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의 발자취
은총의 발자취
전쟁의 연기가 채 가시지 않은 세상,
삶은 폐허 위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했다.
굶주림과 두려움, 수치와 모멸이 뒤섞인 시절,
그 속에서 나는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늘 결핍과 불안의 그림자 속에 있었다.
무너진 집터 위에서 다시 삶을 세우려는 어른들의 고단한 숨결,
그들의 눈빛에는 희망보다 체념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세상의 냉혹함보다
그 속에서도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강인함을 먼저 배웠다.
가난은 늘 나를 작게 만들었고,
수치는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는
그 모든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순수한 빛 한 줄기가 있었다.
그 빛은 때로 희미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그분은 한 번도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신 적 없지만,
늘 가장 낮고 조용한 방식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내가 넘어질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어깨를 살짝 받쳐 주셨다.
세월이 지나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볼 때면,
가끔 내 안의 어린 시절이 그 아이들 속에서 보였다.
가난하고 불안한 눈빛,
사랑받고 싶지만 표현할 줄 몰라서 거칠게 반응하는 마음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삭였다.
“괜찮다. 너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그 말은 아이를 향한 위로이기도 했지만,
결국 과거의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삶의 길 위에서 수많은 폭풍을 지나왔지만,
그 모든 순간이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었다.
고난의 골짜기에서 절망하지 않게 하신 분,
눈물의 밤을 지날 때마다
작은 새벽의 빛으로 위로해 주신 분—
그분의 은총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야 깨닫는다.
살아온 모든 시간은 내가 만든 발자국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끄신 은총의 흔적이었다는 것을.
오늘 아침, 햇살이 창가에 스며드는 이 순간
나는 다시 고백한다.
“주님, 잿더미 속에서도 저를 잊지 않으시고
부끄러운 인생의 조각마다 은총을 새겨주신 것,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