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목격한 정성스러움
원숭이 펀치 영상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배경을 몰랐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는 것도, 그래서 집단에서 소외되었다는 것도, 사육사들이 안쓰러운 마음에 인형을 선물했다는 것도. 그냥 영상 자체만 봤는데도 무언가가 가슴에 울림을 줬다.
왜 감동이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에겐 오랜만에 목격한 정성스러움이었다.
자신보다 몸집이 큰 인형을 어떻게든 끌고 가는 모습. 그냥 안는 것도 아니고, 참 소중하다는 것이 보일 만큼 천천히, 꼭 껴안는 모습. 버림받은 아기 원숭이가 인형에게 사랑을 주는 그 장면은, 아무런 설명 없이도 묵직했다.
마음도 제품으로 대신하는 시대다.
감정을 대신 전해주는 도구는 넘쳐난다. 수 없이 넘쳐나는 이모티콘, 선물 종류는 또 얼마나 다양해졌나, (센스 없기도 힘든 세상이다) 몇 시간을 우려야 했던 사골국물은 인스턴트 육수로 대체된 지 오래다. 더 간단하고, 더 빠르고, 맛도 평균 이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단순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비효율적이다. 손으로 쓴 편지,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음식, 멀리서 달려온 발걸음. 정성스러움이란 결국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비효율을 감수하는 일이다.
원숭이 펀치는 그걸 아나보다. 매 순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추상적 표현임을 알지만 사람보다 낫다.
부모가 아이의 어린 시절을 잊지 못하는 것은 본인들이 가장 정성스러워야 했었던 순간들이었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최근에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명목 아래 극한의 효율을 쫓던 내게 당분간은 원숭이 펀치의 비효율적인 정성스러움이 꽤나 자주 생각날 것이다.
나에게 기꺼이 '쉼표'가 되어준 아기 펀치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제는 펀치의 삶에도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사랑으로 채워져 나가기를 바라본다. 아, 그리고 다른 곳에서 존재하는 수많은 펀치들도!
P.S. 다른 원숭이들, 사이좋게 잘 좀 지내자. 짜식들이, 빠져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