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바빠야만 인정받는다고 생각했을까?

by 하랑

난 인정 욕구가 있다. 그러다 보니 일 중독 증상도 있다.


일이 많을수록 인정받는다는 생각에 몸과 정신은 전혀 돌보지 않고 일을 하도록 나 자신을 밀어붙인다. 아니, 솔직히 몸과 정신이 망가질수록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런 내가 여유로운 삶을 동경하게 된 건 한계에 다다랐을 때였다.

월화수목금토 쉬는 시간 없이 수업이 꽉 차있었고 일요일에 잠깐 휴식을 취하면 다시 월요일부터 쳇바퀴가 굴러갔다. 수업이 끝난 후엔 자료를 만들며 새벽을 불태웠고 그렇게 3년, 결국 몸도 마음도 망가졌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착각

나는 늘 바빴다. 할 일이 넘쳐났고 누군가에게 "바빠?"라는 말을 듣는 순간 불편했다. '안 바빠 보이나?', '내가 무능해 보이나?' 정말 예민할 때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니까 말이다. 내 일정이 빈틈없이 꽉 차 있다는 것이 자랑처럼 느꼈다. 바쁘다는 건 곧 필요하다는 뜻이고 나는 그 필요에 응답하는 유능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퇴근 후 부서질 것 같은 몸을 느끼며 “오늘도 잘 해냈다”며 이상한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뿌듯함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이렇게까지 애쓰고 있을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 이토록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삶일까?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쇼윈도 같은 삶일까? 난 누굴 위해 애쓰는 걸까?


되돌아보면 인정은 늘 바깥에 있었다. 아이들의 칭찬, 원장의 믿음, 부모님의 기대, 그 뒤에 따라오는 금전적 보상까지 달콤한 독약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누구나 인정하는 모범생이었다. 좋은 성적을 받으면 사랑받을 수 있다는 공식을 체득하며 자랐고 그 공식을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믿었다. 결과를 내고 성과를 증명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지금의 나를 만든 동시에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인정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마음을 원한다. 그것이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기준이 ‘남’에게 있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평가를 얻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 넣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여유로운 사람은 그 평가의 중심을 자신에게 둔다. 남이 뭐라고 하든, 내가 스스로를 괜찮다고 인정하면 되는 삶. 바쁘지 않아도, 생산적인 뭔가를 하지 않아도, 그대로 충분히 괜찮다고 믿는 삶.


내가 나에게 가장 큰 인정자가 되기로 했다

지금도 인정 욕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칭찬에 기뻐하고, 성과에 따라 기분이 들쭉날쭉해진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그 인정과 뿌듯함이 일시적이고 스쳐 지나가는 것임을.

그리고 정말 중요한 인정은 내가 나에게 주는 것이라는 걸.


여유로운 사람이 되기로 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유로워지기 위한 연습을 하기로 했다.

남의 눈이 아닌 나의 호흡에 집중하고, 그 리듬에 맞춰 걸어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바쁘지 않아도 괜찮다.


일에 파묻히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내 존재를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이제는 내가 나에게 가장 큰 인정자가 되기로 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