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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예쁜 여자 Nov 22. 2024

시실리는 벼랑 끝에 매달려 있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여행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이탈리아어: Sicilia, 영어: Sicily 시실리)는 이탈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자치주이다. 제주도보다 약 14배나 큰 섬으로, 이탈리아 본토 ‘부츠’ 모양에서 ‘발끝’ 바로 옆에 위치한다.


시칠리아를 비롯한 20 개 도시의 이탈리아 여행을 몇 년 전, 한 달 여정으로 계획해 다녀왔다. 이탈리아 본토와의 사이에 메시나 해협으로 분리되어 있는 시칠리아는 세 개의 공항이 있는데, 모두 이탈리아나 유럽의 주요 도시와 연결된다.





한국에서 가는 직항 편은 없다. 나의 경우, 이집트 여행을 마치고,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비행기를 환승하고 시칠리아의 대표공항인 주도 팔레르모의 팔코네 보르셀리노(Falcone-Borsellino)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팔레르모 공항에서 아그리젠토부터 시작해 라구사, 시라쿠사, 칼타지로네, 사보카, 타오르미나를 돌아 팔레르모로 다시 돌아오는 7박 8일의 시칠리아 여정은 그리 넉넉한 일정은 아니었다.





고대 유럽 문명의 중심무대가 된 끝없는 지중해(mediterranean ocean)는 떠오르는 해의 빛이 반사되며 색다른 푸르름이 스며 나온다. 에트나 화산, 목가적 풍경과 어우러져 그려지는 푸르른 시칠리아는 잊히지 않는 곳으로 주요 도시를 몇 편으로 나눠 써보려고 한다.


렌터카를 타고 시칠리섬을 달리다가 아그리젠토(Agrigento) 농가에서 싱싱한 오렌지를 샀는데 한 박스에 단 돈 5유로(6천 원)였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연중 온난하고 비옥한 시칠리아의 농산물의 맛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오렌지와 나의 가죽꽃


시칠리아는 기원전부터 그리스, 로마, 비잔틴, 아랍, 노르만, 스페인이 차례로 지배해 건축, 예술, 언어, 음식 등에 다양한 문화적 영향이 나타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많은 고대 유적지들이 있다. 2002년에는 시칠리아섬 남동부 8개의 후기 바로크 도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리스인들이 지배한 식민지 시대인  기원전 8세기~3세기는 아그리젠토, 시라쿠사 같은 도시가 건설되며 그리스 문명이 번영하였다.



좌: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사진:백과) 우: 시라쿠사 오르티지아



시칠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학적 유적지이기도 한 아그리젠토에는 기원전 6세기와 5세기에 건설된 그리스 신들이 한데 모인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Valle dei Templi)‘이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그리스의 건축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가장 오래된 헤라클레스를 비롯, 콘코르디아, 헤라 신전이 있는데 이집트에서 신전은 이미 많이 봐서 멀리서만 보고 지나갔다.



항구 도시 시라쿠사(Syracuse) 신시가지



고대 그리스 유적이 잘 보관되어 있는 최남단의 항구 도시 시라쿠사(Syracuse)는 수학자이며 과학자인 아르키메데스(기원전 287년~기원전 212년)가 태어나고 활동한 곳이다. 시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는 천재적인 공학적 지식을 활용해 부력과 지레의 원리를 발견하며 군사 장비를 설계하고 제작했다.


아르키메데스의 혁신적인 발명품인 투석기, 배를 파괴하기 위한 집게 등은 로마군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로마의 군대가 시라쿠사를 함락시켰을 때, 아르키메데스도 연구하는 중에 사망했다.



수학자이자 자연철학자, 발명가인 아르키메데스가 자랑스러운 시라쿠사인임을 시가지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다. 오르티지아의 구시가지



좁은 해협을 두고 격리되어 있는 가장 남쪽 섬 오르티지아(Ortigia)에 있는 시라쿠사의 구시가지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로마시대 철학자 키케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 도시가 시라쿠사라고 했다. 시라쿠사는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가장 남쪽 섬 오르티지아(Ortigia) 에 있는 시라쿠사의 구시가지



기원전 3세기~AD 9세기에는 로마제국과 비잔틴 제국이 지배했다. 카살레의 빌라 로마나((Villa Romana del Casale)는 4세기 초반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시대 귀족의 저택으로, 피아차 아르메리나(Piazza Armerina)에서 5㎞ 떨어진 곳에 있다.


저택의 소유자는 알 수 없으나 전체 규모 4,200㎡, 50여 개의 방, 목욕탕, 연회실도 있는 엄청난 규모의 저택이라 관람시간도 꽤 소요되었다. 규모, 많은 양의 예술품, 장식물로 보아 상류층 소유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빌라는 로마 제국의 당시의 사회적, 경제적 생활상을 담고 있다.



카살레의 빌라 로마나((Villa Romana del Casale)



바닥과 벽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귀족의 저택들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게 건축된 것이라 하는데 내부의 모자이크 장식은 로마 제국 모자이크 중에 최고로 평가받는다.


대전차 경기, 각종 동물을 배에 싣는 모습, 다양한 동물 사냥 장면 등을 섬세하게 묘사한 ‘대사냥의 방’의 벽화가 뛰어나다. ‘비키니 소녀들’로 알려진 모자이크는 현대의 비키니와 유사한 복장을 한 여성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좌:대사냥의 방’에 있는 64m 길이의 모자이크, 우하:비키니의 소녀들



827년부터 1091년까지는 아랍의 지배가 이어졌다. 아랍과 터키의 해적들은 아그리젠토 부근 레알몬테(Realmonte) 지역의 산 레오네(San Leone) 해변에도 출몰해 계단 모양의 절벽을 타고 계속 올라왔다고 한다. ‘터키인의 계단'(Scala dei Turchi)이라고 불리는 순백의 해안 절벽으로, 화이트 월(White Wall)(흰 벽)이라고도 불린다. 아랍은 팔레르모를 수도로 삼아 경제가 번영하게 되고 이슬람 세계의 문화적, 경제적 중심지가 되었다.



 ‘터키인의 계단'(Scala dei Turchi



노르만족은 1091년에 아랍세력을 몰아내고, 통일된 시칠리아 왕국을 1130년에 설립했다. 이런 역사 속에서 그리스, 로마, 비잔틴, 아랍, 노르만의 영향을 받은 시칠리아의 다문화적 유산인 음식, 음악, 건축 스타일이 쉽게 이해된다.


시칠리아는 마지막으로 스페인의 통치(15세기~)가 이루어지다가 이탈리아 통일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1807~1882)가 붉은 셔츠를 군복으로 입던 의용군 ‘붉은 셔츠단’을 이끌고 시칠리아를 정복했다.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선포되면서 시칠리아도 통합되었고, 1946년에 자치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라구사


고대 시켈(Sicels)족에서 시작되어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라구사(Ragusa) 역시 그리스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중세 시대에 비잔틴 제국, 아랍 세력, 노르만족의 지배를 거쳤다.  1693년 시칠리아 동부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라구사는 거의 파괴되었다.


이후 도시가 고지대의 라구사 수페리오레(Ragusa Superiore)와 저지대의 라구사 이블라(Ragusa Ibla) 두 부분으로 재건되었다. 이블라구릉은 지질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구역의 평균고도는 약 120m 차이가 난다.





이르미니오강 협곡 위로 솟은 평균고도 400미터의 이블라(Ibla)구릉 절벽에 매달려 있는 라구사는 타임머신을 타고 거꾸로 중세도시로 거슬러 간 듯했다. 1970년대에 부근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도시가 발전했는데, 200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시칠리아섬 남동부 8개의 후기 바로크 도시 중 하나이다.





유럽의 중근세 도시는 건물들의 색깔만 다를 뿐 도시구조나 배열은 거의 다 비슷하다. 다만 시칠리아에는 제비집처럼 산 위나 절벽에 걸려있는 소도시들이 많이 있다. 라구사에서 묵었던 작은 호텔도 계곡의 절벽 앞면에 붙여 지어진 독특한 구조의 건축물이다. 호텔을 바라보며 정면에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계곡의 반대편으로 건너가 찍어도 절벽 위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의 어디쯤 위치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호텔에서 내다보이는 아슬아슬한 전망도 잊히지 않는다.



좌: San Giorgio Palace Hote산  조지오 팰리스호텔



라구사 이블라는 기존의 도시를 기반으로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지만, 도시 전체가 언덕과 계곡으로 이루어져 해안에서 곡예하듯 꼬불꼬불 길을 따라 올라가면 칼날같이 좁은 길 위에 마을이나 도시가 나온다. 호텔의 뒷문으로 나오면 바로 올드타운(Duomo Plaza)이 있다.





중심에 위치한 산 조르조 대성당(Duomo di San Giorgio)은 바로크 건축의 대표작으로, 건축가 로사리오 가글리아르디(Rosario Gagliardi)의 작품이다.





1693년, 시칠리아 대지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또 하나의 도시가 있다. 시칠리아 도자기(ceramic) 예술의 중심지로,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어 현재의 아름다운 건축으로 형성된 칼타지로네(Caltagirone)(칼타기론)이다. 도시 이름은 아랍어 칼라트 알 게론(Kalat al Ghiran)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도자기의 성’을 뜻한다. 200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칼타지로네 역시 고대 시칠리아 원주민들의 거주지였으며, 이후 그리스인, 로마인, 아랍인, 노르만족의 영향을 받았다. 칼타지로네의  산타 마리아 델 몬테 계단(Scalinata di Santa Maria del Monte) (Staircase of Santa Maria del Monte)은 142개의 계단이 모두 수작업으로 제작된 도자기 타일 (ceramic tiles)로 장식되어 있는 아름다운 계단이다.





1606년부터 10년에 걸쳐 지어진 계단은 도시확장에 따라 꼭대기에 위치한 상부 올드타운과 하부 도시를 연결하기 위해 130미터(430피트)가 넘는 계단을 만들었다.


아랍, 노르만, 스페인, 바로크 스타일 등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반영해 꽃, 역사적 장면, 기하학적 패턴 등 독특한 디자인의 타일을 보여준다. 특히 ‘Luminaria’ 축제 기간에는 계단이 수천 개의 촛불로 장식된다. 봄의 꽃 축제(Infiorata) 기간에는 꽃으로 장식된다.





계단은 칼타지로네의 중심인 산타 마리아 델 몬테 성당(Santa Maria del Monte Church)으로 이어진다. 계단 꼭대기에서 도시와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으며, 계단 주변에 도자기 상점과 공방이 많다. 칼타지로네의 정교한 세라믹 타일, 장식용 접시, 꽃병 등 다양한 수공예 도자기의 화려한 색상과 전통적인 시칠리아 문양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다음에는 영화 <대부>의 촬영지인 시칠리아의 팔레르모와 사보카(Savoca) , 영화 그랑블루 촬영지 타오르미나로 이어진다.



영화 대부 촬영지 시칠리아의 사보카(Sav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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