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30을 바라보던 어느 날, 책상에 앉아 나는 지금 어디쯤 일지 혹은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릴 때는 막연히 내가 30살이 되면 성공한 아주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 거라는 상상을 했던 것 같은데 여전히 어수룩하고 처음인 게 많은 나였고 아직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 살고 있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 답을 모르겠는 나날들 속에서 문득 인생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스스로 변화를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막상 내가 태어나 자란 곳으로부터 백리 밖으로 나가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지만 마땅한 기회가 없었는데 나의 여신, 음악의 어머니, 마돈나의 Rebel Heart 월드투어 유럽일정이 진행 중이었고 어쩌면 나도 여기에 합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마돈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볼 수 있을 때 보지 않으면 마이클 잭슨처럼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는 막연함 내지는 불안감도 있었고, 나도 한국 나이 30을 넘기면 더 이상 이렇게 홀로 멀리 떠나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시간과 예산으로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보다가 아주 저렴한 비행기 티켓을 발견했는데 그건 마치 내가 떠나야 할 때를 알려주는 신호 같았다. 싱가포르를 1번 경유하는 유럽행 왕복 비행기 티켓이 세금을 포함하여 단 돈 57만 원이었고, 떠나지 않는 것이 결국 내 인생에 손해일 거라는 판단이 드는 순간 바로 결심했다.
"그래, 지금이 바로 떠나야 할 시점이야."
여행경비는 모아둔 돈과 퇴직금에서 조달하기로 하고 바로 계획에 착수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만들어 보았고, 제일 먼저 비행기 티켓과 마돈나 공연의 티켓을 구해야 했다. 이렇게 목표가 생기니 방향성이 생겼고, 생각보다 일이 술술 풀려갔다. 하지만 가까운 아시아가 아닌 지구 반대편으로 간다고 하니 살면서 내가 언제 또 유럽에 갈 수 있을까 하는 행복하지만 힘든 고민 끝에 1달로는 너무 아쉬워서 여행지는 계속해서 늘어나 45여 일 가량의 긴 여정을 계획해 버렸다. 아직 미래의 나 자신을 믿지 못했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내던져보기로 했다. 하지만 여행을 계획한 시점부터 무언가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된다는 긴장감과 불안함에 인천공항에 비행기 타러 가는 날까지 뜬 눈으로 지새웠다.
비행기에서 몇시간 내내 울던 불쌍한 아가. 작은 아가는 뭐가 힘들었을까?
이상하게도 비행기 안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듯 나의 현실과는 동떨어져있는 듯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어쩌면 여행보다도 비행기 안에서 느끼는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느껴지는 멜랑꼴리함, 혹은 신비로움 때문에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이에 따른 변화를 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작아져서는 내 주변의 것들이 나를 집어삼키고 잠식할 것 같았던 한국의 시간은 잠시 일시정지가 된 것 같았다. 활주로를 날아 상공에 오를수록 풍경은 점이 되어 아득해져만 갔다. 내 모든 걱정과 고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여행을 결정하기 전의 고단했던 마음과 그 모든 사사로운 걱정과 긴장은 솜사탕처럼 구름이 되어 날아가는 듯했다. 좁은 비행기 좌석에 내 지친 마음과 몸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었다.
싱가포르 항공의 아주 저렴한 비행기 티켓에도 감사했는데 싱가포르는 무료투어까지 제공해서 혼자 외롭게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짐을 찾고 조금 쉬면서 이곳 사람들이 먹을 것 같은 간식들을 사 먹으며 투어버스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