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제75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2022)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경계에서 그 흐릿한 안개를 헤쳐 나가는 인물들의 내면을 정교하게 담아낸다. 결심이라는 자체가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상태이듯, 영화는 형사 해준이 추구하는 명쾌한 증거주의와 결코 명확히 규명될 수 없는 서래와의 모호한 관계 사이의 충돌이 그 골자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매함과 은밀함은 서로에게 마음을 온전히 줄 수 없는 인물들의 처지와 맞물려 깊은 애절함을 자아낸다.
명확성과 모호함 사이의 사랑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층위에서 명확성을 확보하려 시도한다. 첫째는 안개 낀 풍경이라는 불투명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둘째는 대상을 눈으로 정확히 바라보는 것이며 셋째는 사건을 물리적인 증거를 통해 규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 모든 명확한 시도를 무력화시킨다. 사랑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언제든 변하거나 깊어질 수 있는 유동적인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 지독한 사랑의 본질을 부각하기 위해 영화는 해준과 서래의 주위에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배치하여 대비를 강조한다.
하나는 해준과 아내 안정안의 관계다. 이들은 주말부부로서 기대감이나 호기심이 거세된, 지극히 일상적이고 관성적인 부부의 전형을 보여준다. 또 하나는 건달 홍산오의 사랑으로 연인 오가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맹목적이고 지독한 집착을 드러낸다. 서래와 남자들의 관계도 있다. 첫 남편 기도수는 서래의 몸에 자신의 이니셜을 새길 만큼 그녀를 소유물로 취급하는 폭력적인 권력욕을 보여준다. 반면 두 번째 남편 임호신은 기만적인 사기꾼의 면모를 지닌다. 이러한 곁가지의 에피소드들은 독립적인 사건으로 머물지 않고, 해준과 서래의 사랑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
주인공들의 사랑은 비록 내밀하고 은밀하게 진행되지만, 때로는 거센 파도처럼 감정의 격랑을 일으킨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해준과 서래는 처음에 형사와 피의자라는 불균형한 입장에서 만나지만, 타인을 소유하려 했던 기도수 등과는 달리 서로를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이들의 관계는 사회적 틀을 넘어선 깊은 정서적 유대를 향해 나아간다.
해준은 직업윤리에 결벽적일 만큼 투철한 인물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신발 끈을 질끈 동여매며 스스로를 다잡는다. 하지만 피의자인 서래를 향한 마음이 그의 단단한 직업정신을 파고들면서, 역설적으로 그 느슨해짐의 틈새로 사랑의 징후들이 드러난다. 두 사람의 내면적 사랑은 멀리서 관찰하는 듯 곁에 있는 듯한 독특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여기에 더하여 정훈희의 노래 <안개>가 영화 전반을 흐르며 자아내는 모호한 분위기는 안개 낀 풍경처럼 잘 보이지 않기에 더욱 은밀하고 애틋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사랑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통적인 윤리관의 잣대로 보면 이들의 관계는 불륜이라는 틀에 갇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는 이 묘한 인연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좇으며 세간의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도록 한다. 사회적 틀에서 살아가는 인간임에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심연에서 솟구치는 감정은 인간 본연의 통제할 수 없는 생명력임을 제시한다.
비대칭적 관계와 내면의 역전
해준과 서래, 두 사람의 관계 설정은 지극히 독특하고 비대칭적이다. 강력계 경찰과 살인 사건 용의자라는 관계는 힘의 일방성을 내포한다. 한쪽은 파헤치고 취조하며 공격하는 위치에 있고 다른 한쪽은 관찰당하며 방어하고 수세에 몰리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랑이 대등한 관계에서의 밀당을 전제로 한다면, 이들의 관계는 시작부터 한쪽이 다른 쪽을 몰아붙여야 하는 구조다. 그런데 영화는 이러한 외적 형식을 뒤틀어 내면의 뒤바뀐 역학을 정교하게 그려낸다.
해준은 유능한 베테랑 형사지만 업무상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시체와 피, 죽음의 잔상들로 인해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린다. 쾡한 눈을 적시기 위해 수시로 안약을 넣어야 하는 그의 삶은 주말부부인 아내와의 무미건조한 관계에서 서서히 메말라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주한 용의자 서래는 그에게 지루한 권태를 깨뜨리는 강렬한 호기심을 제공한다. 주변에서 접할 수 없었던 서래만의 독특한 말투, 미묘한 시선과 행동,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사건의 미스터리는 해준의 삶에 새로운 흥분과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불면증이 맞이한 기묘한 양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잠이 오지 않아 잠복근무를 자처하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감시 대상인 여자를 몰래 관찰하던 중 깊은 잠에 빠져든다. 서래가 곁에 있거나 그녀를 응시할 때 비로소 숙면할 수 있다는 설정은 이들의 관계가 단순한 수사관과 수사 대상을 넘어 호르몬과 엔도르핀이 생성되는 생리적이고 본능적인 이끌림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미묘하고 위험한 관계 속에서 해준은 역설적으로 삶의 활기를 되찾는다.
서래의 독특한 소통방식
서래라는 인물은 중국 교포로서 조부가 독립군이었다는 민족적 뿌리를 지니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엄연한 외국인이다. 그녀의 한국말은 어순이 어긋나고 어딘가 어색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해준에게 그 생경함이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강력한 매혹의 원동력이 된다. 특히 남편의 실종을 두고 그녀가 “마침내 죽을까 봐 걱정했다”라고 말하자, 해준은 “마침내”라는 단어를 곱씹는다. 이는 단순한 언어적 실수일 수도 있으나 남편의 죽음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그녀의 무의식적 진심이 발현된 순간이기도 하다. “마침내 죽고 말았다”는 그 단어 하나에 서래의 의지가 응축되어 있는 셈이다.
언어의 장벽을 넘기 위해 서래는 스마트폰 번역 앱에 의존한다. 어려운 단어는 사전을 찾고, 자신의 진심을 토로할 때는 모국어인 중국어로 말한 뒤 인공지능의 목소리를 빌려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역의 차이는 기묘한 유머와 시적 울림을 자아내는데, 가령 마음을 심장으로 번역하는 기계적인 직역이 오히려 두 사람의 육체적이고 근원적인 끌림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서래의 살인 행적 또한 평범치 않다. 간호조무사로서 약물과 주사에 능숙한 그녀는 과거 중국에서 할머니를 안락사시켰던 경험이 있으며, 그 행적은 한국에서의 사건들 속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이러한 독특성을 지닌 서래는 취조실에서 해준과 마주한다. 취조실이라는 공간은 밖에서 감시되고 녹화되는 통제의 장소이지만, 두 사람 사이의 내밀한 감정의 흐름까지 잡아내지는 못한다. 폐쇄된 공간에서 오가는 대화마저 수사를 넘어선 교감이 일어난다.
돌봄으로 완성되는 비육체적 사랑
서래가 해준에게 끌린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한편으론 절박하다. 그녀는 그를 가리켜 “점잖다”라고 말한다. 서래가 거쳐온 과거의 남자들, 폭력적이고 소유욕에 눈이 멀었거나 사기 행각을 벌였던 남자들을 떠올린다면, 해준의 점잖음은 그녀가 평생 마주해본 적 없는 인격적 존중과 품위의 상징이다. 진정으로 교감할 수 있는 남자를 처음으로 만났음을 직감한 서래는 이제 해준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거창한 맹세가 아니다. 다만 그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모든 것을 감내하려는 몸짓과 행동으로 표출된다.
해준과 서래의 관계는 어느덧 수사와 감시의 경계를 넘어 깊은 사랑의 단계로 진입한다. 그들이 사랑을 확인하고 나누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내밀하고 서사적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사적인 공간인 집을 방문하지만, 그곳에서 오가는 행위는 일반적인 연인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해준은 서래를 위해 정성껏 요리하여 대접하고 서래는 불면에 시달리는 해준을 곁에서 평온하게 재워준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돌봄의 형태다. 이는 부모가 자식을 보살피는 무조건적인 헌신과 닮았으며, 생존과 안식이라는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행위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이 서로의 결핍을 상쇄해주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관계에 상투적인 유혹의 언어나 노골적인 신체적 결합이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자고 가라는 식의 흔한 대사도, 자극적인 섹스신도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입맞춤조차 단 한 번뿐이다. 이처럼 외적이고 말초적인 자극을 걷어낸 자리에 남는 것은 철저히 내적이고 정신적인 교감이다. 서로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정성 어린 식사를 나누는 행위 자체가 그 어떤 육체적 관계보다 깊은 결합을 상징한다. 이를 바라보는 관객은 이들의 사랑을 더욱 숭고하고 애틋하게 느낄 것이다.
소멸과 상실로 완성되는 사랑의 미학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독창적인 비극의 미학을 재현한다. 서래가 선택한 최후는 자신을 소멸시킴으로써 사랑하는 남자를 보호하고 그의 기억 속에 영원히 박제되는 방식이다. 드넓은 바다 앞에서 펼쳐지는 이 죽음의 의식은 여자가 내린 헤어질 결심의 최종적인 완성이다. 서래의 죽음은 타인에 의한 폭력이 아니라 스스로 판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밀려오는 파도와 모래에 몸을 맡기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헤어지기 위해 자연과 협력하여 자신을 지워버리는 선택이다. 만조가 되어 바닷물이 밀려들고 해준은 뒤늦게 그녀를 찾아 해변을 헤매며 이름을 부르짖지만, 그 부르짖음은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다. 결국 서래는 해준에게 영원히 풀 수 없는 미제 사건으로 남고 그가 끝내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 바로 수갑이다. 수갑은 범죄를 제압하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 연결 장치다. 서로를 구속하는 동시에 감각적으로 이어주는 이 이중적 사물은, 이들의 사랑이 자유롭지도 완전히 단절되지도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음을 상징한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 손의 감촉으로만 연결된 관계는 끝내 확인될 수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감정의 형식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이러한 사랑의 역설은 쇼펜하우어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의지에 깊이 뿌리내린 맹목적 충동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는 사랑을 종(種)의 번식을 위한 기만으로 보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통제 불가능한 충동이 인간을 가장 비극적이고도 아름다운 선택으로 이끈다.
결국 영화는 사랑을 소유나 결합이 아닌, 상실과 부재 속에서 더욱 또렷해지는 감정으로 제시한다. 붙잡을 수 없기에 더 강하게 남고 사라짐으로써 오히려 지워지지 않는 이 역설에서 사랑이 완성된다.
두 사람의 심리를 표현한 위 포스터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남자는 경찰관으로 여자는 피의자로 수갑을 차고 있다. 수갑은 범죄에서 쓰는 물건이지만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있는 그들에겐 단단한 연결고리다. 서로 얼굴을 돌린 채 남자는 눈을 감고 있고 여자는 눈을 뜨고 있지만, 그들은 수갑이 채워진 손의 감촉을 느끼면서 내면의 교류를 한다. 이들의 현 상황은 그들의 사랑 방식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