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관계가 달라지는 순간은 대개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크게 다투지도 않았고, 서로에게 상처가 될 말을 한 것도 아니다. 다만 어느 날부터 기대가 조금 줄어들고, 말이 조금 줄어들고, 먼저 연락하던 습관이 조금씩 사라진다. 그렇게 몇 번의 작은 변화가 쌓이면 어느 순간 관계의 온도가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그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관계였기 때문이다. 괜히 다시 말을 걸어볼까 생각해보고, 먼저 연락을 해볼까 고민하기도 한다. 혹시 내가 조금 더 마음을 쓰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 번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어떤 관계는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흐름의 문제라는 것을. 마음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던 시기가 있었고, 지금은 그 방향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 관계를 굳이 다시 끌어당기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일부러 멀어지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예전처럼 가까워지려 애쓰지도 않고, 그렇다고 관계를 정리하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의 거리 그대로 두기로 한다.
이상하게도 그 선택을 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관계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억지로 부정하지 않아도 되고,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관계는 이전과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어떤 관계는 가까운 자리에서 오래 이어지고, 어떤 관계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조용히 남는다. 서로의 일상을 전부 알지 못해도 가끔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자주 만나지 않아도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남는 관계도 있다.
나는 이제 그 차이를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관계가 변했다는 사실을 굳이 설명하지도 않고, 예전의 자리로 다시 돌려놓으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 관계가 지금의 거리에서 머무르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이에서 나는 조금 배웠다. 모든 관계가 같은 속도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는 것, 어떤 관계는 가까움보다 편안한 거리를 통해 더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그 관계의 거리를 그대로 두기로 했다. 예전과 완전히 같지 않아도 괜찮고, 조금 달라졌어도 괜찮다. 그 거리 또한 우리가 함께 지나온 시간의 한 모습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