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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Apr 21. 2024

고향의 형해화

어제는 보슬비내리는데도 불구하고 고향을 다녀왔다. 지난주에 두릅순을 따다 먹었더니 아내가 맛있다고 하면서 고향에  다시 두릅순을 따오란다.


세종에서 고향으로 운전해서 가는데 보슬비가 내리고 안개가 끼어 창밖이 뿌옇게 바라보였다. 산과 들녘은 초록과 꽃이 어우러져 그림 그릴 때 덧칠한 것처럼 덕지덕지 스케치 한 신비로운 풍경으로 다가다.


고향에 도착해서 우산을 들고 과 함께 비닐봉지를 챙겨 가까운 산자락에 올라가 두릅순을 따는데 두릅순이 너무 자라서 딸 것이 별로 없었다. 마을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두어 번 데쳐 두릅순을 따고  뒤 아랫마을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


친구는 마침 시설하우스에서 수박이 열리얹어 놓을 받침대를 놓고 있었다. 친구가 작업하는 동안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가 일을 마치고 나왔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 친구와 친구 부인을 데리고 셋이서 점심을 먹으러 연곡리 방향으로 올라갔다.


보탑사 가는 길 옆  식당에 가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식당이 문을 닫아  다시 돌아내려와 태령산 앞 곤드레밥집 식당을 찾아갔다.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시켜 놓고 친구에게 고마을의 이런저런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런데 하나 같이 좋은 소식은 없고 좋지 않은 소식이다. 아랫마을에 사는 형들이 한 명은 폐암 말기라 삼 개월 밖에 생존할 없다 하고 또 다른 형은 일하다 허리를 다쳐서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데 한 때 섬망 증세가 왔다고 한다.


그리고 초등학교  친구는 혈액암에 걸려 그동안 길러오던 젖소를 모두 처분하고 집에서 치료하며 쉬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만 전해 들었다.


식당에서 주문한 식사가 나오기 전에 친구에게 고향의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 들으니 고향이 무너져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가 떠나과연 누가 이곳에 와서 농사나 아니면 고향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누구는 암에 걸렸다 구는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들은 이제 주변이 아닌 곁의 일이 되고 말았다. 아랫마을 형들은 고향을 오고 가며 만날 때마다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근황을 묻고 지내며 살아왔다.


내 고향만 그런 나쁜 소식이 들려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고향에는 팔순을 넘은 사람들이 허리를 구부린  쓰러져 가는 고향을 지키고 다.


젊은 사람들은 고향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고향에 돌아오는 사람이라야 그저 나이 들어 농사를 짓지 못하는 힘없는 사람뿐이다.


요즈음 고향의 형해화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고향의 형해화를 막을 수는 없다. 최근 지자체에서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집과 텃밭을 제공하고 월세까지 주면서 일정 기간 머무르게 하귀농이나 귀촌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사업만으로는 고향의 형해화를 막을 수 다. 고향을 지키기 위해서는 은퇴자들이 와서 일정기간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고향이든 타향이든 돌아가서 작은 것이라도 할 수 있도록 농촌을 꾸미고 조성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고향 떠난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을까. 사실 지금에 와서 추진하는 것은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향을 지키고 살리는 일은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젊었을 때 추진했어야 한다. 진정한 고향 살리기는 고향의 전통을 보존하고 문화를 관광화하여 지역 고유의 특성에 맞는 전통 보존과 문화 개발이 먼저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역의 특산물을 재배하여 특화하는 등 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고향 살리기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  추진을 지자체가 아니라 마을 주민이 주도해서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다. 단순히 은퇴한 사람들을 위한 귀농이나 귀촌사업은 보여주기식 사업일 수밖에 없다. 그런 사업을 하느니 차라리 그 돈을 한 마을을 지정해서 주민에게 맡겨서 처리하는 것이 낫다.


고향 살리기는 마을 주민이 주도하고 중앙정부나 지자체는 예산 지원이나 행정이나 교통 등 사람들이 찾아오기 편리하고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친구와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친구도 도시에 나가 생활하다  오래전에 고향에 돌아와서 시설하우스를 재배하면서 고향을 지키는 몸이다.


친구와 점심을 먹고 하우스에 돌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지고 나는 다시 세종으로 내려왔다.


세종으로 내려오는 내내 친구에게 전해 들은 고향의 우울한 소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 고향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향의 산천은 멀쩡한데 고향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기 전에 무슨  대책이라도 세우고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어야 할 턴데.


앞으로 고향에 갈 때는 누가 돌아가셨다거나 누가 암에 걸려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보다 어떤 젊은 부부가 농사짓기 위해 고향에 들어왔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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