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비워진 자리는 생각보다 오래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한다. 무언가를 멈춘 뒤에는 당장 새로운 것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익숙하게 이어지던 흐름이 끊기고 나면,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한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 시간이 어색하다.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막상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는 알 수 없고, 괜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게 되기도 한다. 멈추기 전보다 오히려 더 불확실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조금 더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시간들 속에서도, 보이지 않게 정리되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는 것을. 무엇을 계속하고 싶은지보다, 무엇을 더 이상 붙잡고 싶지 않은지가 먼저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다시 시작하게 되는 순간은 특별하지 않다. 어떤 거창한 계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느 날 문득 아무렇지 않게 무언가를 다시 해보게 되는 순간에 가깝다. 예전처럼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어서도 아니고, 확신이 생겨서도 아니다. 그저 다시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시작해보려고 한다. 결과를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그 과정 안에서 내가 어떤 상태로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려고 한다. 예전처럼 무언가를 붙잡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지금의 나에게 맞는 속도로 이어가 보려고 한다.
여전히 기회는 언제 오는지 알 수 없고, 지금 이 선택이 어디로 이어질지도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한 번 멈춰본 이후로는 알게 된 것이 있다. 계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멈추는 것도,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도 모두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이제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고 있다. 이전과 완전히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도 아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조금은 달라진 방식으로 다시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나는 답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실이 예전만큼 불안하지는 않다. 답을 모른 채로 시작하는 것도, 그 과정 속에서 방향을 바꿔가는 것도 모두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다시 움직이고 있다. 여전히 가끔은 나만 멈춰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를 상상하고, 아직 해보고 싶은 것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조금은 괜찮아진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아도, 확신이 없어도, 여전히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직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