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dered Lonely as a Cloud> 시를 떠올리며
수선화는 영국에서 3월 무렵부터 전국 곳곳에서 피어나는 대표적인 봄꽃이다. 긴 겨울의 끝, 영국의 봄은 화려하진 않지만, 따뜻하고 소박한 노란빛 속에서 조용한 희망이 시작된다.
영국 문학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 중 하나인 윌리엄 워즈워드의 <고독한 구름처럼 나는 떠돌았네>( I Wandered Lonely as a Cloud)는 수천 송이의 수선화에서 영감을 받아 쓰였다.
지난 4월 초, 워즈워드가 이 시를 쓴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를 찾았다. 그의 옛집 그라스미어(Grasmere)의 도브 코티지(Dove Cottage) 돌담 아래 잠시 앉아 있으니, 들판은 이미 노란 꽃으로 물들어 있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수선화 무리들이 내 마음도 환하게 밝혀 주었다.
I wandered lonely as a cloud
That floats on high o’er vales and hills,
When all at once I saw a crowd,
A host, of golden daffodils;
Beside the lake, beneath the trees,
Fluttering and dancing in the breeze.
나는 외로운 구름처럼 떠돌았네
골짜기와 언덕 너머를 지나던 어느 날,
호숫가 나무 아래
산들바람 속에 춤추는
황금빛 수선화 무리를 만났네
이 시는 흔히 <수선화>(The Daffodils)로도 알려져 있다. 워즈워드는 수만 송이의 수선화로 감동의 크기를 표현하며, 고독이 위로로 바뀌는 순간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1770–1850)는 북서부 코커머스(Cockermouth)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외로움 속에서 성장했다. 자연은 그의 위로였고, 시의 중심이 되었다.
Nature never did betray the heart that loved her. 자연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절대 저버리지 않는다.
- <틴턴 사원 위에서 쓴 시>(1798)
케임브리지에 진학했지만 방황하던 그는 프랑스혁명에 감화되며 자유와 평등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프랑스 여성 안네트 발롱( (Annette Vallon)과 사랑에 빠져 딸을 낳았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헤어졌고, 이 경험은 그의 시에 깊이를 더했다.
1798년, 동료 콜리지(S.T. Coleridge)와 함께 펴낸 <서정 민요집>(Lyrical Ballads)은 영국 낭만주의의 시작을 알렸다.
1802년 봄, 워즈워드는 여동생 도로시와 함께 레이크 디스트릭트 울스워터(Ullswater) 호숫가를 걷다 수천 송이 수선화를 마주쳤다. 그날의 경험이 시로 되살아났다.
Continuous as the stars that shine
And twinkle on the milky way,
They stretched in never-ending line
Along the margin of a bay:
Ten thousand saw I at a glance,
Tossing their heads in sprightly dance.
은하수 위에서 반짝이는 별들처럼
만(灣)의 가장자리를 따라 끝없이 늘어서 있네.
만 송이도 되어 보이는 수선화들이
머리를 흔들며 즐겁게 춤추네.
수선화는 16세기경 유럽 대륙에서 영국으로 전해졌고, 기후와 토양에 잘 적응해 정원, 호숫가, 길가 등지에서 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워즈워드 곁에는 늘 여동생 도로시 워즈워드(Dorothy Wordsworth)(1771~1855) 가 있었다. 섬세한 자연 묘사를 즐긴 그녀의 일기는 워즈워드의 시 세계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실제로 이 시의 배경인 글렌코인 베이(Glencoyne Bay)도 도로시의 일기에 남아 있다.
She gave me eyes, she gave me ears;
도로시는 내 눈과 귀를 열어주었다.
…
도로시는 내 시의 절반이다.
- <참새의 둥지> (1807)
The waves beside them danced; but they
Out-did the sparkling waves in glee:
A poet could not but be gay,
In such a jocund company:
I gazed—and gazed—but little thought
What wealth the show to me had brought:
물결도 그들 곁에서 춤췄지만,
수선화는 파도보다 더 환하게 기뻐했죠.
시인은 기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토록 즐거운 친구들과 함께였으니.
나는 바라보고 또 바라봤지만,
그 장면이 내게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는 몰랐죠.
수선화는 단지 꽃이 아니었다. 고요한 순간마다 마음을 밝혀주는 자연의 선물이었다.
For oft, when on my couch I lie
In vacant or in pensive mood,
They flash upon that inward eye
Which is the bliss of solitude;
And then my heart with pleasure fills,
And dances with the daffodils.
자주, 내가 소파에 누워
멍하니 혹은 사색에 잠길 때면
그 수선화들이 내 마음속 눈에 떠오르죠.
고요함 속에서 되살아나는 기쁨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고,
수선화들과 함께 춤을 추죠.
수선화의 학명은 나르키소스(Narcissus)다. 자기 모습에 반해 물에 빠진 그리스 신화의 청년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고개를 숙인 수선화는 나르키소스를 닮았지만, 워즈워드에게 수선화는 정반대의 존재였다. 고요한 희망과 위로의 상징이었다.
워즈워드는 1802년 오랜 친구 메리 허친슨(Mary Hutchinson)(1770~1859) 과 결혼했다. 메리는 슬픔과 상실 속에서도 조용한 지지자였고, 도로시와도 한 가족처럼 지냈다. 세 사람은 그라스미어를 거쳐 라이달 마운트에서 여생을 함께했다.
She was a Phantom of delight,
A perfect Woman, nobly planned,
To warn, to comfort, and command.
그녀는 눈부신 존재였네,
깨우쳐 주고 위로하며 이끄는
완전하고 고귀한 여인이었네.
- <She Was a Phantom of Delight>(1804), 아내를 위한 시
1843년, 워즈워드는 영국 계관 시인(Poet Laureate)으로 임명되었고, 1850년 80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해 그의 장시 <서곡>(The Prelude)이 사후에 출간되며, 시인의 여정은 완성되었다.
메리는 워즈워드 사후에도 도로시 곁을 지켰고, 도로시가 기억을 잃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 뒤,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고개 숙인 수선화처럼, 워즈워드와 메리, 도로시는 조용한 사랑으로 서로를 지탱했다. 말없이 피어난 봄날의 수선화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고요한 기쁨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마침내 새로운 봄이 찾아왔다. 생각은 달라도,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마음은 하나다. 바람에 흔들리는 황금빛 수선화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피어난 희망이 마침내 하나 되어, 함께 춤추는 들판을 그려본다.
아름다운 Lake District 풍경을 엮은 약 10초 정도의 쇼츠 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