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 마윈의 시련과 성공 - 2
알리바바는 손정의로부터 투자를 받고, 닷컴버블에 대응하기 위해 항저우(杭州)를 다시 본부로 삼아 야심찬 재출발을 준비했지만, 이때 사스라는 변수가 생겼습니다.(바로가기)
사스가 발병한 당시에는, 협업툴도 존재하지 않았고, 원격근무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알리바바 팀원들에게 자가격리 하라는 통보가 내려져, 어쩔 수 없이 올스탑 되어야할 위기에 처해졌습니다. 이때 알리바바는 불가능해 보였던 전사 비대면 근무를 과감하게 도입했습니다.
마윈은 직접 사무실 컴퓨터를 팀원들의 집까지 보내줬으며, 집까지 컴퓨터를 배달받은 팀원들은, 회사의 모든 고객 응대 전화를 집에서 받아야 했습니다. 당시 고객들의 말에 따르면, 알리바바에 문의 전화를 넣으면 옆에서 가족들이 식사하는 소리, 바둑 두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스로 인해 매출이 떨어지던 다른 회사와 달리, 비대면 근무한 알리바바는 오히려 매출이 급증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코로나가 창궐한 2020년을 보면,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차에 마윈은 기존의 B2B에서 탈피해 C2C 이커머스 런칭을 준비했으며, 결국 타오바오가 2003년5월 야심차게 출시됐습니다.
당시 중국의 이커머스 시장은 사실상 이베이가 독점했습니다. 타오바오가 출시되자 이베이는 중국국영방송 등과 거액의 독점 광고를 맺었으며, 바이두(baidu)와 같은 대형 IT 플랫폼과도 독점 계약을 맺어 이베이 광고만 노출되게 했습니다. 2004년의 중국 이커머스 점유율은 이베이 90%와 타오바오 10%였습니다.
이베이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타오바오는 정편 돌파를 피했으며, 3가지 공략법을 내세웠습니다.
알리페이 출시
판매자 수수료 무료 이벤트
소형 인터넷 사이트에 대규모 광고 노출
1. 알리페이 출시
2004년 당시, 중국에선 아직 온라인 결제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고, O2O(online to offline) 거래가 관행이었습니다.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하면, 상품을 받고 현금으로 결제하는 것이죠. 마윈은 소비자들이 알리바바를 믿고 결제할 수 있도록, 온라인 결제 서비스인 알리페이를 출시했습니다.
아무리 알리페이가 자국 기업이 출시한 서비스라도, 온라인 결제가 생소한 소비자들이 100% 신뢰하고 결제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습니다. 마윈은 결국 2005년, 초강대수인 "전액 보상 정책"을 내걸었습니다. 소비자가 알리페이를 사용하는 도중, 어떤 방식으로 손해를 보든, 알리바바에서 전부 책임지고 보상해주겠다는 정책이었습니다. 사용해도 손해볼 것이 전혀 없는 서비스가 된 알리페이는 금새 대중들을 사로잡았고, 알리바바가 초고속 성장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2. 판매자 수수료 무료 이벤트
카카오를 떠올려 보죠. 카카오는 초반에 무료 메신저로 전국민을 사로잡았습니다. 당시 일부 사용자는 카카오가 도데체 뭐로 돈을 버나 대신 걱정할 정도죠.
이처럼,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고, 모인 사람들로 규모의 경제를 이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것은, 스타트업 업계에서 교과서와도 같은 내용입니다. 마윈은 이 사실을 일찍 간파했고, 더 많은 판매자를 끌어들이면,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봤습니다.
당시 점유율 90%를 차지하던 이베이는, 판매자로부터 고액의 수수료를 받았습니다. 알리바바는 바로 이 점을 이용해, 판매자에게 3년동안 수수료 0원을 약속했습니다.
3. 소형 인터넷 사이트에 대규모 광고 노출
이베이는 압도적인 자본금을 바탕으로, 중국국영방송, 바이두(baidu)등 메이저 플랫폼과 독점 광고를 채결했습니다. 당시 신생 기업이었던 알리바바는, 이베이와 돈싸움을 벌일 수도, 메이저 플랫폼에 광고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알리바바는 메이저 플랫폼을 포기하는 대신, 차선책을 선택했습니다. 당시에는 메이저 인터넷 플랫폼 외에도, 다수의 소형 인터넷 사이트가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중국은 국영방송을 제외하고, 지방 방송 채널도 무수히 많았죠. 이들은 각각 많지 않은 사용자,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광고비가 비싸지 않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알리바바는 이러한 소형 인터넷 사이트와, 지방 방송 채널에 대규모로 광고를 노출시켰으며, 결과적으로 거액을 들여 독점 계약을 채결한 이베이가 헛발질 하는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결국 2004년 말 타오바오의 점유율은 41%까지 올라갔고, 2005년에는 점유율을 67.3%까지 획득하며, 중국의 이커머스 1위 플랫폼에 도달했습니다. (훗날 이베이는 2022년에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마윈은 판매자에게 수수료 0원을 약속했기에, 수익을 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가 이때 고안한 모델은 광고였습니다. 2006년에 타오바오는 판매자에게 광고 기능을 런칭했습니다. 인터넷 검색 포털에서 상위에 노출되고 싶은 판매자라면, 알리바바에 광고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는 타오바오 수익화에 큰 도움을 줬으며, 오늘날의 쿠팡 파트너스와도 같습니다.
그 후, 알리바바는 블랙프라이데이와도 같은 "11.11 쇼핑데이"를 2009년에 기획했으며, B2C 이커머스인 징둥을 견제하기 위해 T-mall을 2012년에 출시하는 등, 여러 성장엔진을 기획하고 런칭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쌓여 결국 지금의 이커머스 왕국에 필요한 인프라와 브랜드 문화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4년, 알리바바는 뉴욕증시에 상장되며 전 세계에 알리바바라는 이름을 알리게 됐습니다.
마윈은 당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0억 달러를 갖고 있다면 그건 남들이 그에게 맡긴 신뢰이지, 그의 돈이 아닙니다. 제가 가진 돈은 사람들이 저에게 맡긴 신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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