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예찬

자, 이제 숟가락을 들자

by Mr Godot

밥상에 앉으면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것은 숟가락이다.
숟가락으로 국이나 찌개를 먼저 떠 넣고,
그 따뜻한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야
비로소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된다.
숟가락은 늘 그렇게 한 끼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였다.

우리는 어린 시절 숟가락질부터 배운다.
가장 먼저 쥐어 주는 건 젓가락이 아니라 숟가락이다.
죽을 먹을 때도, 미음을 삼킬 때도,
작은 손에 쥐어진 건 늘 숟가락이었다.
숟가락은 그렇게 우리 삶의 첫 도구였고,
처음으로 세상과 입을 이어 준 다리였다.

너무 익숙해 잘 눈에 띄지 않지만,
밥상 위에서 언제나 처음과 끝을 함께하는 것도 숟가락이다.
한 끼를 시작하게 하고,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도구.
숟가락은 늘 거기 있었고, 늘 우리를 먹여 살려왔다.

한·중·일 모두 젓가락 문화권에 속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나라만은 숟가락이 젓가락과 나란히 오른다.
물론 그들도 숟가락을 쓰지만,
우리만큼 널리, 또 일상 깊숙이 사용하지는 않는다.
밥과 국, 찌개와 탕까지 함께 오르는 우리의 밥상은
숟가락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누군가는 우리가 숟가락을 즐겨 쓰는 까닭을
국과 찌개, 탕 같은 국물요리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뜨겁고 무거운 국물을 떠내려면 젓가락만으로는 불편하니,
자연스레 숟가락이 밥상 위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무나 뿔보다 단단한 쇠로 만든 수저가
더 편리하고 위생적이라 널리 쓰이게 되었다.
숟가락은 음식과 문화를 함께 담아낸 생활의 지혜였다.

숟가락이 있었기에 국물요리가 발달했는지,
아니면 국물요리가 많았기에 숟가락이 자리를 잡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 밥상에서 국과 숟가락은 언제나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밥상에서 숟가락의 쓰임은 더욱 다양해졌다.
여러 반찬을 넣어 밥 위에 얹고 숟가락으로 비벼 비빔밥을 만들기도 하고,
찌개 속의 감자나 호박을 건져내 짓이겨 밥과 함께 먹기도 한다.
때로는 숟가락으로 생선살을 발라내어 숟가락째 떠먹기도 한다.
숟가락은 단순히 국을 뜨는 도구가 아니라,
밥상 위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도구이자,
먹는 방식의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다.

그렇기에 나는 숟가락이 밥상 위 음식을
더 풍성하고 다양하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숟가락은 반찬과 국, 밥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왔다.

젓가락만으로 밥을 집어 올리고
국그릇을 입에 대고 그대로 마시는 풍경을 보면
어쩐지 우리 밥상과는 결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들만의 이유와 전통이 있겠지만,
밥알 하나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내는 모습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어딘가 힘이 덜 실린 듯 보이기도 한다.

밥을 한 숟가락 가득 퍼 입에 넣어 먹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만의 의욕적인 삶의 태도인지 모른다.
숟가락은 그렇게, 우리의 허기를 달래는 도구이자
삶을 붙드는 가장 작고도 단단한 기둥이었다.

우리말에는 “숟가락을 내려놓다”라는 표현이 있다.
밥을 다 먹고 식사를 마무리하는 몸짓이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생을 마감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만큼 숟가락은 삶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도구다.
태어나면서부터 숟가락을 손에 쥐고,
마지막 순간에도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인생의 한 끼를 마무리한다.

나는 숟가락을 예찬한다.
그것은 단순한 식기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의욕과 감사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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