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고 싶다는 나의 강력한 욕망은 스스로를 갉아먹기 충분했다. 그렇게 여러 크고 작은 일들을 거치면서 깨달은 건 "여유가 없는 삶은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유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했을 때 사실 막막했다. 어떻게 해야 여유를 가질 수 있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여유를 가져봤어야 알지...
그때 떠올랐다. ‘내가 여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지켜야 할 약속을 만들자!’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악명 높은 지각쟁이였다. 알람은 몇 번이나 꺼버렸고 아침마다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고 뛰어다녔다. 어릴 적 버릇 남 주랴. 30대까지도 여전한 지각쟁이였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늘 숨이 차 있었고 약속 장소를 갈 때 기대나 설렘보다 미안함과 불안함이 당연했다.
한 책에서 읽은 연구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이 안 나지만 조급함이 선행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특정 장소까지 갈 시간을 1시간 주었고,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30분을 주었다. 그리고 배우를 섭외하여 실험자들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쓰러지는 연기를 하도록 지시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시간 여유 있는 사람들이 배우를 도와줄 확률이 30% 정도 더 높았다.
스치듯 읽은 이 연구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난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유가 선행에 영향을 준다는 말을 들으니 더욱 여유를 등한시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시간에 쫓기는 습관부터 고치고 싶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지각을 할까? 나 자신을 관찰해 보니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나갈 준비"를 늦게 시작했다. 일단 나갈 준비가 완료되면 지체 없이 문을 나섰다. 그래서 내가 한 일은 "나갈 준비"를 15분 일찍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든 15분은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약속 시간에 일찍 도착하는 것뿐만 아니라 약속 장소에 가는 도중에 설렘을 느꼈고, 창 밖의 풍경을 느꼈고 날씨를 느꼈고, 북적이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됐다.
두 번째 약속은 ‘매일 15분씩 공부하기’였다. 여유와 공부가 무슨 상관이 있나 싶겠지만 매일 15분씩 공부한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힘이 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피곤하다는 이유로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유튜브 숏츠만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건강에 안 좋은 야식을 몸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잠이라도 잘 자느냐? 당연히 아니었다. 무언가 찜찜한 기분은 자려고 누울 때마다 스멀스멀 온몸을 타고 올라왔다.
그 이상한 기분의 원인은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최소한의 기준을 정했다. 하루에 자격증 문제집 한 장, 영어 유튜브 한 개, 책 몇 장 이렇게 매일 15분씩 나에게 할당량을 주고 성취해 나갔다. 단 15분이 나의 다음 날을 만들었다. 매일 15분 간 성장했다는 그 기쁨이 내 하루를 만들었다.
세 번째 약속은 의외로 ‘단정한 머리’다. 예전의 나는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조차 않았다. 겨울엔 항상 머리에 고슬고슬 얼음이 맺혀 있었다. 머리가 말해주고 있었다. 나의 조급함, 오늘 하루조차 내 맘대로 하지 못 하고 있다는 무능함을.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자 결심한 후 나는 머리에 가장 많은 변화를 주었다. 머리는 반드시 완전히 말린다. 기분에 따라 헤어 오일을 추가하기도 한다. 내 머리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머리를 단정하게 가꾸는 것도 아무도 보지 않는다. 하지만 단정한 머리를 가꾸는 그 행동 자체가 오늘을 잘 보내려는 나의 작은 의식(ritual)이 되었다. 단정한 머리는 단순히 꾸미는 게 아니라 나를 다잡는 약속이 되었다.
돌아보면 이 세 가지 약속은 너무 사소하다. ‘겨우 15분 일찍 도착하기, 15분 공부하기, 머리 말리기’가 무슨 대단한 변화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삶에 가장 큰 변화를 만든 건 바로 이 작고 단순한 약속들이었다.
여유는 한 번에 찾아오지 않는다.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습관 속에서 조금씩 길러진다. 나는 여전히 여유로운 사람은 아니다. 어떤 날은 또 마음이 조급해지고,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방향이다. 나는 여유를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