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적 에세이3

"바보라고 말하지 마"

by 김효숙


―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상담자가 되기까지 ―


나는 다섯 남매 중 셋째였다.

위로는 여덟 살 많은 오빠와 두 살 터울의 언니,

그리고 바로 아래로 연년생 남동생과 세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었다.

나는 또래보다 일찍 학교에 들어가 언니와 연년생으로 자랐다.


오빠가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가방을 살 형편이 되지 않아

책과 공책을 보자기에 싸서 허리춤에 매고 다녔다고 한다.

그 시절엔 그렇게 다니는 아이가 많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아버지는 유독 언니를 아꼈다.

언니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아버지는 드물게 란도셀 가죽가방을 사오셨다.

밤색의 반질반질한 그 가방은

아버지가 좋아하던 고동색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색이었다.

그 시절 초등학교 1학년에게는 남녀 구별이 또렷한 때였고,

밤색은 남학생의 색으로 여겨졌다.

언니가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남자가방 멨다!”며 놀렸다.


성격이 급하고 기가 센 언니는

그때마다 싸우며 놀림을 잠재웠다.

심지어 집을 나설 때는

양손을 쥐고 권투 자세를 취하며

누구라도 덤비면 맞서 싸울 준비를 했다.


나는 그런 언니가 대단하면서도 불쌍했다.

언니는 투덜대면서도 그 가방을 매일 메고 다녔다.

그런 언니를 보며 내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

언니 옷과 신발을 물려받던 나에게

“내년엔 저 가방도 내 차지가 되는 건 아닐까?”

그 걱정이 늘 마음 한켠에 자리했다.


나는 언니처럼 싸움도 못하고

부끄러움이 많아 남 앞에 나서기도 어려웠다.

남자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닐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2월 어느 날,

아버지는 빨간색 가죽 가방을 사오셨다.

가방 중앙에는 모란꽃이 새겨진 장식이 달려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가방이었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설쳤다.

입학식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학교에 가는 날,

나는 빨간 란도셀을 메고

하얀 손수건을 명찰 밑에 가지런히 달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쉬는 시간에는 그 가방을 벗을 수가 없었다.

자랑스러워서, 너무 예뻐서

가방을 멘 채로 운동장도 뛰어다녔다.


그로부터 2년 뒤,

남동생이 1학년에 입학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내게 말했다.


“누나야, 우리 반에 곱단이란 애 있는데,

그 애는 바보데이~ 쉬는 시간에도 가방 메고 다닌다 아이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순간 머릿속을 스친 생각.

“혹시 나도 그때 바보로 보였을까?”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그 일이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

그런데 훗날 상담공부를 하며

아들러의 말, “모든 행동에는 목적이 있다”라는 문장을 배웠을 때

문득 그 시절의 ‘곱단이’가 떠올랐다.


곱단이에게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아이는 자신의 가방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남들이 뭐라 해도, 자신이 좋아서,

혹은 그 가방이 자신을 지켜주는 무언가였을 수도 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때 남동생이 곱단이를 놀렸을 때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곱단이의 행동이 어릴 적 나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곱단이에게,

그리고 어릴 적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너는 바보가 아니야.

단지, 네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던 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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