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에게 보낸 편지>
막내야!
네가 태어난 지 어느덧 14년이 되었구나. 생일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의미와 무탈하고 건강하게 성장했다는 위로가 아닐까.
세상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감사함도 잊은 채 살아가는 것 같다. 생일이란 나란 존재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보며 혹여라도 소홀하지 않은 것이 있나를 생각하며 보내는 날이다.
생일날 촛불을 켜고 탄생을 축하해 주는 이유를 아니. 촛불은 자신의 몸을 태우고 녹여 가며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는 존재다. 그 속에는 희생정신과 소멸이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요즈음 학교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아빠는 언니와 과천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네게 좀 소홀해진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다.
언니나 너는 중간고사 때문에 바쁘고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이지만 서로의 삶을 찾아가는 철새와 같은 모습이다. 어찌 되었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 곁에서 삶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흘러간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네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면 그 길을 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세상은 끝까지 노력하는 자가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다. 천재보다 노력하는 자가 이기는 것이 세상살이다. 노력에는 끈질긴 집념과 집착과 의지가 따른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것만 할 수도 없고 또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갈 수도 없다. 오로지 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자신이 노력하지 않고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은 삶의 목표를 가슴에 품고 있느냐에 따라 생활이 달라진다. 목표를 가진 사람은 오늘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내다보며 계획을 세우지만, 목표가 없는 사람은 자신 앞에 주어진 시간까지 낭비하며 살아간다.
학교에서 친구들 모습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비교해 보면 알 것이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나중에 잘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친구 중에 자신이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 집념을 갖고 노력하는 친구가 있을 것이다. 그런 친구가 나중에 어떤 길을 가는지 보면 안다.
너도 삶의 목표를 세우고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중학교 2학년이면 네가 가는 길에 대한 목표가 정해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언니가 가는 길과 아빠가 가는 길이 서로 다르듯이 네가 가는 길 또한 다르다.
네가 가야 하는 길은 오로지 너로 인하여 펼쳐지는 무대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인생은 네가 세운 목표에 따라 결정되고 실현된단다.
우리 막내가 세상에 태어나던 날 아빠와 엄마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아니. 엄마한테 들어서 알겠지만 네가 태어나던 해에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는 서울 사당동 까치고개에서 살았다.
아빠는 청담동에 있는 회사로 엄마는 서울역 근처에 소재한 학교로 출퇴근했다. 네가 태어나던 날 엄마와 아빠는 너도 언니처럼 출산이 늦어질 줄 알고 그날 아침 엄마가 산통이 와서 출근길에 엄마를 사당동 오산당병원에 입원시켰다.
엄마를 입원시키고 혹시 아이가 태어날 기미만 보이면 연락해 달라고 당부하고 아빠는 버스를 타고 회사에 출근했다. 그런데 회사에 도착하자 직원들이 나를 바라보고 웃으면서 왜 출근했느냐고 말했다.
그리고는 딸 출산을 축하한다며 꽃바구니를 전해주었다. 아빠가 회사로 가는 도중에 병원에서 엄마가 아이를 출산했으니 빨리 와달라는 연락이 왔대. 아빠는 다시 꽃바구니를 들고 부랴부랴 버스를 타고 사당동 병원으로 너를 만나러 찾아갔다.
언니는 진통이 시작되고 꼬박 12시간이 지나서야 세상에 나왔는데 너는 진통이 시작되고 두 시간도 안 돼서 세상에 나오는 바람에 엄마가 좀 고생을 했다.
병원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산모를 병실에 입원시키고 이것저것 챙겨주어야 하는데 보호자가 없으니 간호사가 짜증을 내더란다. 오산당병원에 도착해서 신생아실로 가서 너를 만났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다른 아이보다 팔과 다리도 길고 앙증맞았다. 너는 그렇게 1994년 9월 28일에 태어났다. 그리고 3일 후 병원에서 퇴원해 사당동 집으로 돌아왔다. 사당동 집에 돌아온 너는 언니와는 다르게 잠도 잘 자고 울지도 않고 잘 자랐다.
언니는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연이 많았는데 너는 밤 열 시가 되면 자고 이튿날 새벽 다섯 시나 여섯 시까지 잠을 자서 엄마와 아빠가 직장을 다니기에 수월했다.
이제는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너는 그렇게 태어나서 열네 번째 생일을 맞은 것이란다. 네가 태어난 이야기는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기를 바란다.
세월이 유수라더니 맞는 것 같다. 무더운 여름이 물러나고 결실의 계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언니와 네가 태어나서 보낸 시간도 차츰차츰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새삼 그 시절의 모습과 생활을 떠올려보니 그리움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되었지만 분주했던 일상과 엄마에게 조금 더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가슴이 아리고 아프다.
우리 막내는 어떤 일을 하든 당당하게 살아가는 여성이 되었으면 한다. 너의 의지대로 살아가되 할 말이 있으면 당당하게 하고 따질 것은 분명하게 따지고 가릴 것은 똑 부러지게 가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여성의 사회참여가 높아지고 권리도 향상될 것이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려면 당찬 여성이 되어야 한다. 내 앞에 놓인 일뿐만 아니라 주변을 보살피고 넓게 생각하는 여성이 되어야 남들한테 인정을 받는다.
내 앞에 놓인 일도 제대로 못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직장이나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삶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남들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추억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족속인 것 같다. 우리 가족이 사당, 과천, 평촌, 예산, 대전을 떠돌며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너도 어느덧 성인이 되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니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남은 학창 시절도 열심히 노력해서 네가 가고 싶은 길을 찾아 아름다운 삶을 누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주기 바란다.
가정은 삶의 시작이자 정신을 성장시키는 보금자리다. 어떠한 이야기든 많은 대화를 나누며 인생을 풍성하게 살찌우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아빠나 엄마는 항상 네 편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라. 간혹 네게 엄마가 지나친 간섭을 한다 하더라도 너를 사랑하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활짝 웃으며 생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