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 만난 나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우연히 한 영화를 보았다.
노르웨이 영화로 기억되는 ‘개 같은 내 인생’.
가난하고 버림받은 소년의 삶이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화면 속 그 아이가 겪는 일들은 낯설지 않았다.
나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저것보다 더 심한 환경이었어.
‘개 같은’이라는 말로는 모자라.”
그 말은 단순한 비교가 아니었다.
그 시절 내 안에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아이의 절규였다.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울어주길 바랐지만,
아무도 울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영화를 보며 내 안의 눈물을 빌려 흘렸다.
시간이 흘러, 최근에 본 영화 ‘내 친구 집은 어디에 있을까’는
내 유년의 잔상들을 다시 불러냈다.
친구의 공책을 돌려주기 위해 끝없이 길을 헤매는 어린 소년,
어른들은 아무도 그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 장면 하나하나가 내 기억 속 어른들과 겹쳤다.
말을 해도 닿지 않는 세상,
“이건 안 돼” “그건 몰라도 돼”라며
권위로 덮어씌우던 시대의 공기.
그때의 나는 늘 순종적인 아이로 살아야 했다.
어른들의 감정과 기대를 맞추느라
내 감정은 언제나 뒤로 밀려나 있었다.
순응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웠다.
그 공포는 몸에 새겨져
지금까지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떨고 있는 듯하다.
이제 나는 그 시절의 나를 향해 말하고 싶다.
“그때는 네가 틀린 게 아니었어.
그저 네 말이 들리지 않는 시대를 살았던 거야.
이제는 괜찮아,
지금은 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여기 있단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때 들리지 않았던 내 목소리를
비로소 나 자신이 들어주는 일이다.
한 문장, 한 문장 쓸 때마다
그 시절의 아픔을 애도하고,
그 눈물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조금씩 피어난다.
영화 속 아이가 친구의 집을 찾아나선 것처럼
나도 이제 내 안의 ‘작은 나’를 찾아가고 있다.
영화 속 소년은 끝내 친구의 집을 찾지 못했지만,
대신 친구의 숙제를 대신해 학교에 내며
‘마음의 약속’을 지켜냈다.
나 역시 이제 내 안의 ‘작은 나’를 찾아가
그 아이의 숙제를 대신 풀어주듯,
멈춰 있던 시간을 다정히 이어주고 있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며,
잃었던 나를 되찾는 여정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