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수 예찬

맑은 물의 은총

by Mr Godot


두레박으로 길러낸 우물의 차디찬 냉수.
두 손으로 움켜쥔 바가지에 입술로 닿는 순간,
온몸의 열기가 단숨에 씻겨 내려간다.
그 한 모금은 값비싼 음료가 줄 수 없는 해방이며,
땀 흘린 여름날의 가장 깊은 위로다.

그 우물에 씻어낸 상추는
아삭한 잎사귀마다 물방울을 머금고,
입에 넣는 순간까지 시원한 냉기를 품고 있다.
냉수는 단순히 목을 축이는 데 그치지 않고,
밥상 위의 여름까지도 새롭게 빚어낸다.

또 그 우물에 담가 놓은 수박은
껍질부터 속살까지 서늘하게 식어,
칼로 갈라낸 단면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향기와 함께
여름날 최고의 호사를 선사한다.
그 한 입의 서늘함 속에는
햇볕과 더위, 그리고 기다림이 함께 녹아 있다.

그리고 여름날 땀을 식혀 줄 등목.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냉수 한 바가지는
삶의 무게까지 씻어내듯,
온몸을 떨게 하면서도
곧바로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그 순간만큼은 더위도, 피로도,
모두 물살에 흘려 보내진다.

그러나 냉수는 단순히 여름의 풍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가장 단순한 형태로 우리를 살린다.
색깔도, 향기도, 단맛도 없지만
바로 그 꾸밈 없음 속에서
우리는 가장 깊은 만족을 얻는다.
삶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화려한 것보다, 투명하고 단순한 순간 속에서
참된 위로와 힘이 솟아난다.

냉수는 또 가장 공평한 은총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부자와 가난한 자, 아이와 어른,
모두가 같은 물로 갈증을 해소한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은
가장 평범한 얼굴로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냉수는 늘 조용히 일깨워 준다.

그리고 냉수는 기억을 품는다.
우물가에서 떠 마신 한 바가지,
어머니가 씻어 주신 상추,
수박을 담가 두던 여름날의 기다림,
등목으로 쏟아지던 웃음까지.
그 모든 순간은 한 모금의 냉수와 함께
우리 안에 저장되어 세대를 잇는다.

그 단순한 물 한 모금이
세상 모든 여름을 견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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