을로, 인상주의 화가인 모네 등이 농촌의 아름다운 풍경을 자주 담은 곳이다. 부지발에 가면 지금도 시내 곳곳에 ‘부지발의 무도회’가 장식되어 있다고 한다.



부지발의 무도회 조각과 그림



<부지발의 무도회> 그림의 여인은 몽마르트 화가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이자 뮤즈였던 하층민 출신인 마리 클레망틴 발라동이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르누아르와 연인이었다고 한다. 남성은 르누아르의 절친인 저널리스트이자 탐험가인 폴 로트이다. 여성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남성의 눈길을 여성은 외면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뮤즈이던 발라동은 그들의 도움으로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이라는 이름으로 화가가 된다. 로트레크, 에릭 사티의 청혼도 거절하고 젊은 은행가와 결혼하지만, 아들 친구와의 불륜으로 파경에 이르며, 72살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친다.


르누아르의 무도회 시리즈는 부지발의 무도회 외에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시골의 무도회(Danse à la campagne), 도시의 무도회(Danse à la ville)가 있다.



좌: 시골의 무도회,  우: 도시의 무도회



르누아르의 부인이 되는 알린느(알린 샤리고, Aline Charigot)는 그림의 모델이자 연인인 발라동을 질투하여 그녀를 내쫓고 시골의 무도회의 모델이 된다. 몽마르뜨 공원의 노란 개나리가 질투하는 알린느를 떠올리게 한다.


두 작품 속 커플들은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있으나, <도시의 무도회>의 17살의 수잔 발라동의 세련된 우아함은 <시골의 무도회>의 알린 샤리고의 풍만한 몸과 대조된다. 남성은 동일해, 당시 여름휴가를 시골로 떠나곤 했던 부유한 남성들의 일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좌: 부지발의 무도회(춤).                     우: 도시의 무도회(춤)



<부지발의 무도회>와 <도시의 무도회> 는 남녀의 춤추는 방향만 다를 뿐 같은 자세이나, 매너는 대조적이다. <부지발의 무도회> 댄스에서는 남성은 여자의 허리를 바짝 끌어당기며 손을 꽉 잡고 있다. <도시의 무도회> 댄스에서는 여자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며 손끝을 살짝 붙든 신사의 매너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몽마르뜨 공원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자신의 아이들도 자주 화폭에 담았는데, 르누아르의 둘째 아들 장 르누아르 역시 아카데미상도 수상한 프랑스의 영화감독이다. 장의 영화에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인생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몽마르뜨 공원 가는 길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던 르누아르는 말년에는 건강 악화로 따뜻한 프랑스 남부 카뉴에 살면서도 꽃, 어린이, 여성 누드 등을 항상 즐겁게 그렸다.


그림 그리는 게 즐겁지 않다면
그릴 이유가 없고,
나는 나의 그림으로 치유를 받는다.



손가락 관절이 마비된 후에는 붓을 손에 묶어 그림을 그릴 정도로 마지막까지도 작업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1900년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으며, 1919년에 세상을 떠났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두 가지 속성은
설명할 수 없어야 한다는 것과
모방할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작품이라면
그 자체로 보는 사람을 압도해야 하며,
어디론가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예술가 자신의 열정 속으로
사람을 휩쓸리게 하는 흐름이다


몽마르뜨 공원 시계탑


르누아르의 부지발의 무도회 조각상 옆엔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파블로 피카소 등 프랑스 몽마르트르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예술가들의 흉상 조형물이 새겨진 포토존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파블로 피카소 등 프랑스 몽마르트르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예술가들의 흉상 조형물이 새겨진 포토존



몽마르뜨공원은 5월이 되면 장미화단에 장미가 가득하다. 자연 그대로의 흙길에서 산림욕 하기도 좋은 몽마르뜨공원은 평일에는 한산해 공원 여기저기 놓인 시의 팻말을 보며 시를 읊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사색에도 잠겨본다.



몇 년 전 몽마르뜨 공원의 5월말 장미화단


자연은 하나의 신전,
거기에 살아 있는 기둥들은
때때로 어렴풋한 얘기들을 들려주고
인간이 상징의 숲을 통해 그곳을 지나가면
그 숲은 다정한 시선으로 그를 지켜본다.
밤처럼, 그리고 빛처럼 광막한
어둡고 그윽한 조화 속에서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화합한다

-샤를 보들레르 <교감>



샤룰 보들레르 <교감>



몽마르뜨공원은 원래 토끼가 많기로 유명한 공원이나 지금은 암만 찾아봐도 없다. 동물보호단체들이 토끼들을 포획해 인근 동물병원으로 보내 중성화 수술을 했다고 한다.



몇 년 전 몽마르뜨 공원의 토끼들



매년 6월에는 반포서래 한·불 음악 축제, 11월에는 문화 교류의 장인 서래당제, 12월에는 크리스마스 프랑스 전통장터 등이 열리기도 하는데, 놀이터 시설도 있어서 가족와 함께 피크닉을 즐기기에도 좋다.


잠시 시간을 내어 자연의 향기와 빛깔, 소리가 화합하는 몽마르뜨공원에서 멋진 시 한 편 마음에 남겨보면 어떨까.






아래는 블로그에 올린 몽마르뜨공원의 15초 영상 클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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