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다시 봄
그래도 시작하는 거야
다시 먼 길 떠나보는 거야
어떠한 경우에도 나는 네 편이란다.(나태주 시인, '산수유')
나태주 시인의 시구는 짧은데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시인만이 산수유가 태어나는 아픔과 꽃을 피우고 떠나보내는 인연의 정을 알겠지만 봄은 곧 계절의 순환을 알리는 묵언의 메시지다.
어떤 꽃이나 제철에 꽃을 피우고 한껏 세상을 호령하다 지기 마련이다. 그런 꽃이 진다고 아쉬워하지 않고 시인은 나도 네 편이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며 이듬해 다시 보자며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표현했다.
시인이 '산수유'란 시를 짓는 온전한 마음을 알 수는 없겠지만 그 일부나마 행간을 서성이는 마음은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내 손주가 사는 아파트 앞 화단에도 산수유나무 가지 끝에서 노란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이다. 손주가 세상에 갓 태어나던 모습과 산수유가 노랗게 꽃망울을 터트리는 모습이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추운 겨울이 물러나고 따뜻한 봄이 되니 제일 먼저 산수유가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 중이다. 화단에 올라가 산수유 꽃망울을 들여다보니 가지 끝에서 이십에서 삼십 송이씩 무리 지어 피어나고 있다.
그렇게 아기자기하고 올망졸망한 송이가 어우러져 꽃망울을 형성한 채 대기의 온도가 점차 상승하면 뿌리에서 자양분을 마시고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트릴 것이다.
작은 꽃망울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손주가 순수하게 웃는 모습처럼 귀엽고 앙증맞다. 봄이 오지 않을 것만 같더니 어느새 산수유나무 밑에서 움츠리고 있다가 꽃망울을 통해 봄소식을 전해준다.
노란 산수유와 분홍의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면 이어서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어날 것이고 그다음은 목련이 꽃을 피우며 찬란한 봄을 노래할 것이다. 봄에는 다른 무엇보다 탄생과 환희의 꽃을 만나는 일이다.
손주가 까르르 까르르 웃어주면 나도 모르게 밝은 웃음이 나오듯이 산수유 꽃망울을 바라보니 얼굴에 저절로 옅은 웃음이 생겨난다.
지난주만 해도 날씨가 춥고 눈이 오더니 한주의 시간이 흘러가자 계절의 순환인 봄이 본격적인 채비를 마치고 이곳저곳에서 몰려오고 있다. 자연의 계절은 바람과 시간을 타고 순서 없이 다가오는 것 같다.
봄의 전령인 산수유와 매화꽃이 활짝 피어나면 앞으로 몇 달간은 꽃잔치가 이어질 것이다. 남녘에는 산수유와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지만 이곳은 이제야 봄날의 채비를 서두른다.
추운 겨울에는 주변 공기가 무겁게만 느껴지더니 산수유와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자 대기의 공기가 밝게 순환하면서 가벼워졌다. 사람은 이래저래 자연에 기대어 순응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들녘에 꽃들이 하나둘씩 피기 시작하니 덩달아 주변이 밝아지고 마음도 가벼워졌다. 이번 주에 손주를 보러 가면 지난주에 아파트 화단에서 노란 꽃망울을 준비하던 산수유가 활짝 피어났을 것이다.
앞으로 손주를 보러 가는 날에는 손주의 맑고 깨끗한 웃음과 아파트 앞 화단에 산수유와 매화꽃이 활짝 피어나 따뜻하고 포근한 봄날의 춘심을 느끼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