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왜 눈물이

영화 리뷰

by 인산





2002년에 개봉된 <집으로...>는 이정향 감독의 영화다. 국내 관객 약 450만 명 이상 동원하여 당시 기준으로 제법 흥행에 성공했다. 이정향 감독은 이 작품으로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부문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집으로...>는 소박한 이야기로도 깊은 감동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비전문 배우, 실제 공간 촬영, 사건 없는 서사 등 한국 영화에서 드물게 일상의 리얼리즘으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리얼리즘의 시선, 일상의 시간을 견디게 하는 영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영화는 상상하기 힘들다. 갈등도, 사건도, 감정의 폭발도 없는 이야기 소위 극적이지 않는 영화가 가능할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장르의 영화 앞에서 더 오래 멈춰 서게 되는 순간이 있다. 영화 <집으로...>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별 다른 사건도 없는데 감정이 올라오고 마음이 움직인다.


이 영화의 화면은 화가 박수근의 화폭을 떠올리게 한다. 거칠고 투박한 질감, 색을 덜어낸 듯한 소박한 톤 그리고 과장되지 않은 구도는 인물을 미화하지도 공간을 장식하지도 않는다. 화면 속 인물과 배경은 연출된 장면이라기보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영화는 마치 카메라가 무언가를 잡아내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조용히 발견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시선은 이란의 영화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의 영화와 유사하다. 가령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에서 키아로스타미가 그런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사건을 조직하거나 감정을 고조시키는 대신, 시간의 흐름 자체를 화면 위에 그대로 펼쳐 놓는다. 인물의 행동은 극적 목적을 향해 나아가기보다 일상의 리듬 속에서 반복되고 머뭇거린다. 때로는 별 의미가 없기도 하다. 길을 걷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장면들은 서사를 전개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 그 자체로 그저 시간의 흐름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이야기만 놓고 보면 지나치게 단순하다. 갈등도 미약하고 전환도 크지 않으며 감정의 고조 역시 의도적으로 억제되어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사건 없음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극적인 장면을 통해 감정을 동요시키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지루하고 반복적인 시간을 함께 견디도록 한다. 인내를 가지고 이러한 지루함을 견뎌낸 관객은 익숙했던 일상을 성찰하는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이렇듯 <집으로...>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온 일상, 반복된다는 이유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부여한다. 무엇을 새롭게 보여주기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을 다시 보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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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이 아닌 삶, 일상이 만들어내는 진실성


영화의 리얼리즘은 몇 가지 구체적인 방식으로 구현된다. 그 출발점은 공간이다. 배경이 되는 충북 영동의 산골 마을은 촬영을 위한 세트장이 아니라 인물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생활공간이다. 그렇기에 화면에 담기는 풍경은 연출된 장면이기보다 이미 그곳에 존재해 온 삶의 모습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 역시 임의로 캐스팅한 전문 배우들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주민이다. 주인공 할머니 역의 김을분 역시 지역 주민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연기자들이 어떤 사건을 재현해 내는 대신 삶의 흔적을 그대로 담아내려는 의도를 분명히 한다. 지역 주민 배우의 말투, 몸짓, 움직임 하나하나가 오랜 시간 축적된 생활의 결과라는 점에서 화면은 연출 이전의 현실에 가깝다.


이러한 리얼리즘은 일상의 행위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영화는 먹고, 자고, 싸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행위로써 지극히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것으로, 어떤 극적 서사로도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일반 영화에서 이러한 행위는 극적 요소를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생략되거나 축약되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이 과정을 온전히 드러낸다. 사실 매일 반복되는 밥 먹는 시간, 잠드는 순간, 몸을 돌보는 일상은 극적 이야기의 전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집으로...>는 이러한 일상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영화의 리얼리즘을 더욱 강화한다.


무엇보다 영화에는 뚜렷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요강을 깨는 장면이나 소에 쫓기는 장면조차 일상을 뒤흔드는 극적 사건이라기보다 현실에서 발생하는 해프닝에 가깝다. 갈등은 크지 않고 전환은 미미하며 감정의 고조 역시 절제되어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사건 없음의 상태야말로 현실에 가장 근접한 조건이다. 우리의 삶 역시 결정적인 사건보다는 반복되는 하루와 사소한 변화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집으로...>는 극적인 사건을 통해 삶을 재구성하는 대신, 삶 그 자체를 제시하고 견디게 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리고 관객은 의미 없이 반복하며 흘러가는 듯 보이던 일상에서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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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자연, 문명과 원초의 충돌


영화가 리얼리즘이 향하는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다. 상우와 외할머니는 단순한 조손 관계를 넘어 도시와 자연이라는 대립적인 서로 다른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이 둘의 만남은 다른 삶의 방식과 감각이 충돌하는 사건인 것이다. 상우는 도시의 아이다. 햄버거와 게임기에 익숙하고 배터리로 작동하는 오락기를 가지고 놀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의 일상은 물질과 기능으로 채워지고 그것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방식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작동하지 않는 기계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충족되지 않는 욕구는 곧 불안과 분노로 이어진다. 상우에게 세계는 소비를 통해서만 통제가 가능한 대상이다.


반면 외할머니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다. 그녀는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지니고 있으며 그마저도 낡고 닳았다. 즉 기능보다는 지속이, 소비보다는 견딤이 삶의 방식이다. 무엇보다 할머니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 설정은 그 캐릭터의 특징을 넘어, 그녀가 언어 중심의 문명 세계 바깥에 위치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언어의 결여 대신 남아 있는 것은 몸짓이다. 손짓과 시선, 반복된 행동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문명 이전의 원초적 소통 방식에 가깝다.


이렇게 볼 때 두 사람의 만남은 단순한 세대 차이를 넘어선다. 그것은 언어와 비언어, 소비와 생존, 속도와 지속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의 충돌이다. 도시의 감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할머니와 자연의 언어를 해독하지 못하는 도시의 아이 사이의 틈은 쉽게 좁혀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처음에 두 세계는 충돌하고 오해만 생겨날 뿐이다. 카메라는 뚜렷한 이들 세계의 거리감에서 출발하여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천천히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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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변화, 말 없는 사랑의 형성


처음에 상우는 할머니를 철저히 거부한다. 말하지도 못하고 지저분한 존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 줄 수 없는 존재다. 그의 시선에서 할머니는 자신을 이해하고 보호해 줄 존재가 아니라 결핍의 존재다. 이러한 감정은 ‘병신’이라는 거친 언어로 표출된다. 상우가 요강을 깨고 물건을 훔치는 행동은 장난기의 발동이라기보다 자신이 속한 세계와 맞지 않는 그곳에 대한 공격이자 할머니를 거부하는 표현이다. 초반에 상우는 할머니의 소통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전적으로 무시하거나 외면한다. 하지만 같은 몸짓이 반복되고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면서 점차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의 이해는 설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경험의 반복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의 변화는 몇몇 상징적인 장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가령, 바늘에 실을 꿰는 장면은 그 대표적인 예다. 처음에는 귀찮다는 이유로 마지못해 응하던 상우가, 이후에는 할머니의 부탁을 외면하고 돌아누운 채 방관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할머니가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조용히 스스로 바늘에 실을 꿰어 둔다. 이러한 행동은 할머니의 필요를 스스로 인지하고 먼저 응답하는 관계의 변화를 보여준다. 비가 왔을 때 빨래를 걷는 장면도 그렇다. 처음에는 자신의 옷만 챙기던 상우가 잠시의 망설임 끝에 할머니의 옷까지 함께 걷는 순간, 이들 관계는 이전과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또한 병든 할머니를 돌보는 장면에서 그의 태도는 의무적인 반응이 아닌 자발적인 관심과 돌봄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든 변화를 영화에서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행동의 반복과 미묘한 차이를 통해 관계의 변화를 보여줄 뿐이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축적된 시간은 어느 순간 감정으로 전환되고 그 감정은 서로에게 말없이 전달된다. <집으로...>에서 두 사람의 관심과 사랑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형성된다. 말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관계, 그리고 설명되지 않지만 분명히 전달되는 감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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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이별, 감정을 넘어 남는 것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할머니와 손주가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별의 순간마저도 애써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 울음을 터뜨리거나 서로를 붙잡는 극적인 장면은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그저 일상의 흐름에서,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일처럼 조용히 헤어진다. 하지만 바로 이 절제가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는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관객의 몫이 된다. 그래서 이들의 이별은 눈물로 소비되는 대신 오래 남아 천천히 번지는 감동이 된다. 특히 종이 속에 숨겨진 돈, 버스 안에서의 마지막 시선, 그리고 말없이 손을 흔드는 장면들은 어떤 직접적인 표현보다 강하게 감정을 자극한다. 이들은 말해지지 않은 것들의 집합이자 이들의 끈끈한 관계를 소리 없이 전한다.


이렇듯 <집으로...>는 감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과장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감정을 끝까지 절제함으로써 그들의 흔적만을 조용히 남겨둔다. 이 흔적은 사라지지 않고, 관객의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 영화가 끝내 도달하는 것은 단순한 감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익숙함 속에서 놓치고 있던 삶의 방식,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전달될 수 있는 관계의 가능성이다. <집으로...>는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그러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오래오래 이러한 감정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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