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이 제1화

동화

by 인산

아이의 일곱 살은 유난한 해였다. 엄마를 처음 본 것도, 똥이를 만난 것도 그해 여름이다. 아이는 할머니가 엄마인 줄 알았다. 엄마라고 불러본 기억이 없으니 그냥 할머니가 엄마인 셈이다. 검게 그을리고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할머니의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뱀 나온다. 똑바로 보고 다녀.”


아이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할머니가 거의 유일하다. 투박한 할머니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식구들은 하루 종일 밭일이며 논일에 매달린다. 동도 트기 전 식구들은 어둠 속에서 연장 부딪히는 소리를 내거나 웅성거리며 집을 나선다. 새벽에 나가면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온다. 집을 나서기 전 할머니는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아이를 흔들며 굶지 말라고 당부한다.


“밥상 차려 놨다. 밥 굶지 마라. 한 끼 굶으면 평생 못 찾아 먹는다.”


텅 빈 시골집은 하루 종일 아이 차지다. 할머니 집은 동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기 때문에 대낮에도 사람 그림자조차 구경하기 힘들다. 아이의 친구라고는 하늘과 땅 그리고 곤충이나 벌레가 전부다. 더벅머리 아이는 뙤약볕에 앉아 풀밭을 뒤적이며 메뚜기나 왕치나 여치나 때때기를 잡는다. 잠자리나 매미도 잡고 싶지만 이놈들은 빠르다. 매미를 잡으러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진 적도 있다. 약이 올라 돌을 던져보지만 매미는 여전히 요란한 소리를 낸다. 화가 난 아이는 발로 힘껏 나무를 찬다. 나무가 와르르 흔들리자 매미 소리가 뚝 그친다. 곤충을 잡는다고 딱히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다리도 떼어내고 날개도 떼어내며 장난을 친다. 다리가 잘려 나간 곤충이 뒤뚱거리는 모습이 재미있다. 깔깔거리다 싱거워지면 손바닥만 한 돌로 눌러 놓거나 발로 밟아 버린다.


검게 그을린 아이 몸은 상처투성이다. 나무에서 떨어지고 가시에 찔리거나 넘어져 성한 곳이라곤 한 군데도 없다. 모기나 쐐기에 쏘이거나 개미에 물린 자국이 시커먼 살결에도 빼곡하게 드러난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팔이며 다리를 박박 긁어댄다. 시원해서 자꾸 긁다 보면 피가 송골송골 맺힌다. 검정 고무신을 신은 아이의 발에는 신발 선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아이는 걸을 때도 똑바로 걷지 않는다. 돌멩이를 차거나 익지도 않은 옥수수를 따서 멀리 던지거나 팔을 벌려 깨꽃을 훑기도 한다. 아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성한 것이라곤 없다.


움직이는 것이 싫증 나면 아이는 팔베개하고 누워 하늘을 쳐다본다. 흰 구름이 솜사탕처럼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하늘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조용하다. 세상이 조용하니 곤충이 살짝만 움직여도 소리가 난다. 찌르레기 소리, 때때기 날아가는 소리, 왕치 기어가는 소리도 들린다. 햇볕이 무섭게 내리쬐는 할머니 집에는 적막감이 감돈다. 세상에는 오직 아이만 있는 것 같다. 누워있는 것이 지루해지면 곤충을 잡고 곤충을 잡는 것이 시큰둥해지면 다시 눕는다. 배를 깔고 눕자 문득 개미들이 길게 늘어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눈에 띈다. 개미들은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아이가 손바닥을 세워 개미 앞을 가로막자 개미들이 방향을 바꾼다.


“야, 너희들 어디 가는 거야?”


한참을 들여다보던 아이는 손바닥으로 개미를 툭툭 친다. 놀란 개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재미있다. 고무신을 벗어 도망가는 개미를 마구 때린다. 조그만 개미들이 나동그라져 다리를 꼼지락거린다. 아이는 죽어가는 개미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자세히 살펴본다. 꼼지락거리던 개미는 잠깐 사이에 움직이지 않는다. 개미 몸통에서 머리와 다리를 떼어내어 호 불자 조각난 개미가 먼지처럼 날아간다. 개미 죽이기가 신통치 않으면 아이는 다시 팔베개하고 하얀 하늘을 쳐다본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누웠다가 일어섰다가 풀 속을 살피거나 곤충을 잡거나 하늘을 쳐다보고 몇 발짝 걸어보는 것이 전부다. 한참을 누워있으니 팔이 저리다. 하늘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리던 뭉게구름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어디로 갔지?”


질겅질겅 풀을 씹으며 아이는 생각한다. 쓴맛이 입안으로 퍼진다. 등을 긁으며 아이는 갑자기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긁어도 시원하지가 않다. 입안에 퍼진 쓴 맛과 가려운 등을 견디기 위해 팔짝팔짝 뛰어본다. 아이를 뒤따르던 그림자도 덩달아 춤을 춘다. 세상은 가만히 있는데 아이와 그림자만이 미친놈처럼 헐떡거린다. 두 팔을 펄럭이자 갑자기 잠자리들이 떼로 날아와 하늘을 수놓는다. 잠자리는 날갯짓을 하지 않는데도 유유히 하늘을 난다.


“야 이놈들아!”


아이는 팔을 힘껏 휘저으며 팔짝팔짝 뛴다. 잠자리들이 직선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아이는 권투선수처럼 팔을 뻗으며 잠자리를 뒤쫓는다. 잠깐 사이에 잠자리 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아쉬움이 맴도는 하늘은 텅 비어 버린다. 뜨겁고 지루한 사막이 되어 버린다. 아이는 숨을 몰아쉬며 텅 빈 곳을 노려본다.


“왜 아무도 없냐고?”


오래도록 아이는 움직일 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